벌레가 죽은 나뭇잎을 흉내 낼 때
벌레가 죽은 나뭇잎을 흉내 낼 때
  • 시민의소리
  • 승인 2024.08.0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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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그 생김새가 반드시 그렇게 생기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생겼다. 모양의 어느 것 하나도 빼거나 더해서는 절대로 안되게끔 완벽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생물은 그 모습 그대로 완전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참으로 신기하고 경탄스럽다. 최근에 트위터에서 본 것인데 영락없이 죽은 나뭇잎처럼 생긴 것을 건드리자 그것이 움직였다. 살아있는 생물이었던 것이다. 그 대단히 뛰어난 변장 형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런 식의 자기 보호를 위한 모양새를 하는 생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생물에게 대체 죽은 나뭇잎 모양으로 변하게 유도한 맨 처음의 깨달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는 단순한 의식체에 불과한 생물일 뿐인데 무엇이 포식자와 먹잇감을 속이는 그런 변장 형태를 갖추어 태어나도록 추동한 것일까.

진화론에서는 이런 모양이 자연선택 때문에 그렇게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나는 다른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그 정도의 설명으로는 왠지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마을 한 마리 개는 병관이네 집 앞으로 잘 가려 하지 않는다. 그 집 앞으로 갈 때면 병관이가 막대기를 들고나와 혼을 내주기 때문이다. 개는 나쁜 경험이 쌓여 다시는 그곳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개가 병관이네 집 앞으로 가지 않는 행동은 개가 낳은 강아지들에게도 대대로 유전이 될까. 나뭇잎 모양을 하기 전에 그 생물은 포식자에게 잡혀서 먹히거나 먹잇감이 쉽게 알아보고 도망을 가므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나뭇잎 모양으로 차츰 변화했을까? 나는 진화론을 선택적으로 믿는다.

자연은 볼수록 놀랍고 신비하다. 한 마디로 생물은 칼과 방패의 상호 겨루기 방식으로 생존한다. 꽃게의 엄지발가락이 조개의 껍데기를 깰 정도로 강해지면 조개는 더 튼튼한 껍질로 몸을 바꾸어간다. 학창 시절에 이런 자연의 생태를 공부하면서 나는 늘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조개는 꽃게를 이길 수 있는가? 흥미롭게도 나는 이 의문의 답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모든 조개가 다 꽃게를 물리칠 수 없다. 자연은 꽃게가 조개의 껍데기를 깨어 먹고 살 만큼, 그리고 조개는 꽃게의 발가락을 이겨내 종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생존을 허용한다. 모두 죽거나 모두 살지는 않는다.

인간종은 포식자가 없어 눈치 볼 일도 없고, 먹잇감이 달아날까 봐 변장할 일도 없다. 자연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과의 관계 때문에 변장(진화)할 일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포식자나 먹잇감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그치는가. 아닌 것 같다.

인간은 동료 인간의 눈치를 본다. 그 눈치 보기의 극적인 것이 옷차림이다. 옷차림은 대충 두 가지 요인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 그중에서 가장 극적인 것이 여성의 옷차림이다.

지난 1백여 년 사이에 인간의 옷차림은 크게 달라져 몸의 상당 부분을 드러낸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 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마치 누가 더 심한 노출 옷차림을 하는지 경쟁이나 하는 듯한 모양새다.

나는 보기가 민망하여 눈에서 힘을 빼고 못 본 것으로 하려 애쓴다. 해수욕장이 아닌 길거리에서도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나다니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불편하다.

올림픽의 한 종목인 비치발리볼 선수들은 비키니, 미니로도 묘사가 안되는 특정 부위만 겨우 가린 옷차림을 하고 운동경기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스포츠라기보다는 스포츠를 가장해서 키 크고 늘씬한 노출 여성의 온갖 몸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려는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이용한 나쁜 취미에 가까운 경기다.

집단 성차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성을 상품화한 이런 게임이 버젓이 올림픽 종목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생물들은 포식자와 먹잇감 사이에서 자기 보존을 위한 변신술로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변화를 꾀하는 데 비해 인간은 이런 벌거벗은 가까운 옷차림을 하고 공공연히 대중 앞에 나선다.

벌레가 죽은 나뭇잎 흉내를 내도록 하는 자연법칙에 나는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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