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짧은 노래
매미의 짧은 노래
  • 시민의소리
  • 승인 2024.08.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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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 전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수년간 여름이 와도 매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산 구릉을 깎아내고 새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이 단지는 한 여름에도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언가 여름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여름에는 목청껏 질러대는 매미 소리를 들어야 작렬하는 태양과 뜨거운 불볕더위와 어울려 여름 한 가운데 있는 것 같다. 매미는 여름의 대장군 같은 것이다. 여름 한 가운데서 목청껏 소리를 질러야 여름 맛이 나는데 이 동네에는 매미가 살지 않는다는 건가 해서 허전했다.

그랬는데 작년부터 매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떼창을 하듯 단지 옆 숲에서 일제히 소리를 질러댄다. 짐작건대 매미들이 이곳에 사람들이 사는 것을 알고 다른 지역에서 새로 이주해온 것 같다. 매미들에게도 참새들처럼 사람들 가까이 따라 사는 습성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릴없는 사람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매미는 땅속 40cm 깊이에서 종류별로 7년, 13년, 17년 동안 나무뿌리 액을 빨아 먹으며 유충으로 살다가 우화하여 땅 위로 나와 7일에서 20일간 나무에서 소리 지르다가 죽는다 한다.

인간의 견지에서 보면 매미의 그런 생태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 매미는 유충으로 사는 긴 기간이 필요한 것이고, 짧게 굵게 살다가 생을 마치는 과정에도 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매미는 지상에 나와 사는 짧은 기간 동안 소리를 질러대 암매미를 불러 짝짓기하고 수컷은 죽고 암컷도 나무에 알을 낳고 죽는다. 매미는 오직 자손 번식에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매미가 사는 목적이란 짝짓기이다. 자손 번식. 그래서 성서도 인간에게 ‘번성하라!’고 했는지 모른다.

인간도 매미와 같은 자연이 낸 생명체이니 자연법칙을 따르는 것이 순리다. 자연 생태계는 모든 생명체가 오직 번식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도, 풀도, 짐승도. 그 극적인 모습을 매미의 생태가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뿐일까. 매미가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암매미를 불러 짝짓기하기 위함뿐일까. 나는 여기서 살짝 어깃장을 놓고 싶다. 매미는 짝짓기하기 위해 땅속에서 오랜 기간 살다가 기어나와 불과 며칠간 살다가 죽는다. 터무니없이 짧은 지상에서의 삶이다.

매미가 목이 터지라 내지르는 소리는 여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매미 소리가 나지 않는 여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같다. 매미가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자손 번식이라는 자연이 부과한 미션 외에도 그 청량한 소리를 노래로, 위로로, 인간에게 듣기 좋게 해주려는 자연의 배려가 숨어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조심스럽게 관찰한 바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종족번식이라는 큰 목적 외에도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생명체에 대한 배려라는 또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해서 자연이란 거대한 시스템에 참여하여 운행을 돕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을 살아서 혹은 죽어서 천적에게 내주기까지 한다. 매미들의 생애 주기는 천적과 관련 있다고 한다. 매미는 거미나 새나 다람쥐, 고양이 등의 천적으로부터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천적과 마주칠 기회가 적은 ‘소수의 해’를 생애 주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7년, 13년, 17년이라는 긴 기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지상으로 나온다니! 생각해보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2016년에 미국 동부 지역에 대량으로 출현했던 매미는 생애주기를 17년으로 하는 ‘소수 매미’인데, 오는 2033년에 다시 나타난다는 매미 예보가 이미 나와 있다. 1,200평 정도의 넓이에 150만 마리가 나타난다고 하니 매미 천국이 오는 셈이다.

어제 숲길에서 나뭇등걸에 붙은 매미 한 마리를 보았다. 꼼짝하지 않고 생물표본 상자 안의 것처럼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매미는 죽어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인 양 흐트러짐 없는 모습 그대로다. 청량한 소리가 다 빠져나간 투명한 매미의 모습은 한참이나 나의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했다.

이 매미는 탄생과 죽음을 통해서 자연의 요구 사항을 다 해낸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이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매미의 일생은 인간의 일생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한참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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