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공화국
먹튀 공화국
  • 시민의소리
  • 승인 2024.11.2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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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들고 튀어라’라는 말이 유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주 오래전 시절이다. 달리 말하면 무엇이 생기면 누구 눈치 보지 말고 무조건 내 것으로 가져가라는 사회적 속어 같은 것이다. 썩 좋은 말은 아니다. 지금은 들고 튀는 일이 많이 없어졌을까. 아니다. 변형되어 곳곳에 남아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예컨대 식당이다. 엊그제 나온 통계 자료를 보니 전국의 식당에서 식사하고 나서 밥값을 안 내고 먹튀 한 건수가 9만여 건에 달한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계산하면 10만 건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믿을 수가 없다. 세상에, 밥 먹고 돈 안 내고 나가는 쩨쩨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니. 비싼 음식을 먹고는 값싼 겉옷을 의자에 벗어 놓고 슬그머니 종적을 감추는 행태도 있단다. 얌체도 이쯤 되면 추한 수작이다.

식당에서의 먹튀 현상을 보고 혀를 찰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먹튀를 하는 경우가 쌔고 쌨다. 조합주택을 짓는다며 조합원을 모집한 후 아파트 분양 선금을 받아 먹튀를 하는 경우도 숱하다. 이건 식당 건수보다는 작지만, 금액으로 치면 엄청나게 무시무시하다. 땅도 사놓지 않고 미리 조합원에게 분양한다는 감언이설을 해서 쓱 해 먹고 튀는 양태다.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집 없는 서민들만 골탕을 먹는다.

옛날에 유행한 말에 이런 말도 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는. 지금이 딱 그런 세상이다. 전세 사기, 빌라 사기는 한국의 특허품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은행 직원이 고객 돈을 빼먹는 일, 군무원이 군사기밀을 돈 받고 팔아먹는 일, 대기업 중견간부가 몇 조를 들여 개발한 기술을 헐값으로 중국에 넘기는 일, 스미싱으로 남의 돈을 강탈하는 일, 헤아리자면 ‘대한민국 사기 백과사전’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이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사기 공화국이 되고 말았을까.

잠깐 정신 팔고 있으면 사기당하기 일쑤다. 모르긴 해도 성인 중 한 번이라도 사기를 안 당한 사람보다 당한 사람이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내 지인들만 해도 살아오면서 얼마씩은 사기를 당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기 범죄는 일본의 8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평생 남에게 사기 한 번 안 당하고 산 사람을 영웅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대단한 사람이다.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며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을 경계하여 사회를 정화시키려 애썼는데 요즘은 일상이 되어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누가 사기를 당했다가 하면 그저 재수가 없거나 운이 나빴다고 치부한다. 남의 돈을 빌려서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망해 돈을 못 갚게 된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애초에 남의 돈을 빼앗으려 덫을 놓는 것은 엄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솜방망이 처벌을 하다보니 기상천외한 범죄가 들끓는 것이 현실이다.

내 휴대전화에는 거의 매일 낯선 메시지가 날아온다. 달콤한 제안을 늘어놓고 첨부한 링크 주소를 누르라는 것이다. 만일 이 링크를 누르면 나는 심각한 해를 입게 된다. 실제로 지인의 모친이 별세했다는 부음 메시지를 받고 링크를 눌렀다가 휴대전화의 모든 내 정보가 털려 나가 곤란을 겪은 일이 있다. 긴급히 예금계좌를 막아야 했다. 오염된 휴대전화 기기를 바꿔야 했다. 그 이후로 무엇을 사칭한 정보나 링크 주소가 날아오면 무조건 지워 버린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이런 사기성 유혹이 일상이 되어 버렸을까. 땀 흘려 돈을 버는 것이 정당한 생존 방식이어야 하는데 굳이 일해서 돈을 벌지 않고 남의 등을 쳐서 먹고살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런 생각을 하면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눈 감은 사이 코를 베가지 못하도록 항상 바짝 긴장하고 살아야 하니 몹시 피곤하다.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까닭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버는 사회적 계약이 흐트러져 한 방에 거금을 움켜쥐려는 잘못된 관행이 묵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부동산 투기(투자)다. 아파트를 한 채 샀는데 몇 년 후 두 배, 세 배가 올라 부자가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판에 누가 힘들여 일해서 돈을 벌고 싶겠는가? 먹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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