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는 참으로 힘들다. 잠시 복락을 누리는 때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비 오는 날 구름 사이로 잠깐 해가 비추는 것처럼 찰나의 반짝임에 불과할 뿐이고 언제나 힘겹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산다’고 말하지만, 그 표현은 마치 ‘바람이 분다’는 말처럼 아무런 스토리가 없다.
인생의 본질에 비추어 보면, 차라리 ‘인생을 살아낸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인생은 살아가는 동안 숱한 고비와 고통, 슬픔을 겪기 마련이다. 목숨 하나 건사하는 일조차 버거운 일이다. 사람들이 날마다 눈에 불을 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은 결국 한 목숨 지키려 아등바등하는 몸짓이다.
나는 인생을 ‘극한 직업’에 비유한다.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나 험한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고층 빌딩에서 줄 하나에 매달려 청소하는 사람처럼 고된 삶이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다시 그 길을 걸어가라고 시간을 돌려준다고 해도 도저히 못할 것 같다. 어떻게 간난신고(艱難辛苦)를 헤치고 여기까지 왔는지, 기적처럼 느껴진다. 이보다 더 험난한 장애물 경기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 구소련의 한 청년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일이 있다. 소련에서는 국가가 농사를 지으라고 정하면 농부로 살면 그만이었다. 삶이 단순하고 편안했지만, 미국에서는 모든 선택을 자신이 해야 했다. 치약 하나를 사는 일조차 고민이었다. 자유는 좋았지만, 너무 힘들어서 결국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내가 걸어온 인생에서도, 어느 한 순간 발걸음을 잘못 디뎠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다.
한때 직장 선배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며 나에게도 그 회사로 오라고 제안했었다. 고마운 마음은 있었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1년 후 그 부서는 해체되었고, 선배는 결국 자영업을 시작해야 했다. 또 다른 기회도 있었다. 한 선배 시인이 화장품 회사 사보 팀으로 가자고 권유했으나 그 팀 역시 2년쯤 후 디지털로 전환하고 얼마 가지 않아 역시 해체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차례 유혹이 있었지만,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나는 그런 기회를 마다했을까? 지금 와서 복기를 해보면, 만약 그때 움직였다면 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것이 더 나았을지, 더 힘들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두 나를 배려하며 제안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회사나 팀이 오래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40대 후반에 이런 제안들을 거절한 나는, 만약 이직했다면 애매한 위치에 놓였을 것이다. 신입사원처럼 시험을 치고 다시 들어가기 어려운 나이에 그랬다면 참으로 아찔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더 나은 조건에 마음이 흔들렸던 적도 있지만, 안정감과 두려움, 그리고 내 소심한 성격이 결국 결정을 막았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소매를 잡고 "그 길로 가면 안 돼"라고 말해준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한 직장만 고집한 것은 아니다. 직장 초년생 시절, 어느 잡지사에서 5년 정도 근무하던 중 신문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사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큰물에 가서 놀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사직서를 내고 신문사로 옮겼다. 그곳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이 순탄했다고는 할 수 없다. 직장은 본질적으로 경쟁 조직이다.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하며, 출근 전에 링거를 맞아야 할 만큼 몸이 고단했다. 그런 험난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여러 번의 이직 기회를 거절한 이유는 대학 시절 친한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직장을 자주 옮기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그 말씀을 나는 금과옥조로 삼았다. 물론, 내 성격 탓도 크다. 요즘 세대는 이직을 자기 가치를 높이는 도전으로 여긴다.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직장을 옮기지 않고 무탈하게 직장 생활을 했다는 자랑이 아니다. 긴 인생 여정에는 운, 인내, 결단 같은 덕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살이는 힘들다.
나라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는 없다. 다만, 다시 그 길을 걸으라 하면 망설일 것 같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에게나 인생은 힘든 여정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사는 것이 오히려 덜 힘든 삶의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