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휑, 자식 잃는 기분이예요"
"가슴이 휑, 자식 잃는 기분이예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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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해태지기 박성환씨 서울이건 부산이건 경기때마다 따라다니기 20년 귀청 때리던 함성 파도타기 응원 아직도 생생 시민구단이라도 살릴방법 없나? 더블플레이와 다이빙 캐치. 방망이에서 쭉 뻗어 날아가는 장외홈런. 귀청을 때리며 가슴 울렁이게 하는 거대한 함성과 파도타기 응원. 박성환씨(57. 광주시 광산구 용봉동)도 여느 팬들처럼 이 맛을 못 잊어 지난 20년간 해태타이거즈와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박씨의 '해태사랑'은 그만의 독특한 내력이 있다. 20년 전 그는 부모님에게 받은 유산과 정미소 운영으로 '밥술이나 먹는 축'이었다. 하지만 배가 부르면 놀 것을 찾는다고 했던가. 도박성 오락에 빠져들면서 재산도 기울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갔다. "그때 마침 프로야구가 시작됐어요. 야구시즌이란 게 정미소가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와 엇갈리잖아요. 해태 경기가 있는 날은 정미소 화물차를 몰고 무조건 무등경기장으로 달려갔어요. 야구장에 한번 갔다오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만큼 나쁜 짓 할 시간도 없어지더군요." 처음엔 의식적으로 찾아간 야구장이었지만, 일단 재미가 붙자 해태타이거즈만 따라 다녔다. 서울이건 부산이건 거리는 문제되지 않았다. 10년 전, 대전에서 열린 평일경기를 보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도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래도 야구를 탓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오히려 야구 덕에 재산도 다시 모으고, 자식들도 대학까지 가르쳤으니까요." 한번은 해태가 대전에서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 함께 구경갔던 동네사람들을 자신의 1톤 트럭 짐칸에 태우고 노래부르며 돌아오다 그만 고속도로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렇게 됐노라고 얘기하자 경찰도 웃으며 그냥 통과시켜줬다고 했다. 열성팬 몇몇을 모아 타지출신 선수들에게 종종 고기도 사줬다. 호남의 인정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박씨는 그것이 동서화합차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그에게 해태구단의 매각설과 함께 연고지 이전 이야기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빈 것 같고 자식을 잃는 것 같아요. 해태는 광주의 긍지와 자존심이예요. 어린 꿈나무들은 앞으로 뭘 보고 야구를 하겠어요." 박씨는 대통령이 못하면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시민구단이라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한다. 해태가 가난하면서도 코리안시리즈에서 아홉 번이나 우승한 것은 결국 없는 사람들 특유의 단결력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해태구단 하나 살 기업이 없다는 건 그만큼 이 지역이 정치·경제적으로 핍박을 받았다는 증거예요. 그때 해태는 우리가 웃을 수 있게 해줬어요. 시민구단으로라도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홍보요원으로 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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