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된 바위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부처가 된 바위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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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산(745m, 전라남도 곡성)

▲ 형제봉서 본 동악산 ⓒ장갑수 겨울 강이 숨죽여 흐른다. 살포시 덮여있던 아침안개가 하얀 면사포가 휘날리듯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강가에 피었던 구절초며, 갈대마저도 시들어버린 겨울 강은 퍽이나 외롭다. 나는 외로운 겨울 강이 좋다. 황량한 강 위로 씽씽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헛된 나의 욕심까지도 실어가 버린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겨울 강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동악산 줄기가 섬진강으로 가라앉는 지점인 곡성과 남원을 연결하는 전라선 신기철교 옆에서 산길을 밟기 시작한다. 남원의 고리봉과 곡성의 동악산 사이 좁은 골짜기를 돌고 돌아 나온 섬진강은 신기철교를 지나면서 강폭을 넓힌다. 넓은 곡성들판을 적시며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이 평화롭다. 추사의 <세한도>를 연상케 하는 소나무 정상으로 통하는 암릉이 눈앞에 다가선다. 바위는 산에 변화를 주면서 산을 예쁘게 꾸며준다. 그래서 바위가 있는 산은 절경 아닌 곳이 없다. 아기자기한 바위와 노송의 어울림이 나의 발길에 율동을 준다. 매섭게 불어오는 삭풍을 이겨내면서 노송에 피운 설화가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다. 이런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한 송이 꽃이 된다. 동악산 정수리에 서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자연의 멋에 취하다보면 내가 자연속의 한 부속품이 된다. 이런 눈으로 바라보면 그 대상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자리매김 되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원활해진다. ▲ 솔숲에 핀 눈꽃ⓒ장갑수
동악산 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쾌하다. 곡성들판과 곡성읍내와 섬진강을 감싸고 있는 동악산이 곡성의 진산임을 알려준다. 청류동계곡 너머로 형제봉이 손짓하고, 그 뒤로 통명산이 넉넉하다. 화창한 날씨라면 모습을 드러내야할 지리산이나 화순의 모후산-백아산, 광주 무등산은 흐린 날씨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배넘어재를 지나니 소나무 일색의 숲이 울창하다. 겨울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歲寒圖)>가 생각난다. 스산한 겨울 분위기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세한도>에 그려진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를 보고 있으면 의리와 지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기 일쑤인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형제봉 권역에 들어서면서 나무들은 활엽수로 바뀐다. 동악산은 형제봉에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 형제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암릉은 조각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여러 모양의 바위들이 절경을 이룬다. 그 뒤로는 우뚝 서 있는 동악산이 웅장하다. 더군다나 나뭇가지에 하얗게 핀 눈꽃 너머로 바라보이는 풍경은 한 폭의 실경산수화다.

‘수석(水石)의 경(景)이 삼남(三南)의 으뜸’

   
▲ 고리봉과 섬진강ⓒ장갑수
북쪽 지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운치 있는 길이다. 길쭉길쭉한 바위들이 꽃처럼 피어 있고, 부처형상의 바위들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앞으로 펼쳐지는 암릉은 16나한으로, 뒤에서 근엄하게 지켜보고 있는 웅장한 동악산은 부처로 비유된다. 이런 바위를 바라보며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도(道)에 이르는 길이다.

청류동계곡의 깔끔한 반석과 그 위로 흐르는 계류가 맑고 정갈하다. 한적한 겨울의 청류동계곡은 깊고도 그윽하다. 청류동의 고요함 속에서 맑은 바위와 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혼탁한 내 마음도 어느덧 맑고 그윽해진다.

맑고 고운 물소리에 도림사의 부처님도 선정삼매에 빠져들었다. 동악산 정상을 바라보며 불심을 지피고 있는 도림사는 작고 소박하다. 도림사에는 특별한 문화재가 없어도 청류동계곡 자체가 국보고 보물이다. 

넓은 계곡을 평평한 반석이 장식하고, 맑다 못해 푸른 청류(淸流)가 춤을 추듯이 흘러간다. 이런 경치에 반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한시(漢詩)가 반석위에 새겨져 있다. 반석 위에 앉으니 나 자신도 산수의 아름다움에 취한 시인이 된다.‘수석(水石)의 경(景)이 삼남(三南)의 으뜸’이라는 옛 이야기가 실감난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신기철교(50분) → 390봉(30분) → 삼인봉(1시간 10분) → 사수곡갈림길(40분) → 동악산(1시간) → 배넘어재(1시간) → 형제봉(20분) → 길상암갈림길(1시간) → 도림사 주차장 (총소요시간 : 6시간 30분)
 -. 제2코스 : 도림사 주차장(1시간 30분) → 동악산(1시간) → 배넘어재(1시간) → 형제봉(20분) → 길상암갈림길(1시간) → 도림사 주차장 (총소요시간 : 4시간 50분)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곡성나들목에서 곡성방향으로 7~8분 정도만 달리면 도림사 입구가 나온다. 신기철교는 계속 직진하여 곡성읍에서 남원방향으로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섬진강 다리를 건너지 말고 좌회전하면 철교가 보인다.

/장 갑 수 산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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