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1,561m)-중왕산(1,376m) 강원도 정선-평창
바닥에는 하얀 눈이 덮여있고 땅에 의지한 나무들은 잿빛을 이룬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땅과 직선을 이룬 나무들의 어울림은 공생과 섬김의 문화다. 나무는 땅이 있어 존재할 수 있고, 땅은 나무가 있어 풍요로워졌다. 홀로 겨울나기도 어려운데 가지에서 푸른 겨우살이를 키워주는 고목의 여유는 실로 감동적이다.
비탈의 나무들은 쭉쭉 뻗어있지만 항상 매서운 바람을 상대해야 하는 능선의 나무들은 구불구불하다. 이리 뒤틀리고 저리 뒤틀린 채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고통과 우여곡절을 오히려 아름답게 승화시킨 성숙한 사람을 보는 것 같다.
곧게 솟은 진록색의 구상나무는 고고함을 과시한다. 붉은 줄기를 한 주목이 등장하면서는 산의 품위가 한층 높아진다. 고산식물인 자작나무나 잣나무도 가리왕산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상봉으로 오르다가 뒤돌아본 중봉은 사십대 여성의 젖가슴 마냥 풍만하기만 하다.
상봉을 이루고 있는 산비탈에는 구상나무가 주목과 함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살아 있는 나무는 살아있는 대로 고사목은 죽어있는 대로 고고하면서도 예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추상화를 그리고 있는 고사목이 부드러운 능선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은 빼어난 풍경화 한 폭이다.
산의 고요함 속에서 나도 산이
되고
▲ 중왕산으로 오르는 길 ⓒ장갑수 | ||
정상 주변은 넓은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어 바람이 드세다. 중왕산으로의 발길을 서두른다. 여전히 주목과 구상나무의 자태를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에 율동이 들어간다. 어은골 갈림길을 지나자 눈길 위에 발자국마저도 없다. 가끔 만나는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반갑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산과 나무밖에 없는 산길이 그지없이 고요하다. 이 고요 속에서 나그네도 비로소 산이 된다. 건너편에 붕긋 솟아 있는 중왕산의 손짓이 한다.
마항치에서 중왕산으로 다시 올라가는데 숨이 찬다. 깍깍 소리를 내는 까마귀가 나그네에게 힘을 북돋워준다. 중왕산에 올라서서 바라본 가리왕산은 부드럽되 웅장하다. 남쪽으로 청옥산이 붕긋 솟아 있고, 사방에서 눈 덮인 산줄기들이 겹겹이 다가온다.
급경사길을 한참 내려서니 얼음 속에서 물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온다. 얼음 속을 흘러가는 물소리에는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산비탈을 심하게 깎아낸 부분이 눈에 거슬린다. 인간에게 필요하면 자연의 질서에 무관하게 허물고 깎아내도 좋다는 어리석음에 내 자신까지 부끄러워진다. 주변에는 적송이 울창하다. 자연은 인간의 손이 적게 갈수록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휴양림매표소(1시간) → 임도(1시간) → 중봉(50분) → 가리왕산(1시간) →
마항치(40분) → 중왕산(15분) → 천당골 갈림길(1시간) → 도치동 (총소요시간 : 5시간 45분)
-. 제2코스 : 휴양림매표소(10분) → 어은골입구(2시간 30분) → 주능선 삼거리(10분)
→ 가리왕산(50분) → 중봉(1시간 30분) → 휴양림매표소 (총소요시간 : 5시간 10분)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을 빠져나와 곧바로 우회전하여 33번 국도를 따라 오대천을 끼고
남쪽으로 달려가면 42번 국도를 만난다. 42번 국도를 따라 정선읍을 지나 평창쪽으로 가다보면 가리왕산 이정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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