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만규 화백의 섬진강이야기]강물따라 걷고 농사지으며 강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 매화마을/ 한지에 수묵 송만규 작 | ||
한지에 섬진강물을 찍어 바른지가 10여년이 흘렀나보다.
진안 마이산 계곡에서 광양 망덕포구에 이르기까지 500여리에 이르는 물길에 몇 번이나 발을 담그고 붓을 빨며, 또 땀을 씻으며 함께 해왔던가!
어느 때 어느 자리든 섬진강은 나의 눈길을 붙들었고, 특히 순창 동계에 있는 무량산 자락의 구미 마을에서 장구목까지의 섬진강 상류 4km 가량의 산책길은 나를 껴안아 그곳에 머물러버리게 하였다. 나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아 그 품속에 안겼다.
이곳에 나는 ‘한들산방’이란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강은 지난날의 아픔과 슬픔을 기슭에 스치는 바람으로 씻어주고, 요란스럽지 않으나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는 마음을 맑게 해준다.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네는 황새 소리는 고요한 강에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요즈음 강과 산방 주변에는 매화가 한창 절정을 이룬다. 뒤편 무량산엔 예전에는 정상 가까이까지 밤나무가 빽빽 했었다는 데, 지금은 듬성듬성할 뿐 그 자리에 하얀 매화가 활짝 자리 잡고 작업실을 둘러싼 대숲 사이론 수십 년 된 산수유 한그루가 노랗게 박혀 있다.
겨우내 돌보지 못했던 산방 울안이 어수선하다.
군자 중의 군자인 대나무가 바람에 쓰러져 잎이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흉하게 늘어져 있는 것을 톱 길이만 하게 잘라서 아궁이 앞에 땔감으로 준비해 놓았다.
돌담에 뒤엉킨 강낭콩 넝쿨을 걷어서 마당 한쪽에 쌓아 놓고, 호박 넝쿨 마져 걷어다 포개 쌓아놓고 여기 저기 나뒹구는 마른 잎 새들을 모아서 불을 붙이니 불꽃이 하늘을 찌르듯 오르더니 연기도 없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땅바닥에 깔려버린다.
호박 넝쿨 걷어낸 자리에는 새 생명들이 솟구쳐 일어서고 있다.
수선화는 벌써 집개 손가락만큼이나 새싹이 올라왔다.
앞마당에는 목단과 작약 수 십주가 빨갛게 움트고 있고, 작년에 심은 매화 묘목 두 그루에는 뒤늦게 꽃봉오리 몇 개가 맺혀있다. 이 마당 저 마당 발길 닿는 곳마다 불끈 불끈 힘이 넘쳐나는 기운이다.
오늘은 미술교사인 아내가 일찍부터 산방에 찾아왔다. 주5일 근무제라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꽃모종이 담긴 상자 여러 개를 차에 싣고 온 거다.
왠 꽃이냐고 묻자, 동료교사가 처분을 못해 고심하는걸 보고는 산방에 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얻어왔다는 것이다. 도심 길가의 갇혀진 그릇 속에 관청에서 주로 심는 키가 작은 ‘팬지’라는 외래종 꽃이다. 팬지야 공간의 해방감에 좋겠지만 우리 들꽃들 속에 이질적인 화려함이 어떻게 어울려 질지 지켜보아야겠다.
모종을 차에서 내리자마자 윗옷을 벗어던지고 장갑을 끼고서는 호미를 찾아들고 뒷마당 앞부분, 국화꽃들이 있는 근처에 심기 시작하자, 모처럼 아내의 모습을 담 너머로 본 할머니들이 반가워하며 말을 건다. 그리고 같이 쪼그리고 앉아 마당에 널려있는 풀을 매다가는 끝내 한마디 한다.
“아이고 징그라 죽겄어, 이놈의 풀들 땜시.”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이 넓디넓은 마당을 어찔려고 그려, 집이는 풀 못매고 살응께 그냥 약 쳐버려”
라고 하면서 내 얼굴을 보더니 심난하다는 듯이 제초제를 사용하라고 당부한다.
아침에 눈뜨고 방문을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게 마당의 풀이다. 그러니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에 풀매기를 하다보면 끼니도 거르고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허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니, 차라리 제초제를 사용해 버릴까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땅을 파면 꿈틀거리는 지렁이나 풀 섶에서 꽃잎에서 뛰노는 무당벌레, 여치들을 보면 감히 그럴 수가 없다. 옆집 할머니는 슬그머니 엿 한 뭉치를 들고 오고, 뒷집 할머니는 고추장을 퍼와 아내에게 건넨다. 따뜻한 웃음과 함께......
섬진강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섬진강을 알고 가까이 하게 된 것은 80년대 초반에 김용택 형네 집에서부터 이다. 입담이 좋고 편안한 형과의 만남은 시간을 잊어버린 채 밤늦게까지 신명나게 이루어졌고, 다음날 아침 형의 어머니가 지어주신 밤밥은 지금도 가끔 입맛 다시게 한다.
요강바위로도 유명한 장구목에서 임실쪽으로 올라가면 강이 동그랗게 휘돌아 흐르는 곳 중심에 큰 정자나무와 닥나무 삶는 곳이 있는 구담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현수 아버지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나를 선상님이라 부르는 정읍댁은 강과 가까이 하는걸 깨닫게 해줬다.
구미마을 사람들도, 광양 무등산에 오르는 사람들도......섬진강가에 사는 이들은 강물 따라 걷고, 강물 퍼서 농사지으며 때로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세상사는 법을 배웠을 게다. 그들은 그런 마음을 그냥 나에게 줬다.
/realsongi@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soomuk.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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