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물들인 붉은 수채화
백두대간을 물들인 붉은 수채화
  • 장갑수
  • 승인 2005.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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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920m, 전라북도 남원-장수)

88고속도로가 관통하는 백두대간 사치재 등산로 초입에 철쭉 한 그루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늘 산행의 예고편을 알려주는 것 같다. 88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은 어디론가 바쁘게 달려가고 지리산휴게소는 정중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697봉에 올라섰지만 잔뜩 낀 가스로 고속도로 너머로 보여야할 지리산이 오리무중이다. 

▲ 봉화산 북쪽 대간길ⓒ장갑수 가끔 나타나는 철쭉꽃이 길안내를 한다.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 철쭉은 때 묻지 않은 청순함으로, 진분홍색의 산철쭉은 요염하되 천박하지 않은 화려함으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시리봉 근처의 헬기장을 지나자 점차 철쭉이 많아진다. 5m 높이의 칼바위도 주변의 철쭉과 조화를 이룬다. 칼바위를 지나 781봉에 다다르자 북쪽비탈이 온통 철쭉세상이다. 붉은 철쭉 바탕에 푸른 소나무 한두 그루가 서 있는 모습은 군계일학이다. 이런 풍경에 구름이 살짝 덮여 선경이 된다. 이 속에 있는 나는 꽃가마를 탄 신선이다. 천국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 아막산성을 따라 형성된 철쭉 띠 철쭉천국을 빠져나와 5분쯤 걷다보니 눈앞에 구불구불 붉은 곡선을 그린 철쭉 띠가 시선을 끈다. 아막산성을 따라 산철쭉이 붉게 피어 있는 것이다.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진다. 봉우리 전체를 철쭉이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무너진 성을 따라 핀 철쭉꽃은 색다른 감흥이다. 산성에 얽힌 애환이 철쭉으로 피어난 듯하다. 아막산성에 핀 철쭉 띠 너머로 남원시 아영면 들판이 펼쳐진다. 구슬프게 울어대는 산비둘기의 울음도 오늘은 행복하게 들려온다. ▲ 봉화산 치재 철쭉길 ⓒ장갑수
복성이재 너머로 솟은 봉화산이 큰 형님 마냥 든든하다. 복성이재로 내려서니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을 이어주는 포장도로가 나 있다. 짓재라고도 불리는 복성이재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흥부전]의 배경이 된 성리 마을이 있다. 

치재로 올라서는데 산철쭉이 점차 많아지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치재에 올라서자 눈앞으로 진분홍빛 수채화가 펼쳐진다. 분홍빛 그림은 녹색 물결의 산줄기가 배경을 이루어 생명력 넘치는 수채화가 되었다.

 나는 산철쭉의 진한 향기에 취하고, 진분홍색의 요염한 색상에 넋을 잃는다. 온 산이 붉게 변한 산줄기는 잔잔한 강물이 되고 철쭉 밭을 걷는 사람들은 돛단배가 된다. 바람이 불면 붉은 강물이 물결을 치고, 붉은 물결위에 떠 있는 돛단배는 덩실덩실 춤을 춘다. 2m 높이를 이룬 철쭉나무는 꽃 터널을 이루어 많은 사람들을 꽃물결 속에 숨겼다가 내놓곤 한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은 철쭉만이 아니다. 내 가슴 속에도 가득히 철쭉이 피었고, 내 가슴에 핀 철쭉은 나의 얼굴까지 붉은 꽃을 피웠다. 

철쭉꽃밭을 지나자 울창한 숲길이다. 숲의 청신함에 내 몸에 담은 꽃향기가 뒤섞여 달콤한 멜로디가 된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숲길은 봉화산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너른 억새밭으로 변한다. 억새밭에는 듬성듬성 철쭉 모둠이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뒤돌아보면 치재 근처의 철쭉이 붉은 띠를 이루고 있다.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 봉화산 철쭉 ⓒ장갑수
봉화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실로 장쾌하다. 아영 들판 뒤편으로 지리산 서북능선 끝자락인 바래봉-덕두산이 선명하고, 날씨가 화창하면 장엄하게 펼쳐지는 지리산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이 구불구불 월경산으로 이어가고, 함양의 백운산이 우뚝 솟아 있다. 백운산에서 영취산, 장안산으로 큰 파도를 그리는 산줄기와 그 아래로 지지계곡이 깊고도 깊다. 

월경산 쪽으로 가는데 노랑제비꽃이나 홀아비꽃대 같은 야생화들이 예쁘다. 영취산 뒤편으로 남덕유산이 고개를 내밀고, 남덕유산에서 줄기를 뻗은 거망산-월봉산 능선도 바라보인다. 가끔 암릉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주로 포근한 숲길이다. 산비탈의 짙어진 녹음이 싱그럽고, 심심치 않게 피어있는 철쭉꽃이 화사하다. 신록이 우거진 봄이면 소나무 같은 상록수보다는 낙엽활엽수 일색의 산이 생동감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숲길을 걷다보니 내 마음도 고요해지고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백두대간은 월경산 정상을 지나지 않으나 우리는 10분 정도 동쪽으로 더 가서 월경산 정수리를 밟는다. 헬기장이 있는 월경산은 북쪽으로만 백운산을 볼 수 있을 뿐 나무에 가려 주변을 조망할 수는 없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중재로 내려오는 길이 가파르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새소리만이 들려올 뿐 세상은 한없이 고요하다.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 임도가 나 있는 중재에 도착한다. 백두대간 아래 중기마을에 들러 토종닭 백숙에 소주 한 잔 씩을 걸치니 세상조차 모두 꽃이 되어 있다.

*산행코스
 -.제1코스 : 사치재(40분) → 새맥이재(45분) → 시리봉 헬기장(1시간 10분) → 복성이재(15분) → 치재(1시간 20분) → 봉화산(1시간 50분) → 광대치(40분) → 월경산(40분) → 중재(15분) → 중기마을 (총소요시간 : 7시간 45분)
 -.제2코스 : 복성이재(15분) → 치재(1시간 20분) → 봉화산(1시간 50분) → 광대치(45분) → 대안리 (총소요시간 : 4시간 10분)
 -.제3코스 : 복성이재(15분) → 치재(1시간 20분) → 봉화산(40분) → 송리 (총소요시간 : 2시간 15분)

*가는 길
 사치재는 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에서 남원방향으로 500m 정도 가면 만난다. 복성이재는 88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을 빠져나오자마자 아영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아영면사무소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8km 정도 가면 성리마을을 지나 복성이재에 도착한다. 대형버스도 진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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