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네 가족
별이네 가족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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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강 이야기]

▲ "초여름날의 새벽강" /수묵채색/ 송만규 작 별이 막둥이 삼촌이 장가를 간단다. 뭐가 그리도 급해서 불볕 내리쬐는 오뉴월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하기야 나도 서른 살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졸업식장에 오신 장모님께 ‘나이도 차고 했으니 다음달에 결혼식을 하겠다’고 했다. 장모님은 기가 막혀 펄쩍 뛰셨다. 그래도 자식의 일이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어서 그러한 것인가 싶으셨는지 이내 허락하고 말았지만. 그렇게 나도 우여곡절 끝에 두 달 만에 결혼식을 해냈다. 별이 삼촌이나 우리 집이나 피치 못 할 사정이란 본인들이 헤아릴 터이다.별이네 손바닥만한 마당에는 없는 채소가 없을 정도로 온갖 것을 심어 놓은 남새밭이 있다. 우리 밭에는 상추대신 케일을 심었는데 대체적으로 잘 자라고 있다. 어느 것들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못 생기고, 잎사귀에는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그 구멍 사이로 밥알이 가끔 빠지기도 한다. 나는 금년 정월에 담근 된장에다 고추장을 섞어 만든 쌈장을 얹어 먹는 맛과 케일이 주는 풋내로 즐겨 먹지만 때론 진한 맛이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별이네 밭에 가서 부드러운 상추 한 포기 뜯어다 먹곤 한다. 두어 주 전, 상추를 뜯으러 갔더니 별이네 할머니는 깨를 씻어서 말리고 나물가지들을 챙기며 부산했던 모습이었다. 그러고보니 아마도 아들 장가 갈 밑천 장만하느라고 그랬던 모양이다. 별이 할머니는 보훈대상자이다. 3년 전, 그러니까 월드컵 경기가 열렸을 때 몇몇이 해남댁네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았다. 폴란드와의 경기였다. 마침 냉장고에 누군가가 준 돼지곱창이 있어서 통째로 들고 갔었다. 별이 할머니는 해남댁의 주방에 들어서서 요리를 해서 낸다. 고추장 몇 숟갈과 갖은 양념을 집어넣고 볶는다. 순창은 물과 공기가 좋아서 장맛이 좋다고 하는데 특히 이 동네 장맛은 단연 식도락가의 입맛을 당기게 할 만 하다. 준비된 음식은 술안주가 되었다. 다들 두어 잔씩 마시고, 별이 할머니는 몇 잔을 더 들더니 눈시울을 적시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털어 놓는다. 고향이 이북 원산인데 6.25때 학교에 갔다가 집에도 들르지 못하고 아홉 살 박이 어린 소녀 혼자서 배에 올라타고 부산으로 피난하였단다. 전쟁이 끝나고 동두천 등을 전전하며 갖은 고생하다가 간호사로 베트남전투에 파병되어 근무하였으나 부상을 입어 지금도 허리가 불편하다. 이 동네와 인연이 닿아 눌러 살면서 전쟁터에서의 간호사 경력으로 의료시설이 제대로 있지 못한 곳을 돌며 진료도 하고 다녔다.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뜩 소설가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국의 분단이 만들어 낸 한 여성의 삶의 질곡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을 가슴 시리게 그려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이야기는 꼬리를 물어 어느덧 영웅담으로 이어진다. 어느 날인가 한밤중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담배 한 대 입에 물고 고갯길을 넘어 오는데 하얀 옷을 걸친 도깨비가 나타나 시비를 걸면서 달려들려고 하더란다. “얌마! 너는 댐배나 필 줄 알어? 댐배도 못 피는 것이 어디서 까불어”별이 할머니는 피우던 담를 엄지와 집게 손끝에 잡고 삿대질을 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머리를 꼿꼿이 세워 어깨를 들이대듯 달려들었다. 그랬더니 도깨비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더라는 것이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나 제스처가 여장부 같은지라 웬만한 도깨비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방안에서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바깥을 지나가다 들으면 싸움판이라도 벌어진 줄 알까 싶을 만큼 힘차다. 전쟁 고아였던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축구경기 한 게임 시간으로 어찌 다 끝을 맺을 수 있겠는가! “축구 이겼네요.”라고 말문을 막으며 일어나면서 곧바로 자리를 마련해서 속편을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술잔은 쉬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도깨비가 나타났었다는 고갯길을 어둠이 내린 뒤에 혼자 넘으려면 뒷목이 당기는 듯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호기심이 발동해 도깨비를 만나봤으면 하기도 한다. ▲ 광양 무등산에서 바라본 섬진강/송만규 작
  “에 - , 귀주마을 주민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오늘 점심때 별이네가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오니 한분도 빠짐없이 마을회관으로 나오셔서 함께 드시기 바랍니다.”

새벽안개 사이로 마을회관의 확성기에서 이장의 목소리가 나지막하면서 맑게 들려온다. 이곳 사람들은 결혼과 같은 경사가 있을 때면 먼저 동네 잔치판부터 벌여서 음식을 나누고 난 뒤에 식장으로 떠난다. 그때마다 이장의 목소리가 확성기 속에서 신이 난다. 확성기가 산방쪽으로 나있어서 또렷하게 잘도 들린다.

장마철인데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침밥을 먹고 나니 안개는 걷히고 해살이 찬란하게 비친다. 별이네 할머니랑 친척들이 벌써부터 음식상을 준비하느라 그런지 바쁜 걸음으로 산방 담 옆으로 오고간다. 별이 할머니는 지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점심때 꼭 오라고 당부하고는 잰걸음으로 길 모퉁이를 돌아선다. 아이들은 일의 성격과 상관없이 손님들이 많이 오는 큰일이 닥치면 무조건 즐거워하기 마련이다. 별이가 그렇다. 폴짝폴짝 잠옷 바람으로 뛰어 다니는 게 신나는 모양이다.

정오가 되기도 전에 뒷집 아주머니가 담 너머로 부른다. “안오실까바서 일부러 댈러 왔쇼”라면서 바로 오라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회관에 가서 먹을 요령으로 점심밥을 해놓지 않았다. 혼자 밥해 먹는다는 게 늘 그런 터라서 뒤따라 나섰다. 햇볕이 지독하게 따가워 몇 발자국 걸으니까 벌써 등에 땀이 흘러내린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산방에서 100미터 남짓 떨어진 회관 양쪽의 방과 거실에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득 앉아서 벌써 만찬에 들어갔다. 눈이 마주친 군의원이 자기 옆에 앉으라고 권한다.

상에 빼곡하게 차려진 진수성찬을 대하면서 맛 있겠다 보다도 더운데 마련하느라 수고 했겠다 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것저것 정성이 담긴 음식들을 둘러보면서 먼저 숟가락이 가는 곳은 다슬기국이다. 푸르스름한 국물에 애호박을 썰어 넣은게, 쓰린 속을 풀어주던 해장국으로 즐겨 먹던거라서 저절로 숟가락이 간다. 섬진강 이 일대에서 자라는 다슬기는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맛과 시원한 국물 맛을 지니고 있다. 문득 저운과 택준 생각이 나고 미안하다. 갈담 장터에 다슬기탕 맛있게 하는 곳이 있으니까 사주겠노라고 공수표만 띠고 지금까지 지키지 못한 약속인 까닭이다.

모두들, 차린 손의 정성만큼이나 맛있고 즐겁게 먹는다. 거의 다 먹을 때쯤 해서 수박을  내 놓는다. 수박을 먼저 손에 든 용동에서 온 친구가 내 좌편에 앉아 있는 양씨한테 말을 건넨다. “아제, 보리쌀 안 살라요? 5k에 8천원인가 한다는거 같던디요”라고 말하자, 양씨는 차가운 반응을 보인다. “안 사, 그놈의 보리밥 크면서 질리게도 먹었는디 또 먹으란말여?” 그러자 그 이야기는 그냥 없었던 것처럼 되어 버렸다. 

요즘 나는 보리밥을 즐겨하지 않는다. 웰빙 식품 이라고들 그러지만 나에겐 반갑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그 밥이 아직도 싫다. ‘추억’어쩌고 하기엔 좀 꺼끌꺼끌한 기억들... .

이런저런 모습 속에 있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섬진강 따라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 사람들의 삶이, 강가 풍경처럼 넉넉하기를. 별이 할머니처럼 꿋꿋하기를.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려 본다.

 ‘별이 삼촌 행복하게 잘 살아요.’ 

/송만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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