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을 꿰어놓은 듯, 바위가 꽃을 피운 듯
구슬을 꿰어놓은 듯, 바위가 꽃을 피운 듯
  • 장갑수
  • 승인 2005.10.1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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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서북능선-십이선녀탕(1,578m, 강원도 인제)

별빛이 쏟아진다. 별과 함께 떠 있는 초승달이 가냘프다. 잠자고 있는 산이 깰세라 별과 달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밤의 설악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이른 새벽, 설악으로 오르는 행렬은 끝이 없다. 촛불시위라도 하듯 불빛의 긴 행렬이 설악의 새벽을 밝힌다. 불빛 행렬을 이룬 사람들도 점점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서서히 먼동이 트이면서 불쑥불쑥 솟은 바위들이 설악의 이미지를 전해준다. 주능선에 도착하자 어느새 날이 새었다.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는 너덜지대의 구상나무가 산 나무는 산대로 죽은 나무는 죽은 대로 설악의 품위를 지켜준다.

귀때기청봉 정상에서의 전망은 그지없이 시원하지만 점봉산과 가리봉 등 남쪽 방향을 제외하고는 구름에 가려 있다. 서북능선과 안산을 비롯하여 용아장성릉, 공룡능선, 대청봉과 내설악의 풍경은 구름 속에서 잠자고 있다. 회색빛 너덜과 빨강·노랑·갈색의 단풍, 그리고 진녹색의 구상나무 잎이 색상의 조화를 이룬다.

병풍 같은 바위에 핀 아름다운 단풍 꽃

▲ 귀청남쪽 암봉 ⓒ장갑수 상투바위·감투바위가 웅장하고, 주변의 촛불처럼 타오르는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설악의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이런 바위를 물들인 빨간 단풍이 나그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설렌 가슴을 진정시키는 것은 포근한 모습의 점봉산이다. 귀때기청봉 근처의 너덜지대를 지나자 바위들도 점차 부드러워진다. 한계령에서 장수대로 가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너머로 가리봉·주걱봉·삼형제봉이 붉게 채색을 한 채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귀청과 대승령 중간지점에서 큰감투봉과 작은감투봉이 기다리고 있다.큰감투봉 근처 1408봉에 서서 나는 시인이 된다. 구름이 벗어져 한눈에 들어오는 내설악의 풍경은 빼어난 실경산수화 한 폭이다. 대청봉에서 중청, 공룡능선, 황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배경이 되고, 용아장성릉과 내설악 이곳저곳에 솟은 바위들이 소재가 된다.사방에서 만산홍엽을 이루어 활활 타오르니 내 마음도 단풍과 같이 타오른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조건 없는 자기희생 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 후면 저 잎들은 모든 인연을 버리고 낙엽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나는 언제 저 나무들처럼 버릴 때가 되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버릴 수 있을지.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은 멀고도 멀다. 대승령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대승령은 장수대에서 대승폭포를 거쳐 올라오는 고갯마루라 십이선녀탕이나 서북능선으로 가는 등산객으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숲 속 단풍과 함께 안산 방향으로 걷는다. 설악산답지 않게 포근한 길이다. 안산 직전의 1396봉에 올라서자 모두가 탄성이다. 불타는 설악이 마치 화산이 타오르는 것 같다. 지금까지 지나온 귀때기청봉과 서북능선, 그 아래에 그려놓은 화려한 수채화를 바라보며 감동하고 또 감동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안산이다.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 아래로 길게 펼쳐지는 바위도 바위려니와 바위에 점점이 박힌 붉은 단풍은 바위에 핀 아름다운 꽃송이들이다. 바위의 조형미로만 본다면 안산보다 빼어난 곳이 많지만 단풍과 바위가 어울린 풍경은 안산만한 곳이 없다. 회색 바탕에 빨간 물감을 툭툭 뿌려 완성한 수채화는 그 어떤 그림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답다. 안산에서 북쪽능선으로 가다가 십이선녀탕계곡이 있는 동쪽비탈로 내려선다. 바위에 핀 단풍이 화려한 안산에 비하여 원시림 속에서 미모를 뽐내는 단풍은 은은하다. 때깔 좋은 단풍이 햇볕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난다. 자연의 오묘함에 작아진 인간 ▲ 제1선녀탕과 단풍 ⓒ장갑수
계곡에 내려서자 실개천에서 나는 물소리가 가냘프다. 계곡 주변의 단풍은 화려함으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계곡은 좁은 바위를 굽이굽이 타고 내리며 만들어내는 와폭이나 수량이 적은 폭포들을 거치면서 점점 덩치를 키운다.

이렇게 걷기를 한 시간 정도. 15m 높이의 폭포 하나를 만난다. 두문폭포다. 이제 본격적으로 폭포가 시작된다는 것을 폭포의 이름이 말해준다. 폭포수로 떨어지는 물보라가 자유를 실어다준다.

두문폭포와 헤어져 내려서는 순간 별천지에 들어온 느낌이다. 지름 10m 정도의 타원형을 이룬 검푸른 탕과 25m 높이의 와폭, 탕과 폭포를 둘러싼 깔끔한 바위가 만든 풍경은 신이 창조한 최고의 선물이다. 이런 선녀탕을 빨간 단풍이 비추어 검푸른 물을 붉은 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선녀가 반할 만큼 한없이 부드럽고 은밀하다.

억겁의 세월은 거친 돌을 일부러 다듬어 놓은 것 같은 반들반들한 바위로 만들었고, 쏟아져 내린 폭포는 바위를 파내어 대형 돌확을 만들어놓았다. 탕 옆 반석에 앉은 나는 자연의 오묘함에 한없이 작아진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뻐기던 오만함도, 세상의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망상도 자연의 신비 앞에서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 안산치마바위 ⓒ장갑수
십이선녀탕계곡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폭포로 이어진다. 35m 높이에서 살짝 굽이치며 떨어지는 폭포수는 그 모양이 웅장하고, 그 소리가 사자후를 토해 내는 것 같다. 구슬을 꿰어놓은 듯이 이어지는 탕은 복숭아탕에서 절정을 이룬다. 20m 높이의 매끄러운 바위를 타고 넓게 퍼지면서 내려오던 폭포는 하트(♡) 모양으로 패인 바위를 사이에 두고 10m 높이의 부챗살 같은 폭포가 된다. 움푹 파인 붉은 색 바위에 떨어진 폭포는 다시 5m 와폭을 만든 후 하트(♡) 모양의 탕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두 개의 하트 모양을 연결해 보면 복숭아를 쪼개서 벌려놓은 것 같다. 그래서 복숭아탕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오묘한 선녀탕들은 지세가 험하고 골 깊은 곳에 비밀병기처럼 숨겨져 있었다. 십이선녀탕을 지나고 나서도 깔끔한 반석위로 고요하게 흐르는 물줄기들은 섬섬옥수처럼 곱다. 하얀 명주실을 길게 풀어헤쳐 놓은 듯이 부드러운 와폭이며, 포근한 느낌을 주는 소(沼)들이 이어지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주곤 한다.

다른 계곡 같았으면 이름 있는 폭포로 불려졌을 정도의 폭포가 수없이 이어지지만 이곳에서만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이처럼 십이선녀탕계곡은 숫자로나 미학적으로나 최고를 자랑하는 폭포와 탕을 가졌다. 혹시 누가 가져갈까 봐서 걱정하던 경상도 아저씨의 장난기 섞인 말소리가 쟁쟁하다.

  “십이선녀탕 가져가지 마이오.”

*산행코스
 -. 제1코스 : 한계령(2시간) → 주능선 삼거리(1시간) → 귀때기청봉(2시간) → 1408봉(1시간 50분) → 대승령(30분) → 십이선녀탕 갈림길(40분) → 안산(40분) → 십이선녀탕계곡 상류(1시간 10분) → 복숭아탕(1시간 20분) → 응봉폭포(1시간) → 남교리 (총소요시간 : 12시간 10분)

 -. 제2코스 : 장수대(40분) → 대승폭포(1시간 10분) → 대승령(30분) → 십이선녀탕 갈림길(1시간 40분) → 복숭아탕(1시간 20분) → 응봉폭포(1시간) → 남교리 (총소요시간 : 6시간 20분)

*교통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홍천나들목을 거쳐 44번 국도를 따라 인제와 원통을 지나 한계리에서 우회전하여 양양 방향으로 가다보면 장수대와 한계령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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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2005-11-05 19:11:26
강원도 인제에 선녀탕이 있었네요, 흐흐 말로만 듣고 했는데, 고맙습니다,

오늘도 방문하여 살짝 들고 갑니다,
가을의 향기는 우리네 마음를 즐겁게 해 줍니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기사 부탁 할께요,

선녀탕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 시간이 주어진다면 휙~댕겨 오고십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