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을 덮고 있는 하얀 눈이 침묵을 강요한다. 그래서 눈 쌓인 들판도, 하얗게 분칠한 마을도 묵언정진중이다. 간간이 지나는 차량들만이 산골마을의 고요한 침묵을 깬다. 작년 12월 초순에 내린 폭설 이후 계속된 한파로 산야에 쌓인 눈은 아직도 녹지 않았다.
산 많은 진안의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백운면을 선각산과 덕태산, 내동산이 감싸고 있다. 초입인 계남마을에 들어서니 두꺼운 옷을 입은 마을 노인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계남마을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젊은이 없는 농촌, 희망이 보이지 않는 농업이 바로 오늘의 농촌마을을 더욱 쓸쓸하게 했을 것이다. 농촌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자 건강한 문화를 일구는 원천이고, 농업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바탕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농촌과 농업은 신자유주의라는 흡혈귀에 빨려 쇠퇴할 대로 쇠퇴해 버렸고, 땅마저 농약과 화학비료에 죽어가고 있으니 젊은이가 농촌에 붙어있을 리 없다.
쓸쓸한 농촌과 죽어가는 농업
내동산의 모산(母山)은 금남호남정맥상의 팔공산이다. 팔공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벗어난 산줄기는 임실군 성수면과 진안군 백운면의 경계를 이루며 성수산(876m)를 일으키고는 내동산까지 이어온다. 내동산애 도착한 산줄기는 북서쪽 섬진강에 여맥을 가라앉힌다.
임실 성수산·팔공산과 선각산·덕태산, 그리고 이곳 내동산에 둘러싸인 백운면의 모습이 한없이 정겹다. 백운분지로 모아진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흘러가 임실과 남원, 곡성, 구례, 하동 땅을 적신다. 내동산이라는 이름은 쑥대가 많아 쑥래(萊) 자를 썼다고 하기도 하고, 내동마을 뒷산이라서 내동산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가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약수암을 거쳐 동산마을에 이른다. 우리는 정상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간다. 고도를 낮추는 서쪽 능선을 모악산과 경각산, 전주 고덕산이 바라보고 있다.
산에 기대고 새록새록 잠자고 있는 작은 마을들은 우리의 고향이다. 겨울산도 겨울들판도 겨울의 마을도 모두가 휴식중이다. 겨울의 휴식이야말로 생명력 넘치는 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내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게 고속질주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휴식은 대단히 소중하다. 휴식은 단순히 몸을 쉰다는 의미를 넘어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래서 최고의 휴식은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과 하나 되는 마음상태가 아닐까 싶다.
안부에 도착하여 북쪽 골짜기로 내려선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하념북마을에 이른다. 하념북마을은 몇 년 전 건너편의 고덕산 산행시 하산했던 기억이 있다. 중평리 음수동마을로 하산하는 길은 북쪽이라 눈도 많이
쌓여 있고, 넝쿨과 가시나무가 많아 갈 길을 자꾸만 가로막는다. 텅 비어있는 축사를 지나자 임도다. 임도 옆의 개울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있다.
바짝 마른 중평저수지를 내려서니 음수동마을이다. 음수동마을에서 바라본 내동산은 역시 묵언중이다.
○교통 -전주와 남원간 17번 국도가 지나는 관촌에서 742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면 백운면 소재지에 이르고, 백운면소재지에서 진안방향으로 30번 국도를 따라 10분도 채 못가서 원평지 버스정류장이 있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2~3분이면 계남마을에 도착한다. 계남마을까지 대형버스도 진입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