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밥그릇 닮은 바위는 부처가 되고
스님의 밥그릇 닮은 바위는 부처가 되고
  • 장갑수
  • 승인 2006.03.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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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의아름다운산행]비계산·의상봉(1125.8m·1046m)
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를 지나 대구 쪽으로 달리다보면 양쪽으로 보이는 산들이 위풍당당하다. 남도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이 그렇고, 경상남도 함양과 거창을 품고 있는 금원산·기백산이 그러하다. 거창읍에서 금귀산 비탈을 넘어서면 널따란 가조들판과 주변의 아름다운 산들이 펼쳐진다. 보해산과 의상봉, 비계산, 오도산, 미녀봉에 감싸인 거창군 가조면은 88고속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포근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그런지 가조에 88고속도로 거창휴게소가 자리잡아 운전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해준다.

비계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다다르자 앞으로 보이는 경사가 만만치 않다. 잔뜩 흐린 날씨는 비계산 정상부위를 감추어버렸다. 소나무 일색의 울창한 송림이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다. 봄을 기다리는 새들의 외침에서는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 비계산 암릉 ⓒ장갑수 종종 만나는 너덜에 덮인 하얀 눈이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한다. 숲 속에서 전달되는 상쾌한 기운이 내 마음까지도 상쾌하게 해준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상쾌함이다. 그런데 요즘 도회지에서는 이런 상쾌한 기운을 맛볼 수 없다. 각종 매연으로 대기가 오염되고, 수질오염으로 맑은 물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눈앞에 보이는 편리만을 추구하는 생활이 환경을 오염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이 빚어낸 결과다. 산길을 걸으며 이런 생활태도에서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님을 반성한다. 그래서 생활 속의 작은 부분부터라도 생태적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본다. 닭이 날아가는 듯한 비계산에 서서 ▲ 상봉에서 본 의상봉 ⓒ장갑수
비계산 정상에 다다르자 무뚝뚝한 바위가 사위를 관망하고 있다. 비계산은 우뚝 선 오도산과 오도산에서 미녀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보며 자신도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 가조들판의 포근함이며, 비계산 동쪽 비탈 합천군 가야면의 다랑논과 마을들을 정답게 쳐다본다.

거창휴게소로 하산하는 길이 갈리는 곳에서 본 비계산 정상은 그야말로 닭이 날아가는 모습이다. 그래서 산 이름도 비계산(飛鷄山)이다. 한눈에 보이는 상봉을 거쳐 의상봉으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산풍경은 리드미컬하다. 군계일학처럼 솟은 비계산 정상 봉우리가 주변을 호령한다.

마장재를 지나자 아기자기한 암릉이 시작된다. 비계산 쪽 바위들이 거칠고 남성답다면, 이곳의 바위는 표면도 매끄럽고 아기자기하여 여성스럽다. 오밀조밀한 암릉과 거대한 바리때처럼 우뚝 솟은 의상봉이 대조를 이룬 산풍경은 나그네의 가슴에 리듬을 준다.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는 이미 생명체로 태어나고, 정지된 모습으로 볼 땐 한편의 그림이 된다. 동쪽의 수직절리를 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모습은 만물상 축소판 같기도 하다. 수십 미터의 벼랑을 이룬 웅장한 바위가 있는가 하면 꽃다발을 이룬 것처럼 아기자기한 형상의 바위도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의상봉의 자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수많은 형상의 바위들이 의상봉의 지휘에 따라 일제히 움직이는 듯하다.

동쪽으로 작은가야산을 지나 매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유연하다. 별유산이라고도 불리는 상봉에 오르자 눈앞으로 등장하는 의상봉이 의젓하다. 로프를 타기도 하고 바위틈을 끼어가기도 하면서 의상봉의 매력에 빠져든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의 조화

   
▲ 노르재 근처에서 본 의상봉 ⓒ장갑수
지상에서 수십 미터 돌출된 의상봉에 오르기 위하여 철 계단을 한발 한발 밟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 뒤돌아보면 꽃을 피운 바위들이 예쁜 자태를 보여준다. 의상봉에 올라서자 주변의 산과 들판이 가슴에 안겨온다. 장군봉을 거쳐 바리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병풍과 같고, 상봉을 지나 마장재로 통하는 능선상의 바위들도 불쑥불쑥 솟아있다. 마장재에서 비계산을 잇는 능선과 주변의 산줄기들이 힘찬 근육질을 드러내준다. 오도산에서 미녀봉으로 연결되는 산줄기는 한없이 부드럽다. 커다란 타원을 그린 의상봉·비계산·오도산·미녀봉·금귀산·보해산 가운데에 가조들판이 요람처럼 자리잡았다. 상봉 너머 가야산으로 통하는 능선이 출렁이고, 가야산과 수도산도 어렴풋하다.

이 산은 그 형세가 소머리를 닮았다하여 우두산(牛頭山)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신라 때 의상대사가 이 산에 들어와 고견사를 개창하고 수도하였던 곳이라 하여 의상봉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의상봉은 1천 미터가 넘는 산답게 자못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면서도 곳곳에 일부러 조각을 해 놓은 것 같은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예술적인 멋까지 부여하였다.

의상봉을 내려와 고견사로 곧바로 내려가지 않고 장군봉으로 향한다. 울창한 송림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암릉이 나타나곤 하는 능선의 변화가 산행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뒤돌아보면 의상봉이 우뚝 서 있고 의상봉에서 고견사 방향으로 뻗은 날등도 암릉을 이루며 힘찬 기세를 자랑한다. 아름다운 산속에 파묻힌 나그네의 마음도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오른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모두가 한 송이의 꽃이다.

장군재 갈림길에서 잠시 장군봉(953m)으로 올라선다. 수십 미터의 벼랑을 이룬 장군봉은 바리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보면 우람해 보여 장군봉이라는 이름이 실감난다. 벼랑에는 노송이 독야청청하다. 보해산과 금귀산이 이웃사촌인양하고 가조들판 건너편에서는 미녀봉과 오도산이 손짓을 한다.

장군봉에서 장군재를 지나 바리봉으로 가는 능선도 한없이 아기자기하다. 눈앞에 나타나는 아기자기한 바위들은 아무리 보아도 예술품이다. 수천 년에 걸쳐 온갖 비바람에 씻기고 씻겨 오늘과 같은 아름다운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바위들 하나하나는 우리의 역사고, 자연이 만든 문화유산이다. 바리봉에서 보는 의상봉은 우리가 닮고자하는 부처고 성인이다. 부처가 된 의상봉은 내 마음 속에서 부처의 화신으로 떠오른다. 의상봉에 밝은 햇살이 비춘다.

*산행코스
-제1코스 : 도리육교(1시간 30분) → 비계산(2시간) → 마장재(1시간 30분) → 상봉(별유산)(30분) → 의상봉(1시간 40분) → 장군봉(30분) → 바리봉(2시간) → 뒷들(총소요시간 : 9시간 40분)
-제2코스 : 고견사주차장(30분) → 고견사(20분) → 의상봉(30분) → 별유산(1시간 20분) → 마장재(50분) → 고견사주차장(총소요시간 : 3시간 30분)

*가는 길
-88고속도로 가조나들목을 빠져나와 가조면소재지에서 오른쪽 해인사 가는 2차선 도로를 따라 간다. 88고속도로 굴다리를 두 번 지나면 왼쪽에 비계산으로 오르는 초입을 알리는 표지리본이 보인다. 가조나들목에서 비계산 등산로 초입까지는 5분 남짓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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