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능선이 남도의 지붕 이루고
부드러운 능선이 남도의 지붕 이루고
  • 장갑수
  • 승인 2006.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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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의 아름다운 산행]덕유산(1,614m, 전북 무주·경남 거창)
▲ 칠연폭포 ⓒ장갑수 안성매표소를 지나자 칠연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다. 5m 높이의 폭포가 우렁차게 쏟아져 검푸른 소를 이룬 문덕소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자연의 소리야말로 혼란해진 마음을 가다듬기에 안성맞춤이다. 깊은 산속에서 조용히 흐르던 계류가 굽이굽이 돌면서 미끄러지듯 쏟아져 깔끔한 반석 위로 떨어진다. 폭포수를 맞아들인 반석은 억겁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옥빛을 띤 일곱 개의 못(七淵)이 되었다. 옥같이 맑은 물은 일곱 개의 못에서 맴도는 듯 미끄러져 또 다시 일곱 폭의 폭포를 만들어내었으니 칠연폭포다. 깔끔한 일곱 개의 못은 옥구슬을 꿰어놓은 듯하고, 하얀 폭포수는 비단결이 나부끼는 것 같다. 폭포수를 맞아들이는 못은 깔끔하게 다듬어놓은 돌확처럼 정갈하다. 티 없이 맑은 폭포수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듯이 사람도 맑은 영혼을 가지고 살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맑게 해준다. 첩첩한 봉우리와 깊고 깊은 골짜기 덕유산의 웅장함만큼이나 나무들의 격조도 남다르다. 한 아름도 넘는 적송이며 하늘높이 솟은 활엽수들이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말없이 걷다보면 산의 주인들이 말을 걸어온다. 새와 매미는 노래로, 계곡은 쉼 없는 흐름으로, 나무는 몸짓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동엽령 바로 아래까지도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행복함을 누린다. 동엽령에 도착하니 북쪽으로 백암봉과 향적봉이 손짓하고, 월봉산·금원산·기백산 같은 남덕유산에서 뻗어나간 산들이 남쪽으로 펼쳐진다. 무주군 안성면과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가 서쪽과 동쪽에서 골짜기를 이룬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경상남도 거창·경상북도 김천과 갈리는 전라북도 무주는 덕유산을 비롯하여 전라북도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산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무주 사람들은 예로부터 산에 기대어 살아왔고, 생활문화도 산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흔히 송계삼거리라고 불리는 백암봉에 올라보니 중봉과 향적봉이 지척이고, 무룡산과 삿갓봉-남덕유산-서봉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이 첩첩하다. 부드럽되 웅장한 덕유산의 자태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동쪽으로 이어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파도가 출렁이듯 밀려온다.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있지만 정상인 향적봉을 두고 그냥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중봉과 향적봉을 다녀오기로 하고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1,500m에 가까운 고산지대에 광활하게 펼쳐지는 덕유평전을 걸을 때는 가슴이 포근해진다. 한여름에 군락을 이루며 꽃을 피우는 원추리와 비비추 같은 야생화들이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중봉(1,594m)에서 바라본 향적봉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하다. 사방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전망도 가슴을 활짝 펴지게 한다. 중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길에 만난 주목군락에 넋을 빼앗긴다. 여러 차례 만나 낯이 익은 주목들이 오랜 친구처럼 반갑다. ▲ 덕유산 고사목 ⓒ장갑수
살아있는 나무는 살아있는 대로 고사목은 죽은 대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주목의 자태가 진한 감동을 준다. 같은 나무이면서도 반은 죽어있는 채로, 나머지는 살아있는 채로 공생하는 주목을 보면서는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님을 깨닫는다.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라는 사실을 주목이 일깨워준다. 덕유산에는 자그마치 7,436본에 이르는 주목이 서식하고 있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에 선다. 나는 향적봉에 오를 때마다 남도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첩첩한 산군(山群)에 흠뻑 취하곤 한다. 저 말없는 산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이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기에 산은 나의 정신적 스승이다. 덕유산을 이루는 수많은 봉우리들은 물론이고 멀리서 가까이서 덕유산을 둘러싸고 있는 가야산·비계산·보해산·황매산·지리산과 월봉산·금원산·기백산, 그리고 운장산·대둔산·계룡산·서대산 같은 산들이 그러하다.

편리함속의 가벼움, 불편함속의 깊음

향적봉에는 무주리조트에서 곤도라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로 만원이다. 그러나 산 아래에서부터 땀 흘려 올라온 사람들과 곤도라를 타고 여행하듯이 손쉽게 온 사람들의 감동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편리함속의 가벼움과 불편함 속에서의 깊음의 차이일 것이다.

백암산으로 돌아와 다시 백두대간 길을 걷기 시작한다. 울창한 숲과 부드러운 흙길이 걷기에 편안하다. 가끔 전망이 트일 때면 중봉-백암봉-무룡산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산속 깊숙이 뻗쳐있는 구천동계곡에도 마음을 빼앗긴다.

구천동계곡은 덕유산 북쪽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로 장장 70리에 이른다. 구천동계곡은 길게 이어가면서 33경에 달하는 수려한 풍경을 낳았다.

대간을 걷다보면 들판과 마을이 산에 기대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산이 만들어내는 물줄기를 따라 들판이나 마을이 형성되고, 어린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부모님처럼 산은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다.

주변이 초원지대인 대봉(1,263m)에서는 물도 마시면서 차분하게 전망을 즐긴다. 향적봉-중봉-백암봉이 바라보이고, 금원산 근처의 고봉들도 불쑥불쑥 솟아 있다.

갈미봉 직전의 전망바위에서 남덕유산에서 무룡산-백암봉-지봉-대봉을 거쳐 달려오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빼재로 고도를 낮춘다. 대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가 우뚝 솟은 투구봉도 바라보이고 빼재로 오르는 갈 지(之)자 도로도 내려보인다.

10여 미터를 깎아내려 도로를 낸 빼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아프다. 백두대간은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신풍령이라고도 부르는 빼재는 거창과 무주를 잇는 37번 국도가 지나지만 차량통행은 별로 없는 편이다. 하산지점이 되는 신풍령휴게소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뜨거워진 가슴을 식힌다.

*산행코스
-.제1코스(백두대간) : 안성매표소(1시간 50분) → 동엽령(50분) → 백암봉(1시간 10분) → 횡경재(1시간 30분) → 대봉(1시간 40분) → 빼재 (총소요시간 : 7시간)
-.제2코스 : 안성매표소(1시간 50분) → 동엽령(50분) → 백암봉(40분) → 향적봉(50분) → 백련사(1시간 20분) → 구천동주차장 (총소요시간 : 5시간 30분)

*가는 길
-.대진고속도로 덕유산나들목을 빠져나와 좌회전하면 안성면소재지에 이른다. 안성에서 오른쪽 자연학습원 가는 길로 우회전하여 마지막까지 직진하면 칠연계곡 입구인 안성매표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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