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낳은 큰 밝음의 산
단군신화 낳은 큰 밝음의 산
  • 장갑수
  • 승인 2006.07.17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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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의 아름다운산행]태백산(1567m, 강원도 태백·경상북도 봉화)
화방재에 도착하니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새벽 숲이 품어내는 상쾌한 기운이 내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부보상들이 지었다는 사길령 산신각에는 세 사람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신신각 문을 열어보려다가 안에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포기를 한다. 이곳 산신각에서는 음력 4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

새들의 성화에 나무들도 잠에서 깨어났다. 나무들이 잠에서 깨자 날은 완전히 밝아졌다. 북쪽에서 함백산도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켠다. 태백산(太白山)을 우리말로 하면 '한·뫼'다. 그래서 한백산, 한박산, 함박산, 함백산으로도 불리었다. 이처럼 함백산은 태백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금 함백산으로 부르고 있는 저 산도 원래는 태백산의 큰 덩치에 속했다.

주목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 주목은 아무데서나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태백산이 아니고서야, 덕유산·지리산이 아니고서야 어디에서 저 당당한 주목의 자태를 보겠는가. ⓒ장갑수 첩첩하게 겹쳐지는 산봉우리를 넘어 쟁반 같이 큰 불덩어리가 세상을 붉게 비취며 솟아오른다. 밝음의 상징인 태양이 떠오르면서 세상은 잠에서 깨어난다. 유일사 쉼터를 지나자 구상나무와 주목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버틴다는 주목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서려 있다. 주목은 학이 나래를 펴는 것 같은 곡선미로, 세찬 풍파를 이겨내면서 한쪽으로만 가지가 자란 불균형이 오히려 균형을 이루는 기형미로, 풍성한 가지와 잎을 가진 아름드리 고목의 장중함으로 '큰 밝음의 산' 태백산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태백산 천제단 근처에는 갖가지 모양을 한 주목이 3,900여 그루 서식하고 있다. 주목은 아무 산에서나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태백산과 함백산이 아니고서야, 소백산과 덕유산이 아니고서야, 지리산이 아니고서야 그 어디에서 저 당당한 주목의 자태를 볼 수 있으랴. 하늘로 떠오른 태양은 신성한 빛을 함백산으로, 태백산으로 그리고 백두대간의 여러 산줄기로 이어준다. 하늘과 태양은 인간에게는 신이고 절대자다. 하늘은 중간에 산을 두고, 산으로 하여금 자기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했다. 하늘은 빛을 통하여 신을 내려준다. 태백산에 신령스러운 빛을 내려준다. 이윽고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에 이른다. 여기에 장군단으로 불리는 천제단(天祭壇)이 있다.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태백산에 세운 세 개의 천제단 중의 하나다. 민족의 영산, 태백산에는 이렇듯 '신 내림'이 있다. 신이 내린 곳에 제단을 세우고 기도를 드렸다. 이는 단군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려고 굴속에서 기도를 하다가 호랑이는 끝내 못 견디고 뛰쳐나가 버리고 곰만이 사람이 되었다. 그 산이 바로 태백산이다. 하늘을 만나는 곳, 신을 만나는 곳에는 '밝음'이 있다. 그것도 '큰 밝음'이 있다. 그래서 이름도 '태백산(太白山)'이다. 태백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으로 삼국사기를 비롯한 옛 기록에도 "신라에서는 태백산을 삼산오악(三山五岳) 중의 하나인 북악이라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태백산은 옛날부터 영산(靈山)으로 섬겨졌다. ▲ 태백산 장군봉 천제단. 10월 3일이면 이 곳에서 개천제를 지낸다. ⓒ장갑수
높이는 장군봉(1,567m)보다 조금 낮지만 천왕단이 있는 봉우리를 영봉(1,561m)이라 하고, 수두머리 또는 하늘고개(天嶺)라 부르기도 한다. 태백산 천제단은 장군단, 천왕단, 하단을 통틀어서 일컫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천왕단을 천제단이라 부른다. 해마다 10월 3일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부소봉과 문수봉이 지척에서 천제단을 향하여 절을 하고, 태백산이 내뿜는 기운은 구룡산을 지나 선달산, 소백산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주변의 수많은 산줄기들이 겹쳐지면서 태백산은 더욱 깊어진다.

천제단의 9부 능선에는 망경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거울처럼 맑은 동해를 바라본다 해서 이름 지어진 망경사(望鏡寺)는 전망이 좋아 망경대(望鏡臺)라고도 불린다. 신라 진평왕 때 지금의 문수봉에 문수보살이 석불로 되어 솟아오르자 이 소식을 들은 자장율사가 망경사를 창건하여 이 문수상을 옮겨놓았다. 지금의 망경사는 6·25 때 불탄 이후 근래에 지어졌다.

망경사와 천제단 중간에는 단종비각이 있다. 12세에 조선 6대 임금이 된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 의해 영월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죽은 단종은 그 후 영월, 삼척, 봉화 사람들의 꿈에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의 비가 태백산에 세워졌다. 비운의 왕, 단종의 비가 현재의 위치에 세워진 것은 1955년의 일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태백산 천제단으로 다가오는 산줄기들 ⓒ장갑수
하단을 지나 부소봉 직전에서 대간 길로 방향을 튼다. 융단 위를 걷는 것 같은 완만하고 포근한 길에서는 하늘보기가 힘들 정도로 원시림이 울창하다. 이러한 숲길을 걷다보면 고향집에 와 있는 듯이 편안해진다. 숲 속에는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색이 있으며, 언제 들어도 포근한 소리가 있고, 항상 신선한 향기가 간직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숲은 인간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심어주고 예술적 감흥과 종교적 감응까지 불러일으켜준다.

구룡산(1345.7m)에 올라서서야 비로소 장쾌하게 전망이 트인다. 태백산에서 신선봉을 거쳐 달려오는 백두대간이 그동안 팔았던 다리품을 대변해준다. 그리고 도래기재를 넘어 옥돌봉, 선달산으로 이어가는 백두대간의 봉우리들이 붕긋붕긋 솟아 있다. 남쪽에서도 문수산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다.

급경사를 이룬 내리막의 숲 사이를 뚫고 바람이 불어온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던 붓다의 말씀이 떠오른다. 어딘가에 얽매여 살아가는 나그네에게 거침이 없는 바람이 자유를 찾으라 한다.

산비탈 곳곳에 다른 나무보다 높이 자란 적송이 산의 격조를 높여준다. 이름 하여 춘양목(春陽木)이다. '소나무 중의 소나무'라 일컬어지는 춘양목은 이곳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을 중심으로 산악의 음산지대에 자생하는 적송(赤松)을 가리킨다. 춘양목은 수형이 곧고 옹이가 없으며 일반 소나무에 비해 재질이 단단하고 뒤틀림이 적어 옛날 궁궐이나 사찰과 관아용 건축자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도래기재 아래 폐쇄된 터널에서 나오는 바람과 물소리가 땀방울을 씻어준다.

*산행코스
-백두대간 코스 : 화방재(1시간 10분) → 유일사쉼터(50분) → 천제단(1시간) → 깃대기봉(1시간 50분) → 신선봉(40분) → 곰넘이재(1시간) → 구룡산(1시간 50분) → 도래기재 (총소요시간 : 8시간 20분)
-태백산 코스 : 유일사주차장(50분) → 유일사쉼터(50분) → 천제단(1시간) → 문수봉(1시간 20분) → 당골광장 (총소요시간 : 4시간)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제천과 영월을 지나 석항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우회전하여 계속 직진하면 화방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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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옥 2006-07-18 18:40:49
아래의 주장이 바르다고 생각 합니다.
표현을 부보상으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연은경 2006-07-18 07:07:05
아래 의견에 동의합니다. 보부상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부보상으로 정정해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나창환 2006-07-18 00:55:46
위 기사의 내용중 보부상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부보상으로 정정해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 부보상(負褓商)은 조선왕조 이성계 태조대왕이 중상육성정책(重商育成政策 1392)의 일환으로 하사한 명칭이고

- 보부상(褓負商)은 조선총독부에서 억상이간책략(抑商離間策略 1925)으로 변조 고착시킨 명칭입니다.

- 따라서 일제침탈의 쇠못인 보부상 용어를 퇴출시키고 한국전통의 뿌리인 부보상 명칭을 회복해야 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부사모(부보상을 사랑하는 모임 2001 http://cafe.naver.com/bubosang.cafe )를 검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