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바위군상과 시원한 폭포의 만남
신비한 바위군상과 시원한 폭포의 만남
  • 장갑수
  • 승인 2006.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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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의 아름다운산행]주왕산 720.6m, 경상북도 청송
대구를 지난 버스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의성나들목을 빠져나간다. 국도를 따라 청송으로 가는 길은 야트막한 산을 굽이굽이 돌아서간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속도를 낼 수가 없어 주변의 풍경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을 준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를 바라보는 마음이 넉넉하다.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 대전사 뒤편으로 우뚝 솟은 기암이 시선을 제압한다. 웅장한 기암(旗岩)을 배경삼은 대전사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기암은 웅장하되 사이좋은 형제마냥 옹기종기 모여 있어 포근하고, 표면이 매끄럽고 군더더기가 없어 깔끔하게 차려입은 선비 같기도 하다.

기암은 화산재가 용암처럼 흘러내리다가 굳어 단단하고 매끄러운 응회암이 되었다. 원래 기암은 폭이 150m에 달하는 거대한 암체였으나 수직으로 발달된 커다란 주상절리군을 따라 차별 풍화작용이 일어나 7개의 바위 봉우리로 분리되었다.

기암을 배경삼은 대전사의 행복

▲ 대전사 보광전 뒤로 우뚝 솟은 기암의 배경이 시선을 제압한다. ⓒ장갑수 대전사를 나와 주방천 계곡길로 접어들자 기암이 계곡안의 신비한 세계를 지키는 수문장마냥 근엄하다. 계곡 길을 벗어나 대전사 뒤편 능선을 오르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로 주방천 건너의 기암괴석들이 신비함을 드러내준다. 주방천 계곡가로 길게 펼쳐지는 기암, 연화봉, 병풍바위들이 거대한 성벽 같다. 바로 아래로도 촛대봉, 관음봉 같은 바위 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그 위로는 숲이 울창한 육산이다. 하늘높이 솟은 적송이 나는 듯하여 자유롭다. 정상은 숲이 가려 전망이 트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10분 정도만 가면 제2폭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 여기에서 제2폭포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사람의 통행이 별로 없는 능선 길을 택한다. 가메봉으로 가기 위해서다. 적송과 굴참나무가 어울린 능선은 걷기에 편하다. 가메봉에 가까울수록 가스가 자욱하게 끼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가메봉 정상에는 2m 높이의 돌탑이 서 있고, 주변은 확 트여 있으나 가득 낀 가스로 한치 앞을 볼 수가 없다. 아래로 절벽을 이룬 가메봉은 구름에 떠 있는 섬이고,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구름바다에 떠 있는 배다. 큰골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물소리도 들려온다. 아름드리 춘양목이 격조 있는 선비 같고, 단풍나무도 많아 환상적인 가을 풍경을 예고한다. 고즈넉한 숲길이 고요하고 포근하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티 없이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청량하다. 대전사에서도 협곡을 따라 1시간 30분 이상을 올라와서야 만날 수 있는 내원마을은 자동차가 다닐 수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원시성을 간직하고 있는 깊은 산속의 별천지다. 400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내원마을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다 떠나고 현재는 9가구만이 살고 있다. 중국 계림을 연상케 하는 풍경들 ▲ 주왕산 제1폭포 근처 협곡. ⓒ장갑수
고요하게 흐르던 물줄기는 20m 높이의 조그마한 바위 봉우리를 굽이돌아 아름다운 폭포 하나를 만든다. 제3폭포로, 주방천 세 개의 폭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2단으로 이루어진 제3폭포 중 윗 폭포는 10m 높이로 살짝 굽이돌면서 두 줄기의 폭포수가 부챗살처럼 퍼지면서 깊고 넓은 품의 소(沼)로 투신을 한다. 아래폭포는 15m 높이의 와폭으로 3m 폭의 물줄기가 바위를 감싸며 구르는 듯 쏟아진다. 아래에서 바라본 2단의 제3폭포는 멀리 하늘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신선도(神仙圖)를 만들어낸다.

신선이 된 나그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제2폭포. 제2폭포는 주방천에 합류되기 직전의 사창골이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12m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복숭아씨처럼 둥그렇게 패인 탕에 안긴다. 그리고 나서 6m 길이의 홈통을 따라 가냘픈 듯 쏟아져내려오면서 또 하나의 폭포를 만든다. 수량이 적고 규모가 크지 않은 제2폭포는 우렁차기보다는 다정하고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다.

물소리를 따라 걷다보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바위들은 물길을 따라 구불구불 길을 내주어 협곡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입맞춤할 것 같은 천애절벽의 바위 사이를 지나는데, 동굴 속 같다. 절벽 끝을 보려고 고개를 90도 각도로 치켜든다. 바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성냥갑처럼 조그맣다. 이런 바위 사이를 흘러가는 계류는 맑다 못해 검푸르다. 좁은 바위 홈통을 타고 숨죽여 흘러가던 물줄기는 폭포를 만든다. 제1폭포다. 중국의 계림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 주왕산 제3폭포. ⓒ장갑수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바위에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학소대와 떡을 찌는 시루 같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시루봉의 손짓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도 제1폭포가 있는 협곡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수십 미터 높이로 솟은 학소대와 옆에서 보면 사람의 모습 같기도 한 시루봉이 마주보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시루봉 아래로는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병풍바위가 길게 펼쳐진다. 주왕암 가는 길에서도 수십 미터 높이의 바위들이 인간을 왜소하게 만든다. 망월대에 올라 나는 또 다시 신선이 된다. 급수대가 코앞에 와 있고, 병풍바위와 연화봉이 근엄한 듯 아름답게 펼쳐진다. 병풍바위에는 조물주가 그려놓은 벽화가 장식되어 있고, 연화봉은 활짝 핀 연꽃 같다.

조그마한 암자 주왕암을 지나 주왕굴로 들어선다. 파란 이끼가 낀 3~4m 폭의 협곡을 따라 몇 굽이 돌아가니 굴 하나가 나온다. 5m 높이에 5m 깊이의 굴속에는 산신이 모셔져 있고, 굴 앞으로 10m 높이에서 물이 떨어진다.

계곡길을 걷는데 봄에 진하게 피는 수달래가 많이 눈에 띈다. 주왕이 흘린 피에서 수달래가 돋아났다는 전설이 상기된다. 대전사를 거쳐 속세로 돌아가는데 기암이 배웅을 한다.

*산행코스
-.제1코스 : 주차장(1시간 20분) → 정상(1시간 30분) → 가메봉(1시간) → 내원마을(20분) → 제3폭포(10분) → 제2폭포(40분) → 주왕굴(40분) → 주차장 (총소요시간 : 5시간 40분)
-.제2코스 : 주차장(1시간 20분) → 정상(1시간) → 후리매기(30분) → 제2폭포(40분) → 주왕굴(40분) → 주차장 (총소요시간 : 4시간 10분)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길안면 소재지에서 914번 지방도로로 좌회전(청송방향)한다. 청송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보면 주왕산으로 들어가는 이정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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