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찾을 수 없는 <우리동네>
'우리’를 찾을 수 없는 <우리동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2.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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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경의 심야영화를 보다]우리동네

▲ 영화 포스터.
영화 : 우리동네
감독 : 정길영
주연 : 오만석, 류덕환, 이선균


우리나라, 우리동네, 우리집…. 한민족(韓民族)의 언어습관은 관계를 선호하는 모습이다. 물론 내나라, 내동네, 내집…이 어법상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색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은 ‘우리’가 붙은 나열들을 일상에서 즐겨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말은 나 이외에 타인이 존재함을 전제한다. 더 나아가 나와 타인을 함께 묶어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친근감으로 발전하게도 한다. 한민족의 역사란 관계를 중심에 두고 그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의 기록인 것 같다. 상호작용의 끈끈함은 정(情)으로, 소원함은 한(恨)이라는 형태로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관계를 증명하는 듯하다. 단어 하나로 민족의 특성을 유추하는 것이 심한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한민족은 개인주의에 기반을 두고 확장되어 온 문화적 집결체’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사래를 칠 것이다.

현실의 생활에서 ‘우리’는 ‘나’이다. 관계적 의미가 대부분 퇴색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이윤추구가 최선인 경제체제에서는 돈벌이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들은 폐기대상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타인은 나와 함께해야 할 동반자가 아니고,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가 되어 버렸다.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동료인 불안정한 지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언젠가는 한판 전쟁을 벌여야 할 잠재적인 적들 속에서 사람들은 살고 있다. 나는 매 순간마다 남과의 구별을 선언해야 하고, 판매해야만 존재의 가치가 인정된다. 굳이 ‘우리’라는 단어에서 관계적인 의미를 찾아보려 애를 써도 그 범위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동네>는 한 초등학교 주변에서의 관계에 주목한 영화다. 연쇄살인을 매개로 무관해 보이는 개인들은 깊게 연결된다. 주인공들은 관계를 끊는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한다. 살인이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간관계를 끊는 극단적인 방식인데, 두 살인마들은 서로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의 주변인을 죽이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관계의 망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하나(경주-오만석 분)는 충동적이고, 다른 하나(효이-류석환 분)는 연습살인까지 마다않는 치밀함을 갖고 있다는 차이만 있다. 일련의 살인은 가장 익숙해야 할 우리동네를 가장 낯설고 무서운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감독은 ‘우리’가 얼마나 단절이 되어 있는지, 그만큼 얼마나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주인공들의 관계 설정으로 잘 표현해 낸다. 하지만 그 단절과 연결의 원인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거나,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탓하는 방식으로 현상적인 접근에 머물러 버린다. 현상의 내면에 흐르는 본질에 좀 더 주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주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자에게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을 부르게 한다. 한참 노래를 듣던 경주는 평하길 ‘기교만 있고 순수함이 없다’고 면박을 주면서, 멋들어지게 이문세 모창을 한다. 그가 찾는 순수함이란 과거의 느낌으로 돌아가자는 것인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과거에 기대는 방식으로 삭이는 것이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과거의 느낌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현실의 단절이 해결된단 말인가? 더욱이 지금은 그가 그토록 경멸하는 기교가 돈을 벌어주는 세상이다. 인간관계에서 기교는 처세라는 이름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순수함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넋두리로 취급받는다. 과거적 정서와 변화된 현재 사이에 낀 경주의 시선에서 감독의 방황의 폭은 감지되지만, 추억에 슬쩍 기대려는 회피적 해결방식에는 물음표를 찍는다. 결과적으로 ‘우리’와 ‘관계’라는 좋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영화가 ‘나’ 혼자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서바이벌로 변질되는 것을 불만스럽게 지켜보며 영화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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