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아메리칸 갱스터 (American Gangster)
감독 : 리들리 스콧
주연 : 덴젤 워싱턴, 러셀 크로
리들리 스콧 감독. 다소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2000년이 그에게는 전환점이었을까? <에이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델마와 루이스>(1991), <지 아이 제인>(1997)이 한편에 있다. <글레디에이터>(2000), <블랙호크 다운>(2001), <한니발>(2001), <어느 멋진 순간>(2006)이 다른 한편에 있다.
한 세기, 아니 새천년을 맞이하기 전, 세상은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있었다. 새로운 세기가 오고 8년이 훌쩍 넘어선 지금 그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은 시대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영화들은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또 관객들이 생각하게 했다. 돈벌이라면 뭐든지 하는 자본에 대한 경고<에이리언>, 복제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브레이드 러너>,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주부들의 반란<델마와 루이스>, 여성을 희생물로 정치적 생명력을 이어가려는 여성상원위원 고발<지 아이 제인>.
때론 무섭게, 때론 궁금하게, 때론 통쾌하게, 때론 음모적으로. 그의 영화와 함께하며 관객들은 지난 세기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앞에 거장이란 타이틀을 붙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그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현재를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짙어 보인다. 70년의 인생에서 얻은 것이 ‘세상 모든 것은 정당하다’인지, 1991년 <델마와 루이스> 이후 일련의 흥행참패의 충격인지는 알 수가 없다. 철지난 로마 ‘공화국’(왕이 없는 국가)을 찬양하고<글레디에이터>, 미군의 아프리카 주둔을 옹호하고<블랙호크 다운>, 연쇄살인마의 살인행각에 이유를 만들어 주고<한니발>, 돈놀이에 지친 금융브로커의 바람기를 미화하고<어느 멋진 순간>. 문제의식을 포기한 대가는 달콤했다. 헐리우드 흥행의 보증수표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이다.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들어가는 헐리우드 대작(?)을 맡겨도 투자자들에게 좀처럼 손해를 안겨주지 않는 몇 안되는 효자 감독으로 입지가 굳어진 것이다. 물론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주고, 재미를 선사하는 탁월한 능력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결과다.
<아메리칸 갱스터>도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70년대 흑인은 미국에서 자본가로 성공할 수 없었다’가 결론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소수자(흑인)가 미국 비즈니스계에서 겪은 불평등을 고발하는 것으로 들리겠지만 영화는 불평등에 이유를 제시한다.
정직·성실·근면의 자세로, 품질좋은 상품의 브랜드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며, 시장의 질서를 고려하는 흑인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 분)에게서는 프로테스탄티즘과 기업가윤리가 보인다. 문제는 그가 파는 상품이 마약이고, 뿌리깊은 부패와 공생관계라는데 있다. 이 불법과 부패를 소탕하는 것은 유태인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 분)의 몫이다. 마약과 공직사회의 부패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상황설정이 너무 인종적 편견에 기대 있다는게 문제다. 감독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자막을 내보이며 발을 빼보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해 보인다. 유태인 리치를 사회부적응자에다, 난봉꾼으로 그려서 일종의 물타기를 시도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사회부적응은 그만큼 청렴하다는 증거고, 난봉꾼은 ‘매력적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형량을 깎기 위해서 리치에게 굴종하는 프랭크의 초라함에서 편견은 그 극단에 이르는데, 관객들은 정의실현의 이면에 있는 인종편견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하며 영화를 소비한다. 또 American Gangster를 제목으로 하여 흑인을 미국 갱스터의 대명사로, 악의 온상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이르면 할 말이 막히고 만다. ‘미국은 문제는 좀 있을지 모르지만 우직한 유태인이 지켜준다’는 게 감독의 주장인 모양이다.
소수자 보다는 권력자에게, 문제의식 보다는 흥행으로 돌아선 감독께 한 말씀 드리며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감독님이 이젠 쉬실 때가 되었거나, 제가 머리를 집에 두고 영화관을 가야겠습니다.”라고.
[노해경의 심야영화를보다] 아메리칸 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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