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에 사리(舍利) 하나 키우다
마음 안에 사리(舍利) 하나 키우다
  • 범현이
  • 승인 2008.05.23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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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비어있음을 보여주는 목(木)조각가 ‘양종세’(45)

서로 투영하고 소통하는 교감을 꿈꿔

화순 동면에서 이서 가는 길목에 들어선다. 그의 작업실이 있다. 차창 밖으로는 유난히 안개 낀 듯한 노을이 연자줏빛으로 붉다.

세상의 슬픔은 죄다 어둠 속에 잦아들고 모서리 진 마음도 둥글게 허물어지는 시간이다. 작업실 마당 한쪽엔 툭툭 꺾인 나무의 흰 뼈들이 보인다. 마음의 깊은 상처 마냥 깊이 패여 있는 이곳저곳의 나무의 상처를 조각가 양종세씨는 “조각품”이라고 말한다.

살면서 주춤거리다 놓친 것들이 어디 한 둘일까. 더는 숨길 수 없어 서러운 속내를 저리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은 날 수없이 마음 칭칭 동여 내며 구석에 접어둔 슬픔이 자꾸만 기웃거린다.

버릴 것들을 미처 다 비우지 못한 사람은

▲ 목(木)조각가 양종세(45).
최근의 그가 만든 연작 시리즈인 ‘은결’은 매우 특별하고 독특하다. 미세한 바람결에도 무늬를 형성하는 수면 위의 물결무늬를 ‘은결’이라고 하지만 작가에게 있어서 은결의 의미는 실로 심오하다.

“삶의 형태는 항상 주변의 모든 상황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해와 달, 그리고 별과 바람 등 자연 속의 조화로움은 참으로 경이롭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의 작업은 수면 위에 일렁이는 은결을 표현하고 있다”고 작가는 자신만이 느끼는 ‘은결’에 대해 설명한다.

또 “호수 위를 지나는 해와 달과 별, 그리고 그 주위의 산과 나무, 지나는 바람은 그 형상을 흔들어 두께를 만들고 구름을 불러와 비를 뿌리며 그 수면 위는 동글동글 파문을 만든다. 이러한 자연 현상을 형상화 시켜서 나의 미감을 표현해 본다. 우리 인간들의 삶 또한 은결과 같이 항상 주변의 모든 형상들과 반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삶이란 뼈를 보이며 조각품으로 거듭 나는 나무처럼 한걸음 물러서서 관조하는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살아가는 동안 많은 감정들이 일어나고 사그라지며 이성의 절제와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미소 가득한 행복을 짓기도 하고 때론 힘겨운 좌절과 시련을 극복 하면서 보람을 찾아가는 긴 여행이 아닐까”하며 작가는 오히려 스스로 반문하기도 한다.

은결은 함축된 삶과 삶의 소통

작가에게 있어서 ‘은결’의 의미는 완벽한 ‘비움’이고 서로와 서로의 ‘투영’이며 ‘교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남김없이 함축된 소통의 언어다.

작가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인도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다. “1000불만 있으면 일 년을 너끈히 살았다”고 몇 년간의 인도 생활을 단 몇 마디로 설명했다.

“아주 어린 시절, 다른 얘들이 공차기 하고 놀 때 망치를 갖고 놀았다”며 “유난히도 도구 사용을 좋아해 집 안 곳곳에서 사고 뭉치였고 망가뜨려 놓은 것이 너무 많더니 결국은 조각가가 되었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조각은 재수를 하면서 결정했고 어린 시절 “미지의 알 수 없는 변화가 올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고 막연하게나마 꿈꾸었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보낸 시절은 그에게 살아가는 동안 튼실한 자양분이 되었다. 무작정 찾아간 곳에서 삶의 ‘생명’을 얻어 온 것이다. 사는 일이 매양 서툴러 엇박자로 절뚝이며 단역도 마다않고 흠뻑 젖어 걸을 수 있었던 힘도 그 생명의 밑 모를 힘이다.

시인 조병준씨가 쓴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이 땅이 아름다운 이유>란 책 내용 의 첫머리에도 조각가 양종세씨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도를 여행하다 만난 작가는 세계 각국에서 철학과 문학, 음악과 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 인도의 '코스모폴리탄적 시골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엔 그가 묵을 방이 없었고, 수소문 끝에 그곳에서 조각을 공부하던 작가의 집에 묵게 되며 인연으로 맺어진 이유가 넉넉한 작가의 마음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리라.

마음의 평정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나다

새로 이사한 작업실은 넓고 튼실하다. 예전에 농협의 창고로 사용했다던 그곳은 사방이 툭 터져 있고 천장이 높아 작가의 열망을 분출하기에 너무나 어울린 곳이다.

이곳저곳에 아직 손길을 기다린 채 제자리를 못 찾고 있는 대형 작품들이 우리네 장승과 너무나 많이 닮았다. 그는 마음이 허락하고 하고 싶을 때 정리하고 작품도 제작한다고 말한다.

쫓기 듯 살아가고 시간에 늘 보채는 우리에게 묘한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곧 오늘인 그의 마음을 읽으며 견뎌온 적막한 시간들을 말이 없어도 알겠다. 더께 앉은 허물들을 그는 스스로 헹궈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알려진 실력 있고 무게감 있는 작가다. 해년마다 <국제조각 심포지움>에 초대받아 참가 한다. 그곳에서 그는 세계의 굵직한 조각가들과 숙식을 같이 하며 현지에서 직접 조각을 하고 전시하곤 한다.

국제 조각 심포지움의 특징은 일정기간 체류하며 현장조각 후 그곳에 설치해두고 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그의 작품은 인도, 일본, 말레이지아, 호주 등에 소장 되어 있다.

작가는 “비어있음이 곧 시작이며 끝”이라고 삶의 철학을 묻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산다는 것은 가파른 능선을 쉼 없이 오르는 일이다. 부딪히고 깨지며 마음 안에 고운 사리(舍利) 하나 키우는 일이다. 주루룩 솔기 터진 슬픔 한 자락이 그의 조각 상처에서 배어 나온다.

문의 : 011-9610-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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