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운주사 계곡, 어느 사이 계단처럼 들어서 있던 논두렁은 자취없고 나락대신에 잔디밭이 등장했다.
논 위에 불쑥 솟은 탑들은 가지런히 정돈 되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굴러다니던 불상의 두상이나 신체들은 다북쑥처럼 모아져 있으며, 일주문이 들어선지 오래다. 새롭고 낯선 변신 앞에 그 공간을 비밀스럽게 찾아왔던 형들은 이제 어디로 갔을까?
그럼에도 천불천탑과 끝내 일어서지 못하게 된 와불이 꿈꾸었던 세상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그들에게 운주사는 성지 이상의 그 무엇이다.
그런 성스러운 공간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무기력해진다. 찾아서 실망하느니 상상 속에 누운 와불을 세우고 다시 눕혀 놓는 법이 더 낫다는 것을 아는 지혜이리라.
속된 나는 일주문 앞 차나무가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날 그곳을 찾았다. 벌들은 힘차게 차꽃을 파고들고, 가을 햇볕은 모자하나 쓰지 않은 내 얼굴에 따끔거린다.
하지만 저기 담벼락에 졸듯이 기대고 있는 불상들은 이미 햇볕에 그을려 원래의 얼굴색을 복원해 내기 어렵다. 모여진 자태에 따라서 가족 같고, 연인 같고, 부부 같고, 등 돌린 형제 같아 보이는 그들의 알콩달콩한 모습은 자체만으로도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올 것 같다.
대저 저 들은 어떤 사연을 지녔기에 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이미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끝내 일어서려고 했지만 어이없게도 사미승의 어깃장이 던져 놓은 닭울음 소리는 다른 생각으로 전이를 막아서고 있다.
더 이상의 상상이 허락되지 않는 공간은 잔인한 법인데 운주사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다시 그날 밤 도선국사가 내려오고 그와 더불어 천지공사를 수행할 신인들이 동행하면 나는 기꺼이 사미승이 되고 싶다. 모진 형틀에 매달리고 인두가 살 속에 다가와도 끝내 닭과 같은 짐승은 떠 올리지 않으리라 굳은 다짐까지 겹쳐 본다.
운주사와 앞 마을의 관계를 다 아는 듯, 용강리에서 오지 않았음에도 용강리에서 왔다고 하며 입장요금을 내지 않은 아주머니들의 즐거운 나들이가 엿보인다. 늦게 소피를 보고 온 다른 여인네가 낸 요금이 내 몸의 살점 떨어져 나간 듯 아까운 돈이라 공격한다. 불경한지고 라고 생각하지만 그 분들 예의는 발라 그 와중에도 불상과 탑이 눈앞에 스치면 머리를 조아리고 두 손을 비벼 대며 무언가 중얼거린다.
매표소의 손을 거쳐 시주하는 것 보다는 직접 불전함에 돈을 넣는 것이 더욱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의 현명함 아닌가 상상해 본다. 화염 무늬가 광채를 발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을 지나니 탑같은 집 안에 두 분의 불상이 등을 대고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응시하고 계신다.
본디 문이 있었던 것을 떼어낸 흔적이 남아있고 달아난 문짝 대신에 전설 한 자락 떠오른다. 공양을 드리기 위해 그 문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가 하도나 커서 당시 신라의 수도 계림에서는 꼭 이때면 중신 한 명씩의 목숨이 하늘로 가곤 했다고 한다.
이에 놀란 왕이 무슨 일인고 알아보니 도선이라는 중이 세상을 뒤집기 위해 천불천탑을 만드는데 그 곳 쌍감불의 신통력이 빼어나 일어난 현상이라고 한다.
왕은 진노하여 도선의 부인으로 하여금 그 문짝을 제거하라 명했다고 한다. 도선의 부인 이 부름 받잡고 문짝을 떼어내어 영광 칠산 앞바다에 버리고 그 후론 도선의 영험함도 별반 소용없었다는 슬픈 전설이 거기 남아있었다.
그렇게 이르다보니 걸음은 거기에 멈춰서서 공사바위나 명당탑이나 와불이나 칠성바위 쪽으로 운신하기 어려워졌다. 다시 되돌아오며 형체가 작고 문드러진 것들에 눈을 맞추니 성치 못한 이 땅 민초들의 몸들이 거기 있었다.
나부끼는 플래카드를 보니 11월1일부터 2일까지 운주문화축제를 한다. 천불에 턱도 없이 모자란 이곳이 천불천탑의 성지가 된 것에는 근동의 모든 바위안에 들어 있는 불성과 선량한 이곳 사람들의 불심까지 더 한 것 아닐까 란 상상을 가지며 절정의 성지에 편입은 그때로 밀쳐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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