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생각나고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향기가 있어서다. 각각의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색깔과 독특한 향기를 지닌다. 말 그대로 자기만의 향기다. 작가 이 나무 향기는 흙의 향기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작가는 여전한 모습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조막만한 자갈이 깔린 현관 입구에서 ‘춘향가’ 한 대목이 흘러나온다. 이 도령과 춘향이가 업고 놀며 부르는 ‘사랑가’의 한 대목이다. 다음 구절이 생각나 웃음이 입 가로 번진다. 집 안 가득 크고 작은 도자기들이 가득하다.
있던 것들이 없어지고 없던 것들이 다시 자리를 채운 작업실은 이제 몇 마리 시간이 되면 비둘기도 날아와 뿌려준 먹이를 먹고 날아간다. 챙겨야 할 식구가 늘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인연들을 만난다. 삶에 우연이란 없다. 먼 길을 돌아서든 어느 날 우연히 모서리를 돌다 맞닥뜨리던 이미 예견된 삶의 한 부분이다. 도예가 ‘이 나무’는 그렇게 인연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어
그는 혼신을 다하는 마법의 손을 가졌다. 그가 작업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더욱 그러한 느낌이 더해진다. 그가 만드는 도예 기법은 지금까지 도예가들이 작업하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가장 일반적인 물레성형도 아니며 코일 링은 더욱 아니다.
한 움큼의 점토를 떼어 바닥에 놓고 손으로 차근차근 말아 올리며 작품을 완성해갈 뿐이다. 기구도 필요 없고 다른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작가의 생각과 흙에 대한 감각,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도자기의 가장 취약점은 무게다. 생활자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건강한 식탁이 항상 걱정인 30~40대 주부들이 가장 각광 하는 생활자기도 무게가 주는 중압감으로 때로는 식탁에서 밀려나곤 한다. 작가의 직품으로 만들어진 생활자기는 보기에는 앙증맞고 무게도 가벼워 장식효과까지 갖추고 있어 인기가 좋다.
한 줌의 흙으로 단번에 끌어올려 이음새 없이 만들어진 작가의 생활자기는 엠보싱 기법까지 더해져 확연하게 가볍다. 게다가 유약의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인 ‘불의 조절’에 따라 갖가지 품위 있는 오묘한 빛깔을 만들어 주는 엠보싱은 너무나 독특한 느낌을 준다.
처음부터 모두가 수작업인데도 ‘도자기 함’ 뚜껑 하나까지도 아귀 안 맞는 것은 없다.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저하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다. 말 그대로 독학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시작해 지금의 방법을 찾아내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가볍고 품위 있으면서도 절대 인체에 해가 없어야 할 것”에 중심을 두었다. 똑같은 유약에도 불길의 조절에 실패해 원하는 색감이 나오지 않으면 가마 가득 구운 자기들을 모두 주저 없이 폐기한 적도 있다.
“손으로 빚은 오묘한 맛이 돋보여 광주에 오면 꼭 작품을 챙겨간다. 두드러진 자연미가 배여 있어 실패작인 ‘못난이’가 더 멋있고 좋다”는 전주에서 온 방 화선씨는 ‘이 나무’씨의 전폭적인 지지자인 동시에 전통 태극선 이수자다.
손(手)을 볼 때마다 내 손이 아닌 듯
그가 만든 도자기들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편리하면서도 아름답고 독특하다. 그냥 손으로 빚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마음을 담아 빚어냈다.
요즘은 차호(茶壺)만들기에 거의 온 정신을 쏟는다. 손으로 빚어 말리고 다시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조각하는 그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연잎을 형상화한 차호, 물고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차호, 각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모양의 차호들은 모두 자연 그대로다. 자연 안에서 재료를 찾았고 자연 안에서 그 형상 그대로 남김없이 표현된다. 어린 날 우리가 보았던 어머니의 돌확, 항아리, 돌담, 주춧돌 같은 아련한 향수마저 불러일으키는 자연들을 담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재구성된 것이다.
자신 역시 영원의 문제에 천착하면서도 인간의 근원적 고독에 대해 탐미한다. 그러면서도 영원 그 자체에 가닿는 것은 물론이고 영원의 먼 끝까지 다다르려는 기원을 나타낸다. 만지는 손끝으로 영원의 따스함을 느낄 뿐 아니라 더 나아갈 수 없는 끝, 끝에서 영혼의 옷까지 벗어내며 침묵의 질량을 온 몸으로 받아내려는 작가의 열망이 돋보인다.
송편을 빚는 것처럼 마음을 빚어간다고 해야 옳다. 그가 만들어 낸 자기들은 꼭 우리네 어머니의 둥그레한 허리와 마구간에 허름하게 매어져 있는 작은 송아지의 여리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닮았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평온
근 10여 년 동안 도자기 작업을 해왔고 하루도 거르지 않는 작업을 시작한지는 7년째 이르렀다. 뉘가 날 만도 한데 그는 자신의 손에 늘 감사한다. 손을 바라보다 불현듯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살아있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즐겁고 행복한 작업을 할 수 있으니 더 그렇다.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많은 시행착오로 비싼 수업료 지불을 했다. 제 자리로 돌아 온 지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욕망에 끌려 사람에게서 기쁨을 찾을 수 없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인다고 해서 전부를 믿을 수도 없다. 사람이 중심으로 서 있을 때 그 사람을 통과해 지나갈 것은 가고 또 올 것은 온다. 내게 맞으면 흡수될 것이고 빠트리고 지나갔다면 시간이 걸릴 뿐 다시 내게로 올 것이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을 화병(花甁)과도 같은 날들을 보냈다. 꽃을 마구 꺾어다 보기 좋게 치장만 했었다. 이제는 아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에 꿈틀거리며 다시 자신을 발견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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