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길을 가다
그림. 길을 가다
  • 범현이
  • 승인 2008.11.07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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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발로 뛰며 그림을 그려가는 작가 ‘김금남’

▲ 김금남 作 「구례산동-산수유 마을」

바라보는 그림에서 직접 발로 걷는 미술을 향해


눈에 보이는 그의 그림은 평온하다. 척박한 남도의 땅 위에 무지개 같은 색채가 걸려있다.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슬프다. 한없이 쌓여있던 순백의 눈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눈은 차갑고 조금이라도 녹아들면 더 곤궁해져 어찌할 바 없을 정도다.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눈물이 배어난다. 너무 알록달록 평온해보여 화살촉 같은 뾰족한 아픔과 푸르도록 시린 생채기들이 황토 빛으로 새 나오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너무나 견고해 되돌릴 수 없다면,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뿐이다. 맞서서 부딪혀보는 것. 상대의 아성이 무너지든가 내가 만들어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을 더 단단히 일으켜 세우든가.

▲ 김금남 作 「남쪽바다」

십우도(十牛圖)와 그림은 한 몸이다
 

남도의 고흥반도 끝자락. 폐교를 이용한 종합문화공간 ‘도화헌 미술관’에서는 2008년 시작을 작가 김금남의 ‘화행(畵行) - 그림. 길을 가다’로 기꺼이 문을 열었다.

삶의 고난 함과 생활에 묻혀 살아오던 작가가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화행, 즉 전업 화가의 길을 간다’고 공언하는 전시회이기도 했다. “소(牛)가 그리워 소를 찾아 떠나는 불교의 ‘십우도’처럼 이제 그림이 그리워 그림을 찾아 그림의 길을 가려 한다”고 작가는 수줍게 말한다.

그는 여느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안착해 있는 작업실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작업실의 공간은 안온하겠지만 의미가 없다. 그림을 그리려 길을 떠난 것이니 만큼 내 작업실은 길 위에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곧 길이며 살아가는 의미다’는 이야기다.

한 곳에 온전하게 머무를 때 몸이 편안한 반면 아마도 그는 서서히 목말라하며 붓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널찍하고 통통한 황토 빛 옷차림에서도 그가 ‘길 위의 인생’임을 알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그는 길 위에 온 몸으로 나섰다. 앞을 보고 걷는 일만 남았다.

▲ 김금남 作 「남쪽바다-고흥해변」

내 안의 그림을 향한 한 조각 DNA를 찾아


2008년 첫 개인전에 대해 “무리해서 첫 개인전을 열었었다”며 “조금이라도 일찍, 늦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자신의 결행을 선포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하지만 이미 시작과 동시에 그는 강진 청자문화제에서도 자신의 그림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며 갈채를 받았다.

동양화 형식이지만 일반의 동양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남도의 푸르고 질긴 생명력보다 눈이 시리도록 붉은 눈물과 회한뿐인 황토 빛을 묘사했다.

남도의 황토는 늘 슬프다. 붉어서 슬프고 그 황토에서 자라난 식물들이 너무나 푸르러 슬프다. 작가도 그림을 완성해가는 도중 간간히 발 등 위로 덜어지는 회한을 지켜보며 그 안에서 자신의 지난한 삶을 바로 보았을 지도 모른다.

‘남쪽바다 - 고흥해변’ 연작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작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거대한 지 눈에 보인다. 적당히 동그랗게 동선을 사용한 선 놀림은 남녘 인들의 마음을 그려주고 바다와 잇닿은 갯벌에서는 해변 가 사람들의 삶과 노동이 담겨있다.

하나라도 닮은 그림은 없다. 그는 살아있고 살아가는 도중에 만나는 풍경은 어느 것 하나 동일한 것은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산천 곳곳을 직접 화구를 짊어지고 바람으로 떠돌아다니며 발로 직접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리라.

<섬진강 매화마을>은 또 어떤가. 우리네 어머니의 정겨운 마음 그대로다. 복숭아 꽃 살구꽃 피어있는 담장너머 아련함이 그려져 있는 작품은 보여 지는 그림이 아니라 느껴지는 우리네 사랑과 향수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작가는 그림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반대한다. “그림만을 그리는 것은 결코 즐겁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는 자연의 신비를 담고 알아가며 그 안에 자연의 일부인 우리의 마음까지도 그려내기를 간절히 원하며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를 온전하게 그림에 기대려 한다. 자신의 작업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톨의 붉은 열정을 남김없이 불태울 때까지 그림을 그리려 한다.

▲ 김금남 作 「남쪽바다-고흥해변」

길 위는 만행(萬行)의 시작이다

장성 한마음공동체에서 몇 년을 같이한 김일환(장흥 정남진생약초 체험장 대표)씨는 “그림은 잘 모르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힘겹게 그리는 것 같은데 편안해 보이는 것이 땀 흘려 일한 후에야 명품 농산물을 수확 할 수 있는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작가는 여름 내내 지리산에서 산천과 함께 있었다. 그림 안에 지리산의 모든 것을 담고 싶은 열정이 그를 몇 개월째 그곳에 머무르게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꿈은 화가였고 마흔이 넘는 지금도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단 하나, 유일한 것은 그림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풍광을 화폭에 담고 싶지는 않다. 실경 속에 사실적 방법으로 진경을 그려내고 싶을 뿐이다. 거기에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마음까지 담아낼 수 있다면, 살아왔던 경치, 더불어 살아 온 원형까지를 그림 안에 담아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지리산 작업이 끝나자마자 그는 제주도를 향했다. 우리 국토 구석구석을 발로 걸으며 자신의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풍경 뿐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온 우리의 역사까지 화폭에 담는 것이 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길 위에는 우리의 흐르는 역사가 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온 몸으로 그 역사를 표현하는 일 뿐이다.

문의 : 010-2279-8196

▲ 김금남 作 「섬진강-매화마을」

▲ 김금남 作 「월출산-도갑사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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