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길 돌아보며 갈무리하는 한 해
전공을 살려 여행사에 오래 근무하였다고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건네올 때 “안 가본 곳이 없겠군요?” 라고 한다. 그래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답의 태반은 “아직도 가볼 곳이 더 많습니다”라고 계면쩍게 대답을 건넨다. 예전 같으면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거진 다 가봤지요” 라고 했었다.
하지만 길을 떠나보며 배웠다. 어제 같던 길이 오늘 가면 또 달라져 있다. 길 위의 나는 그대로지만 풍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 달라지는 사위에 눈을 맞추기 시작하면 이제 온통 낯설음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한 길 떠나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해서 어느 길을 가던 그 길은 내게 새로운 풍경이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길 위에서 또 다른 길 너머를 그리워하며 풍경에 편입되고자 한다.
며칠 전 일 때문에 화순 북면, 그러니까 화순온천과 적벽과 김삿갓과 물염정이 있는 쪽으로 가야했다. 모처럼만에 그 길을 향해 가니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섬진강과 영산강의 수계를 나누며 호남정맥의 한 자락인 유둔재에 터널이 생겨난 것이다.
꼬불한 길을 때론 걷기도 하고 차로 넘기도 하며 유달리 꼬부랑거리던 길이었는데 산의 심장에 뚫린 동공을 스스럼없이 지나갔다.
자주 찾지 않으면 길은 주변의 풍광까지 고스란히 가져간다. 이제 유둔재도 그 커브길에서 강냉이와 빵을 팔던 아저씨도 터널이 삼켜 버렸을 거라는 생각만 겨우 남았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유둔재를 걸어 넘었던 옛 시절은 내 도로교통의 체계 안에서는 갈수록 퇴출당할 것이다.
사실 새로운 길은 구 도로에게 사형선고와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법고창신이라는 문자는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새것은 낡은 것을 취하다 곧 낡아지고 덩달아 모두 함께 늙어간다.
그것이 풍경의 이면이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길 풀티재가 그런 형편이고, 함평에서 영광으로 가는 길의 밀재가 그러하다. 반면 그 소외감을 잘 극복하여 새롭게 조망 받는 곳도 있다. 광주에서 화순읍으로 가는 길 너릿재도 있다. 하지만 일단의 탄광노동자들이 1946년 미군의 사격으로 인해 학살을 당했던 슬픈 역사는 풍경의 언저리에 편입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일단의 일을 마치고 차를 몰았다. 아주 느릿하게 돌아본 무등의 발 아래 사람의 마을에서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바지런한 움직임을 바라보다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가득하다. 무언가 잡혀질 것 같은 풍경 앞에서 렌즈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루엣이 재미지게 나온다.
찰칵 거리며 순간을 담았다. 이제 내 눈보다 카메라의 눈에 길들여져 버린 렌즈형 눈에 잠시 경의를 표하다 따져 물어본다. 대저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두 가지 다 진실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시각의 제국에 전도되어 퇴화된 나머지 감각 기관이 늑골 저 아래서 들려주는 원망이었다. 처방약은 그닥 없어 보이는 진단이지만 민망하여 잠시 카메라를 놓아 본다.
어느 집 아궁이가 타들어가는 내음이 풍겨온다. 그럼에도 그 내음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별수 없이 다시 카메라를 쥐었다. 해가 일찍 지는 것을 아는 민가에서는 그나마 볕 기운이 사그라지기 전에 불을 지핀다.
방안 공기가 더울 때 불을 지피면 열효율이 높아질 것이다. 몸으로 배워왔던 생체의 시계가 그들을 시킨 일이다 싶고 나는 렌즈를 연기에 들이대며 셔터를 누른다. 이윽고 눈을 떼고 보니 당산나무 한 그루 들판에 의연하다.
친환경 농업단지 푯말이 선연하다. 그 구호는 마치 나머지 모든 것들이 얼마나 반 환경적인 것인지를 외치고 있는 듯 보인다. 옛 사람들은 매일 뜨는 해가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기온이 다르고 구름이 다르고, 산천의 경계가 다르며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문장의 발상이 되었다는 점이 새삼 상기된다.
무등의 발 아래서 모든 길은 매일 새로워짐에도 새로운 길들을 또 만들려고 무모하게 발바닥을 높이 들고 다니지는 않았는지 깊게 생각해 보았다. 길 위에서 지나왔던 길을 돌아보는 시각이다. 모든 길은 본디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는 말을 상기하며 한 해를 마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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