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미 아득해져버린 밤길 운전은 늘 위태위태하다. 아니나 다를까. 눈에 익숙하도록 다니던 담양 길을 잘 못 들어섰다. 주변은 온통 캄캄하다. 시간은 아직 초저녁인데도 밝은 불빛은 멀리서 지나는 자동차 불빛일 뿐 안도감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시하던 내비게이션을 다시 작동시켜 겨우 농로에서 빠져 나온다. 다시 익숙한 길로 들어서며 멀리서도 눈에 보이는 <목산공예관>에 다다른다. 송아지만한 삽살개 짓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비로소 든다.
습관처럼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불현듯 부딪히는 난관은 다시 한 번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차창 안, 뿌옇게 낀 습기가 말을 건다.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않아야 돼. 와이퍼만으로 닦아낼 수 없는 흔적들이 얼마나 많던가.
소중한 우리 떡살, 아름다운 떡살무늬
그가 만든 책을 펼친다. 갈피갈피 숨어 있는 아름다운 선과 색들의 향연. 단지 한 번 읽고 서가(書家)에 박아둘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진다. 삼베로 감싸인 겉표지는 우리 민족의 숨결이 느껴진다.
전통적인 떡을 만들어내고 그 떡을 더 맛있게 알리고 보여주기 위한 무늬인데 디자인 뛰어난 면면마다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우리 떡살이 이렇게도 아름다웠던가 새삼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얼마나 오랜 세월 귀를 막고 눈을 감아 전수한 무늬들일까. 어떤 의미로 떡 모양마다 각각이 다른 무늬들이 찍혀져 우리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산과 들에 가득한 생기발랄한 동식물, 하늘의 별과 구름이 새겨져 있고 만물의 근원인 음양(陰陽)의 이치가 남김없이 담겨있다.
단호하게 “심심해서…” 일을 한다는 김규석씨는 조부로부터 목공예를 배우기 시작해 남도전통의례음식과 떡살, 다식판 제작에 평생을 바쳐 온 故이연채씨에게 목공예, 떡살, 다식판 등을 사사한 뒤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다.
근 20여 년 동안 떡살, 다식판과 울고 웃으며 동거동락(同居同樂)을 같이했다. 나이 서른한 살에 시작해 마흔아홉에 이르러 1000여 점의 떡살과 다식판, 그리고 1300여개 무늬 탁본을 모아 두툼한 책 두 권을 제작했다. <소중한 우리떡살> <아름다운 떡살무늬>(미술문화 펴냄)가 바로 그것이다.
2007년에는 목공예 명장 12인에도 선정 되었다. 작가는 “떡살은 목공예 분야에서도 천대받던 것”이라고 웃음을 짓는다.
아름다운 문양이 찍어내는 아름다운 우리의 맛
결혼한 여인네들의 이바지 음식, 또는 다례(茶禮)상에 차와 함께 나오는 것이 떡과 다식이다. 떡과 다식을 만들기 위해 섬세하게 조각되고 만들어진 ‘떡살’과 ‘다식판’은 그 집안의 전통과 여인들의 마음씨가 집약된 조형 기구다.
“옛 무늬를 뿌리로 이 시대의 기원을 담아 재창작했다. 초가의 담벼락 한 귀퉁이에 모르는 척 걸려있는 낫이나 소쿠리가 소박한 아름다움을 반영했다면 지금은 도시 속 아파트의 세련미를 현실에 알맞게 담아야한다”는 게 그의 기본 생각이다.
“100년 전 옛것을 복원하기만 하면 100년 뒤 사람들 눈에는 단순표절로 비칠 수밖에 없다. 단순한 복사나 재현보다는 100년이 지나 검증되어 다시 전통으로 자리매김해질 수 있는 작품을 이 시대는 요구하고 있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회한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떡살과 다식판은 감나무, 먹감나무, 박달나무, 대추나무, 회양목뿐 아니라 그 중에서 100년 이상 된 박달나무를 최고로 친다. 1점 제작에 꼬박 일주일이 걸릴 정도로 손이 많이 간다.
흔히 여기저기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무 조각이 예리한 그의 칼끝에서 생명으로 피어난다. 매, 난, 국, 죽, 석류, 박쥐, 학, 거북. 그리고 기하문(산수, 뇌, 회자), 문자문(수복강녕부귀다남)등 그의 손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바탕으로 전통을 재현해낸다.
“하루 여덟 시간은 먹고 살아가기에, 또 다른 여덟 시간은 오로지 떡살무늬에 매달렸다”는 그는 떡살과 다식판이 골동품으로 사장되는 게 안타깝고 그 무늬들이 세월의 뒤안길로 소리 없이 퇴장하는 게 안쓰럽다.
전국을 누비며 실물을 구하고 무늬를 탁본하는 작업이 재창작의 기초가 된다. 누구의 지원도 관심의 눈길도 없이 오로지 나무와 무늬에 미친 결과 국내 최초의 ‘소중한 우리떡살, 아름다운 떡살무늬’로 집대성됐다.
나무를 깎아 무늬를 새겨 떡 위에 찍는 도구인 떡살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지만, 떡살은 우리 음식문화에서 나타나는 운치의 극치 중 하나다. 먹는 것 하나에도 보는 즐거움을 담아 감칠맛을 더한 우리 조상들의 미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떡의 종류는 수 십 가지가 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떡은 소도 들어 있지 않고 맛도 모양도 화려하지 않은 절편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떡살에 있다. 무늬에는 주로 벽사기복의 의미를 담았는데 이는 장식성이나 기능성보다 더 강조되었다. 특히 백일, 회갑, 혼례와 같은 경사로운 날에는 단순히 치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소망과 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무늬를 동시에 사용했다.
회갑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덩굴무늬 당초문이나 국수무늬를, 제사에는 윤회(輪回)나 정토(淨土), 편안한 죽음을 의미하는 박쥐에서부터 물고기 눈 등을,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혼례식에는 다산과 안녕을 기원하는 다섯 마리로 이루어진 박쥐나 봉황문, 물고기 등으로 절편에 무늬를 찍어 용도를 결정하는 탁월함도 있다.
“절편에서 보여주는 ‘무늬’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다. 그것은 조상의 삶이 담겨 있어 하나의 언어이며 무늬로 표현 방법을 대신할 뿐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는 “전통공예가면 자신이 하고 있는 전통공예에 걸맞은 시대상과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 이유, 쓰임새 등을 고증을 거친 분명하고 설득 가능한 이론을 반드시 겸비해야한다”고 강도를 높여 말하며 “그것만이 지금의 전통공예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덧붙인다.
떡살무늬를 제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졌다는 그는 몸을 이롭게 하는 것은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이며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은 ‘요리’라며 우리음식에 요리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이왕 내친 김에 체질에 알맞은 음식을 음양으로 풀어 낸 남도전통음식에 관한 책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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