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검고 푸른빛 나는 바다에 온 몸을 맡긴 종이배다. 구겨지고 물에 젖어 시간이 지나면 언제 물에 띄어져 있었는지 기억마저도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종이배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머리를 풀어 헤쳤던 작가는 늘 무엇엔가 목말라보였다. 작가들의 전시회 오픈 뒤풀이에서도, 속해 있는 미술단체 안에서도 늘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꾹꾹 눌러 담아 언젠가는 곧 터질 듯한 그런 느낌을 받곤 했었다.
주말, 늦은 시간에 찾아간 그녀의 작업실은 하늘을 다 담을 듯한 넓은 창이 세상을 단절시키고, 창밖으로는 말라 떨어져서 단 한 잎도 매달려있지 않은 은행나무가 보였다. 점점 어둑해져가는 검푸르고 붉은빛 나는 하늘이 그 은행나무 사이로 비켜나와 작업실 안을 깊숙이 비춰주었다.
붉은 빛으로 하나씩 물들어가는 작업실 내의 풍경이 꼭 그녀가 그린 그림과 닮았다. 작업실은 작가에게 커다란 종이배와 같았다.
화면 안 그림에서처럼 작가는 종이배를 타고 그 안에서 먹고 마시고 누우며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사람을 그리워하며 마음과 마음을 일일이 하나씩 그려내고 있었다. 바삭바삭한 자신의 뼈와 바람에도 날리는 살과 함께 깊고 깊은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인연을 따라 만난 탱화의 만남
2007년 가진 첫 번째 전시회에서 작가는 탱화를 보여주었다. 작가는 탱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트려준 1994년 겨울에 만난 ‘고려불화 특별전’을 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가 만난 ‘고려 불화 특별전’은 그녀의 그림을 서양화에서 탱화로 바꾸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 후의 작업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치밀한 밑그림, 섬세한 선묘, 은근하게 우러나오는 색채의 미감 등은 완벽한 하나의 세계였다. 모든 것이 감탄 그 자체였고 불교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그림 앞에 엄숙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전율이었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은 감로(甘露)탱화다. 떠난 사람들과 다시 밀려드는 사람들이 눈물로 치열하게 드러나 보인다. 인간의 죽음과 구원을 주제로 인간세상의 모든 애환이 대비를 이루면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죄를 인식하고 인간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 작가의 회화세계와 만난 것이다.
감로 탱화로 작가는 말한다. “으깨어져 길이 되지 못한 거, 끝까지 함께 흐르지 못한 거, 이제야 네게 다가서는 거 미안하다”
사회의 부조리함도 탱화 안에 굵직한 선으로 담아져
감로탱화에서 출발한 작가의 그림은 점점 발전해 그 안에 부조리한 사회를 담아낸다. ‘떠도는 넋들을 위하여’시리즈는 5.18 광주민중항쟁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화면 안에 가득한 사람들의 민주에 대한 열망과 대동세상에서 볼 수 있는 휴머니즘이 곳곳에 배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여기저기 활짝 피어있는, 혹은 피고 있는 연꽃들은 작가 자신이다. 작가가 꿈꾸는 세상, 그리던 세상이다.
그리고 다시 작가는 ‘풍속도’를 그린다. 꿈꾸던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 선 그는 차라리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도 하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털어낸 것 하나 없이 고스란히 보인다. 미용실, 옷가게, 노래방, 사우는 사람, 스케이트 타는 소년들 등 사회의 축소가 그대로 담겨있다. 여기에도 물론 모든 것의 한가운데는 연꽃이 피어있다.
작가가 풍속도 안에서 보여주는 눈은 작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네모로 벽이 둘러진 작은 세상에서도 각각의 사람들은 서로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있다. 온통 흐드러지도록 피어나고 있는 연꽃 세상으로 이루어진 ‘풍속도Ⅱ’는 사람살이 자체가 이미 연꽃이 뿌리를 내리고 진흙탕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결국은 연꽃을 피운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들여다볼수록 작가의 세상에 대한 미움보다는 눈물어린 연민이 보인다.
다시 ‘섬’으로 흐르다
작가는 다시 강물을 건넌다. 불혹의 나이를 가지 끝에 매달아 두고 오랫동안 흔들린다. 이제는 작은 배도 한 척 마련했다. 언제 가라앉을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음 편하게 누워도 본다. 강아지를 안고 파자마를 입은 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등이 휘어 일어설 수 없는 무게로 하염없이 돌아누워 보기도 한다.
파도는 금빛으로 여전히 일렁이고 작가는 한편으로는 붉은 바다에서 살며시 빠져나와 연두 빛 선명한 바다를 항해하기도 한다. 모두가 불면의 몽환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섬’은 바로 그녀다. 자신 스스로 가두어버린 종이배와 같은 섬이다.
파도를 타다 지치면 다시 그녀는 ‘혼자놀기’를 시작한다. 여전히 최소한의 물건들을 소유한 채 라면과 소주가 있는 작은 책상에서 놀지만 그 안에는 이제 연꽃이 아닌 목단의 화려함과 함께이다. 자신의 외로움에 스스로 변명하듯 생명을 화려하게 불어넣으려 노력하지만 목단 꽃에는 향기가 없다. 그녀는 역시 스스로 섬에 갇혀 외로움과 고통스러운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다시 만나는 ‘섬’의 ‘cryingroom I, Ⅱ’는 눈물과 추억, 회한이다. 작가의 작업실 안 풍경과 작가의 하루 일상을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세로69cm 가로100cm 안에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일상이 보인다.
그녀는 이 작은 종이배 안에서 어린 아이처럼 색색의 물감을 가지고 다리를 쭈욱 펴고 놀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쉬기도 하다, 지치고 정말 심심해지면 꾸꿈스러운 꿈도 꾸고 일기를 쓰기도 한다. 나무의 한 살 두 살 늘어가는 나이테처럼 생각의 깊이는 깊어가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갖고 있는 회한 그 자체다.
종이배로 만들어진 ‘섬’안에 몸을 누인 작가는 내부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단단하다고 믿어왔던 것의 부재를 확인하고 텅 빈 흔적, 그 자리, 얼룩이 지고 발이 시릴 때까지, 길이 끝날 때까지 항해를 계속할 예정이다.
프롤로그
나이를 한 살 더 먹어갈 수록 삶은 오래된 고목이다. 날마다 바라보는 것은 들꽃 향기가 아니라 말라져가는 꽃잎이다.
저물녁이면 맨 발에 덮이는 노을, 때 없이 속살 적시는 번개, 세상 어두워 해 다 져버렸는데 모퉁이 모퉁이마다 머리 풀고 춤추는 안개들... 손톱마저 얼어붙은 새벽은 깊고 깊어 오늘도 부서져 펄럭인다. 먼지처럼 같은 자리를 부유한다. 둥둥.
제 핏줄 같은 실을 뽑아 집을 짓는 거미, 나를 가두는 벽에 기대 ‘깊음 만으로 삶이 다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눈물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를 보는 동안 내내 불혹의 나이에 내가 가졌던 감정들이 되살아나 신산스러운 마음이었다. 작가는 불혹을 선택했고 나는 그 여지조차 없었던 것이 기억이 새롭다. 어디서 왔는지 여러 개의 혹들이 비소처럼 눈 안에 부처로 앉았다.
일시 : 1월13일(화)까지
장소 :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라이트
문의 : 010-6613-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