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째 이어오던 삶의 터전이 주암댐 건설로 수몰됐다. 광주 봉선동으로 이주한 뒤 자전거·공업사를 차렸지만 얼마 후 도로건설로 이 공간에서도 밀려났다. 또 다시 짐을 꾸렸다. 하지만 새 둥지를 튼 곳도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세 번이나 삶의 공간에서 쫓겨났다.”
조덕임(53)씨는 오늘도 광주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주거환경개선 사업으로 방림동 집이 강제철거 된 이후 횟수로 5년째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외로운 싸움이 아니었다. 전체주민 537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300여명이 주택 감정평가를 거부했다. 잘못된 이주정책에 맞서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자구의 몸짓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분노의 함성은 소리 없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강제철거로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조씨는 당시 강제철거 과정에서 용역깡패들이 휘두른 폭력에 대해 치를 떨었다. 특히 용역깡패들의 무법천지를 수수방관한 경찰들에 대해서는 서글픈 감정을 넘어 분노까지 일었다.
조씨는 “여덟 채의 집을 철거하기 위해 철거 용역을 태운 40인승 버스 8대가 왔지만 주위에 있는 경찰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며 “용역깡패들이 철거과정에서 저항하는 주민들을 폭행하고 옷을 벗겨 컨테이너 박스에 가두는데도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폭력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300명에 달하던 주민들은 어느새 13명에서 5명으로, 지난 구정 설 이후에는 단 3명만 남았다. 조씨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거환경개선 사업방식이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며 “새로운 공간에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과거에 살았던 생활의 흔적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씨가 외롭지만 싸움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조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강제 철거만은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주민을 고려하지 않는 난개발이 주민들의 주거권을 침해하고 강제철거로 마을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마을공동체가 해체됐기 때문이다.
조씨는 “재개발 반대싸움을 하다가 교도소에서 2개월간 형을 살았고 벌금도 냈다”며 “지난해 11월부터는 시청 100m 이내 접근 금지명령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 5년 동안 그렇게 잃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조씨는 오늘도 매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시청사 주변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