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처음 본 것은 몇 년 전, 다른 작가의 전시회여서였다. 짧은 수(手)인사를 나눈 그는 눈매가 곱고 선한 표정이 전시회를 열고 있는 작가와 많이 닮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는 애정이 많이 닮았다. 세상의 누가 어머니의 사랑에 등을 돌릴 수 있을까마는 작가는 유난히도 어머니의 모든 것을 표현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업실 안 책갈피처럼 켜켜이 세워져 있는 그림들 모두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어머니의 마음이 보인다. 피할 수 없고 결코 끊을 수 없는 어머니와의 ‘인연의 끈’이다. ‘사랑의 깊이’다.
이리로 오렴, 꽃은 피었다지고 한 세월의 끝, 뼈와 뼈가 세상을 억누르고 서로가 서로들 시새움에 강과 강이 휘감는 이 세월의 끝, 봄빛의 치맛살로 긴 날의 주름을 다스리며 그림 안에서 어머니는 눈빛으로 말한다. 이리로 와 이제는 평안히 쉬렴.
그림, 너는 내 운명
작가와 그림은 등뼈가 하나다. 살아오는 동안 그림은 그의 등에 둥지를 틀었고 그는 등이 휠 것 같은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며 그림을 업고 살았다.
“고1때 그림을 만났으니 30여 년이 넘었다. 세상의 바람에 휘둘려 방황을 할 때에도 붓을 놓지 못하고 등에 업혀진 그림을 내려놓지는 못했다”며 회환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주 어린 시절, 아랫배가 불룩한 요의를 느껴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어머니는 늘 장독대 위, 정안수를 떠놓았다. 새벽, 미명 속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알 수 없는 미세한 떨림을 주었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도 어머니의 정안수는 가슴 저 밑바닥에 여전히 놓여 있다. 그대로 삶의 기둥이 되었다.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바람은 우리 가족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것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어머니의 마음을 정안수로 표현하며 그리고 싶을 뿐이다”며 정안수가 주제가 된 이유를 설명한다.
정안수는 ‘정화수(井華水)’에서 나와 민간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이른 새벽 깨끗한 우물에서 퍼 올린 물이다. 아무도 손을 안 댄 첫 날, 첫 우물물이다. 그만큼의 깨어있는 마음과 정성을 의미한다. 정안수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어머니의 애잔한 마음, 아들 혹은 자식들에 대한 간절함, 세상의 평화까지, 이 모든 것들이 장독대 위 어머니의 간절한 정안수 한 그릇에 정성과 간절한 기원으로 담겨있다.
푸르고 깊은 어머니의 마음 강(江)
그가 그린 그림은 푸르다. 그 많고 많은 다양한 색들 중 그가 선택한 것은 푸른색이다. 작업실 안은 순식간에 물결을 이루고 파도를 치며 강으로 흘러가는 물결을 만들어 낸다. 큰 기원의 강물을 만들어 내고 깊이를 이루며 흐른다. 어머니의 마음과 작가의 애정이 합해져 만들어 낸 푸른 성찰의 물결이다.
들여다보면 어머니의 손 때 넉넉히 묻은 장독대가 보이고, 같은 목적으로 멀리 보는 기원의 솟대도 보인다. 눈으로 보면 금방 느껴지는 따뜻함이 그림 안 모든 것들로 보여 진다. 아크릴, 먹, 유화, 분채, 페인트, 천 등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형상은 단순화 되었지만 원형의 물성은 그대로 간직한 채 간절한 염원을 그대로 보여준다.
굳이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림을 보면 마음과 마음으로 보여 지고 읽혀져 감정의 순화를 돕는 한 권의 잔잔한 에세이를 읽는 것만 같다. 순한 눈빛으로 푸른 강물의 염원을 표현한 결과다.
그림마다 굳건하게 서 있는 선연한 붉은 선들은 지상과 하늘을 이어주는 간절한 마음이다. 솟대이기도 하고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결코 놓을 수 없는 하늘과, 가족으로 만난 어머니와의 인연, 살아 움직이며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할 붉은 핏줄로도 해석된다.
가슴 속 모나고 성긴 기둥을 헤아려 되찾으면 눈물의 되울림이다. 땅 속 깊이를 재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무한한 한 줄기 시선으로 한결같은 기다림이다. 온 세상 피를 끌어들여도 빈 바위들 울리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은 사랑이다.
이번 옥과미술관의 전시에서는 평면 작품을 비롯해 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를 준비한 기간이 2년 정도였으니 그의 역량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심심하고 무료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그가 준비한 작품은 100호부터 크고 작은 소품들까지 50여 점에 이른다. 노력하는 성실한 작가만이 가능한 일이다.
전남대 미술학과와 조선대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미술전문 잡지 ‘에뽀끄’, ‘조형21흐름회’, ‘한국 미협’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5월에는 나주시 초대전이 예정되어 있다.
다시 어머니의 정안수를 가슴에 담고
작가는 강을 헤엄쳐 보다 넓은 바다로 향하고 싶어 한다. 어머니의 기원이 빨간 실핏줄로 하늘에 닿아 놓을 수 없는 끈이 되길 바란다.
“그림을 그리면서 욕심을 버리려한다. 말하고 싶은 것이 넘쳐 그림이 답답해질 때면 알 수 있다. 더 그리고 싶을 때 북을 놓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여백이 충분하다. 여백 안에는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이 들어선다. 색이 채워지지 않은 작품이 더 꽉 차 보이는 이유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들은 /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이는 일 있을까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하는 이여 /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네게로 간다 /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 내 가슴에 쿵쾅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로 가고 있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프롤로그
작가탐방을 핑계로 오랜만에 시외로 나갔다. 직선의 길을 두고 멀리, 가능하면 멀리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잿빛으로 온통 휩싸인 겨울 들판은 손바닥만 한 새들을 품에 안아 먹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새들이었다.
젊음을 다 보내 버릴 때까지도 나는 네 귀가 꼭 들어맞는 도형처럼 살았다. 그러기에 젊음은 내게 아무런 거름도 남기지 않았다. 내가 성긴 투망으로 인생이라는 푸른 물을 건져 올리려고 밤새워 헛손질을 하던 가혹한 기억은 더 이상 젊지도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외로움이 작가를 만나러가는 글을 쓰게 했을까.
아마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너그러웠다면 글을 쓰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표지판 옆을 휙 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쳐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집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었음을 깨닫는다. 시속 100km로 집을 향해가고 있던 나는 이제 시속 100km로 점점 집에서 멀어지고 있다.
일시 : 4월20일(월)까지
장소 : 옥과미술관
문의 : 017-624-3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