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여긴 밭이었제. 집짓는 사람이 집을 쭉 지으면서 형성된 마을이여. 여기 기차 다닐 때 땅값이 싸서, 없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어.”
예전 마을 바로 옆으로 기차가 다녔던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1동 산수마을. 이 마을에서 30여전 통장을 했던 조모씨(66·여)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길을 내고 난간을 만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82년에 통장 시작해서 18년을 했었어. 통장하면서 5년 있다가 여기 동네 앞 길 공사를 했지. 그전에는 그냥 흙이었어. 또 바로 나오면 기찻길과 맞닥뜨려 굉장히 위험했지. 그래서 주민들과 함께 길을 내고 난간도 설치했어. 돈 거둬 난간 페인트칠도 하고, 함께 정자도 만들었어. 그 정자에서 막걸리 마셔가며 토론도 하고 그랬지. 재밌었어. 사람들이 호응도 잘 해주고.”
조씨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이런 재미는 이제 추억일 뿐”이라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고 아쉬워했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어려운 점은 예전과 달리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요즘에도 주거 환경 가꾸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은 편이다.
광주시와 푸른광주21협의회에서 지난달 7일 ‘내집앞 가꾸기 사업’을 공모한 결과 20~30개의 내 집 앞 가꾸기 공모사업에 58개 주민자치위원회·단체가 접수해 2.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행정력이 미치기 어려운 취약지를 특색 있는 마을 공간으로 가꿔 주변생활환경을 개선시키고 탄소흡수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하지만 푸른광주21협의회에서는 “이 같은 지원 사업이 올해 처음 실시되는 시범사업으로 시행이 잘 안될 경우 1년 사업으로만 그칠 수 있다”는 우려에 지난달 27일로 예정돼 있던 사업자 최종 선정에 제동이 걸릴 정도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사업이라면 결국 시설 중심의 사업으로 그쳐 그 취지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성공매뉴얼 개발 연구(2007. 행정자치부 연세대학교 도시문제연구소)에서는 이를 ‘경제적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국내·외 마을만들기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연구서는 한국사회 마을만들기 운동의 유형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도시지역과 비도시지역(농촌사회)이다. 먼저 “도시지역은 이미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상태’이기 때문에 이웃·지역공동체 형성, 생활환경의 쾌적성 추구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서는 “비도시지역은 농사를 지어도 이를 재화로 연결할 방법이 없다”고 평가하고 “‘중요한 것은 생활의 윤택’이고 그 ‘다음이 삶의 질과 공동체의 문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마을공동체에 대해 주민들은 ‘지역공동체는 당연히 있는 것인데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해서 어떠한 사업이나 축제를 벌이는 것이 낯설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이 연구서는 밝혔다.
‘경제적인 성과’를 이룬 사람만이 ‘삶의 질’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는다는 연구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토대로 보면 지금까지의 도시는 ‘경제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국 이런 토대 위에서의 마을만들기는 다분히 경제 논리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시설을 갖추는 것에만 돈이 투자되고 실제 주민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봉익 좋은동네만들기 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더디지만 함께 가는 ‘느림의 미학’ 즉 ‘자연의 원리’대로 가는 것이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이다”고 지적하며 “경제 논리는 ‘효율의 논리’로 시설 중심의 마을만들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이것은 그 동안 마을만들기를 관 중심으로 끌고 가 실적 위주의 사업이 되고 실제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는 반성에서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이어 “마을 공동체는 오랜 시간동안의 갈등과 그 해소를 통해 형성될 수 있다”며 “시가 마을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작하는 것이라면 1년 동안 해보고 앞으로 가능성을 타진해 나갈 것이 아니라, 3개년 계획을 기본으로 장기적으로 가져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봉익 대표 “삶의 변화 가져오도록 장기 계획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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