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로 추락하는 박찬욱, 설마?
[박쥐]로 추락하는 박찬욱, 설마?
  • 김영주
  • 승인 2009.05.20 09: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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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인심은, 유명한 사람에게 유심하고, 무명한 사람에게 무심하다. 출발부터 관객 40만 명을 모았다.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유명한 감독이 항상 잘 만드는 게 아니다. 잘 만드는 때도 있고 잘못 만드는 때도 있다.

처음엔 잘 만들다가 나중에 잘못 만드는 경우도 있고, 처음엔 어수룩하다가 나중에 잘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 어느 수준을 엇비슷하게 유지해 가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좋은 감독이었는데 크게 실망시키는 감독도 있다. 괜히 뻥치며 허세부리는 감독도 있고, 대중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작업하는 감독도 있다.”고 말한 적 있다.

박찬욱 감독,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처음 만난 감독의 놀라운 내공에 깜짝 놀랐고, [복수는 나의 것]에서 ‘이 나쁜 세상’을 진한 핏빛으로 짓뭉개버리는 그의 복수에 진저리쳤으며, [올드 보이]에서 ‘이 나쁜 세상’을 사시미칼로 생선회 떠버리는 그의 천재적인 악마성에 놀라면서도 두려웠으며, [친절한 금자씨]에서 그의 천재적인 악마성에 다시 한 번 놀라면서도 “이젠 그도 유명해졌다고 시건방을 떠는구나!”며 조금 실망했고, [사이보그 ···]는 ‘이 나쁜 세상’을 향하여 치열하고 강렬했던 박치기를 잠시 접어두고 느긋하게 한 숨 돌리며 노니는 듯해서 맹물 같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했다.

[사이보그 ···]의 맹물 같은 허망함을, 폭풍 같은 다음 작품을 위한 ‘폭풍 전야’일 거라고 예단했다. 아니라 다를까, 다음 작품은 흡혈귀가 된 천주교 신부를 소재로 한 [박쥐]라고 했다. 난 잔혹엽기의 공포영화를 워낙 싫어해서 일부러 회피한다. 그러나 박찬욱 영화만큼은 예외이다. 비록 잔혹엽기일망정, 폭풍처럼 몰아칠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들리는 말론,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들면서부터 준비하며 갈고 다듬었단다. 송강호도 많이 기다렸단다. 두려우면서도 두근거렸다. “종교가 갈망하는 거룩함이 일상생활의 천박함보다도 더 나을 게 없다. 성직자라고 똥 폼 잡을 것도 없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주눅들 것도 없다.

오히려 종교에 기댄 위선적인 결벽증이 일상생활에서 널려 있는 저질 인생보다도 더 큰 죄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이창동 감독의 [밀양]처럼 ‘현실적인 리얼리즘’으로 그려간 게 아니라, 성직자와 흡혈귀라는 극렬한 상징으로 그 위선과 욕망의 치열한 갈등을 그려갔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3641&videoId=21108
 
그런데 “잘 낳으려는 애기, 눈먼다.”고 했던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못났다. 그 두려움도 겉돌았고, 그 두근거림도 초쳐버렸다. 시나리오의 짜임새가 헐겁고 구멍이 많이 뚫려서 몰입과 긴장을 방해했다. 성직자의 위선과 흡혈귀의 욕망에 대한 상징적 은유는 별로 깊지도 기발하지도 못했으며, 그 화면과 앵글과 대사가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이 싱겁고 뻔~했다.

[추격자]처럼 발끝부터 저려오는 검푸른 두려움이 아니라, [스위니 토드]처럼 날선 칼날로 겁주며 놀라게 하고 샛붉은 핏빛만 처바르는 두려움이었다. 여기에 지나친 욕심을 부린 건지 어쭙잖은 재주를 피운 건지, 블랙 코미디까지 버무려 넣어서 죽도 밥도 아니게 어정쩡했다.

박찬욱의 에로 장면은 처음 만났다. 많이 서툴다. 스필버그 · 장예모 · 임권택처럼 도식적이고 억지스럽다. 뱀파이어가 목덜미를 깨물어 피를 빨아들이는 장면은, 호러의 공포와 에로틱 몽환을 함께 뒤섞어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섬세한 터치와 감각이 필요한데, 그걸 단순한 폭행과 게걸스런 식욕처럼 그려갔다. 실망이 피식 새어나왔다.

송강호의 성기 노출은 상당한 상징성을 갖고 있지만, 그게 강렬하다기보다는 깜짝 해프닝처럼 그려짐에 따라, 참새들의 입방아 일으키는 Gossip(가십)꺼리에 지나지 않게 된 것 같아 안타깝다. 매갑시 고추만 찬바람에 쫄고 말았다.

송강호는 그 동안 보아온 대로 고만 고만했다. 김옥빈은 그저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차갑고 냉소적인 비웃음이 잘 어울렸다. 그러나 표정과 그 분위기가 별로 흡혈귀 같지 않아서 실감이 덜 났다. 신하균은 맡은 역할을 무난히 소화해낸 정도였다.

나여사(김해숙)는 대단했다. TV드라마에선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무방비 도시]에서 단호한 표정연기가 도드라져서 조금 놀랐다. 마침내 이 영화에서 암팡지고 서릿발 치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기발한 반전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는 이 영화에 남겨진 희망은, 그냥 그대로 ‘섬뜩한 눈깔질’로만 그친 채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배경음악과 음향에선 아직도 박찬욱 다운 끼와 여운이 남아 있었다. 대중재미 C+·영화기술 B0·삶의 숙성 C+ .

그 동안 그의 천재성에 놀라고 주눅 들었는데, 이 영화로 “그가 이 정도밖에 안 되기도 하는구나!”며 놀란 가슴도 가라앉고 짓눌린 주눅도 순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고의 반열에 오른(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까지 높였던) 그가, 이토록 싱겁게 추락할 리는 없겠지요? 그의 기발한 천재성이 기이하고 엽기적인 쪽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둠을 여실하게 들추어주는 쪽으로 다시 생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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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2009-05-22 21:29:13
언급한 감독들이나. 부족했다고 지적하는 부분들이나..
그냥 글쓴이의 수준이 딱 그정도 까지 인듯.. 추격자에 스위니토드라니..;;
장예모에 스필버그? 지금.. 농담하자는건가..일기 쓰는것도 아니고.
아니 일기라면 다행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