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그 맑은 물의 시원을 찾아
섬진강, 그 맑은 물의 시원을 찾아
  • 전고필
  • 승인 2009.05.2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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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 해는 또 지치지 않고 박차고 떠오르며 매일 새로운데 나는 갈수록 약아지고 있지 않는가?

이른 봄꽃을 찾아 서두르며 섬진강변 광양으로 구례로 향하는 버릇이 생긴 것은 언제 부터일까. 매해 밀린 숙제를 마치듯 서너번은 그곳을 오갔다.

그런 참에 또 서울의 벗들이 쌍계사 벚꽃 좀 보자고해서 하동에 들렀다가 꽃사태를 맞았고, 5년전 연락이 끊긴 누님도 길섶에서 만났다. 하여 다음 행선지는 이 마르지 않는 인연의 뿌리, 강물의 시원을 찾아가자고 해놓고 잊어버렸는데, 마침 함께 일하는 식구들이 진안군 백운면을 얘기한다.

익숙한 이름이다. 4년전 생명의 숲에서 주관을 하여 충북 제천에 동명의 이름을 가진 백운면과 이곳을 택하여 마을 조사단을 꾸리는 일에 조력을 한 적이 있다.

워낙에 떠난 자리가 많다보니 귀농을 꿈꾸는 이들을 중심으로 먼저 마을의 속살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하여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구축하다 뜻 맞으면 정착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소중한 경험과 결과를 남기는 사업이었다.

소걸음으로 정착해 가는 프로그램이라고 듣고 있는데다 재작년에는 면 소재지 원촌 마을의 30여개 간판을 지역정체성과 주인의 삶의 결을 표출하는 형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던 곳으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더듬어보니 그곳에는 옹기장이 이현배 선생과 군수가 바뀌었어도 변함없이 마을만들기 사업에 진력을 다하고 있는 구자인박사도 계시는 곳이었다.

▲ 저 유연한 흐름이 막힌 산을 에두르고, 바위를 삭히고, 모래를 흘러내리며, 스스로 맑아져 순정한 섬진강을 만드는 시원일 것이다.
지역의 멘토 역할을 하는 이들은 이곳을 Eco Museum으로 가꾸어 나가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도 들은 기억이 난다. 지붕 없는 박물관, 지역의 모든 것에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존중하는 정신이다.
발전 하면 들고나오는 “삽질”이나 “언제”라는 질문은 애초에 상정하지 않았다. 고령화된 마을이지만 주민이 주체가 되어 각자의 영역에서 할 일들을 제안하고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적용한 것이 이 마을의 강점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광주에서 110여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해거름에 출발했다. 남장수 나들목으로 들어서서 금강의 발원지 수분령을 넘고 고원에 이른다. 장수에서 장한 금강 한자락을 내어주고 진안에서 또 섬진강 한자락을 내어주니 별명처럼 ‘무진장’ 귀한 곳이 여기 아닌가 라는 마음 챙겨진다.

하지만 좀 더 가니 고원 위에 넘어야할 산 하나가 드러난다. 호남정맥의 마루금을 갈라 놓은 서구리재(858m)다. 도로를 개설하느라 신음했을 산의 상처는 보이지 않고 이리 저리 산들의 사위가 눈높이에 걸리는 호사를 경험했다.

다시 찾을 약속을 하고 데미샘 아래 숙소에 들었다.  한 가족이 십여년에 걸쳐 조성했다는 펜션은 아담하면서도 식물원에 든 느낌이었다. 사방에 산마루가 막힌 곳에 매발톱, 할미꽃, 금낭화, 작약 등이 만개하여 인공의 선계였다.

밤이 되자 지상의 불빛들이 쉽게 잠들 때 하늘의 별들은 더욱 또렷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한 시인의 시제처럼 “별빛 보호지구”가 이곳 같았고 그 별빛에 눈부셔 일찍 눈을 감고 말았다.

▲ 건강의 매개가 지붕위에 앉았다. 현란한 말씀 대신 상징과 기호의 간판이 도시로 하산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서구리재를 찾았다. 해는 장수 너무 무주의 덕유산 자락에서 떠오르고 있었고 하늘은 쾌청했다. 일망무제의 공간에 산자락은 그 어느 곳 보다 선명했다. 능선과 능선을 이어가는 종주자들의 순례길이 부러웠고 차에 종속된 나를 지탄하는 시간이었다.

길에서 내려와 데미샘에 올랐다. 왕복 2.4km 정도의 숲길은 끊임없이 도란거리는 물소리가 따라왔다. 나뭇잎에 앉아 있는 햇발은 단풍처럼 황금의 빛을 선사하고 있었고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은 더욱 또렷해 보였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데미샘은 무등산의 너덜겅처럼 돌무더기들이 무너진 틈사이에 솟아나고 있었다. 섬진강의 시원은 이 물과 돌의 하모니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태백의 황지에서 심장이 솟구치듯 솟아나 덩달아 내 심장도 요동치던 서른 즈음의 기억과는 또 달랐다. 그야말로 물과 돌과 흙의 속삭임에서 발원하여 218km의 순도를 간직해 순정한 사람들을 길러온 저력이 보였다.

불순한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이 강물 제 스타일대로 막힘없이 흘렀으면 하는 간절함 가득했다.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간결하고, 애틋함을 담아 말을 걸어오는 간판들이 있는 원촌마을로 갔다.

전주대학교에서 지원하여 이뤄냈다는 이영욱 교수의 프로젝트에는 돈 보다는 주민과 끊임없이 만나고, 부대끼고, 설득하여, 환호작약했을 얼굴이 떠올랐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도랑을 만들고 강을 만들고 대해를 이루듯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모든 일들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통감하며 눈을 들어보니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그들의 얼굴들이 지나갔다.

▲ 깊은 산속이라 더 또렷한 색감과 더 환한 웃음으로 활짝 피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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