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이다’
‘사람이 세상이다’
  • 범현이
  • 승인 2009.05.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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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표현하는 조각가 김희상(46)

 

▲ 김희상 조각가.

늘 다니던 익숙한 길들이 전혀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80Km의 속도마저 어긴 채 고속도로 램프를 지나치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길들이 전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윗길로 가야하는데 아랫길로 가서 다시 되돌아 나오기가 세 번째다. 우회전 길에서 좌회전도 두 번째다.

익숙한 다리를 처음 건너는 다리처럼 불편하게 건너 작가가 있는 화순의 폐교에 들어섰다.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겼고, 사실은 약속을 일주일이나 넘겼다. 작가가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약속한 날짜, 어긴 것을 기억도 못했을 것이다. 미안함과 우울함이 무거운 마음을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작가가 있는 곳은 운동장 한 가득 풀이 한 자나 자라있는 작은 폐교다. 마을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정자에 앉아있는 어르신들이 묻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가야할 방향을 일러준다. 바람처럼 흙냄새를 맡아가며 본능으로 찾아간다. 거기 김희상 작가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서 있다.


창 너머의 세상 -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오다


▲ 김희상 作 「사람꽃」
민화로 만들어진 평면 부조가 작업실에 길게 세워져 있다. 구워지는 동안 갈라지고 터진 부조와 한 시리즈다. 아직 미완성인 채로 이미 작업을 중지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다 만들어 스스로 깨버렸다는 불두(佛頭)만 남은 미완성 작품도 벽 한쪽을 타고 놓여있다.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과 고통이 있었음을 알게 하기에 충분하다.

세상 속으로 8년 만에 스스로 걸어 나왔다. 스스로 걸어 들어가 자기만의 시간을 인내하고, 자기만의 혼돈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스스로 영글어져서 동그란 선들을 길게 조형으로 엮어 들고 나왔다.

그가 만든 조형들은 하나같이 둥글어진 선들이다. 지나간 흔적과 수많은 바늘을 머금은 상처들이 스스로 부딪히고 깨져 영글어지고 모난 곳이 닳아져 둥글어진 선들로 표현된다. 눈물과 깊이를 잴 수 없는 그만큼의 쓰린 아픔들이 순간순간 보인다.

“정말 많은 책들을 읽었고, 살아가는 것에 많이 고민했다. 스스로 걸어들어 온 만큼 스스로 결과물을 내고 싶었고, 시간에 맡기기 보다는 고민 속에서 해결해내고 싶었다”고 작가는 웃으며 말한다.

작가는 몇 주 전 전시회를 마쳤다. 5명의 작가들과 함께한 전시회이다. 낯선 표정이 전시회가 끝난 지금도 가득하다.

▲ 김희상 作 「사람꽃」

사람에게는 마음의 표정이 있어


높지 않은 천장 아래로 길게 일정의 사이를 두고 앉아 있는 조각들은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모든 표정들이 거기 있다. 웃고 울고 웃으며, 때로는 침묵, 깊게 가라앉은 표정들은 만져지는 부드러운 살결이 없어도 삶의 충분한 고통이 느껴진다.

모두가 한 가족이다. 한 가마 안에서 같은 시간에 태어났다. 하지만 하나는 울고 있고 하나는 깊은 침묵이다. 깊은 고뇌 중이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호소하는 조각도, 더 깊은 심연으로 침잠 중인 조각도 있다.

모두가 앉아서 무언가를 깊이 희망하거나 호소한다. 나를 키워낸 것은 세상의 모든 바람과 흙이었다고 말한다.

“대학 재학 중 만난 미술운동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치열한 시간들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시간들을 맞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작업들은 없었다. 공동 작업과 토론에 익숙해 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다시 시간을 가지고 내 작업을 찾아내는 시간이 내게 고통과 슬픔을 같이하게 만들었고 지금의 표정들을 갖게 한 것이다”

무릎을 꿇거나 한 쪽 다리만을 구부린 채로 조각들은 벽을 등지고 앉아있다. 아직은 일어설 수 없다. 밤낮으로 앉아서 온전하게 생각만 해야 할 때다. 더 이상은 쏟아 낼 눈물이 없을 만큼 눈물을 쏟고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낼 때 비로소 다리를 가질 수 있다.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다.

▲ 김희상 作 「사람꽃」

작업은 삶을 더 숙성시키고 차오르게 해


작가의 작업은 남다르다. 구워내는 방식은 도자기인데 외향적으로 보여 지는 조형은 조각이다. 동글납작하게 만들어진 흙을 통째로 사용해 형상을 만들어낸다. 통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적당이 말려진 다음 세 토막으로 분리되고 작가는 다시 분리된 조형물들의 안을 일일이 파낸다. 통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무게와 가마 안에서 소성되는 동안 무리가 갈 여지를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파내어진 세 토막은 굽기 전 다시 잇고 말리기를 반복한 다음 비로소 가마 안으로 들어가 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가마를 열기 전까지는 작품이 어떻게 나올 것인 지를 가늠할 수 없다. 힘들어 만들어 놓은 형상들이 건조과정에서 줄어들고, 다시 가마 안에서 소성되는 순간 줄어들어가는 것도 맘 아프다. 느낌 자체가 달라지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가마를 여는 순간, 작가의 마음은 더 부끄럽고 아파진다. 제 속살을 내보이는 아픔이다. 소나무와 편백나무를 이틀 반 동안 태워가는 동안 가마 안은 또 다른 세상이다. 나무가 숯이 되기도 하고, 타고 있는 나무들의 재가 날려 조형 위로 불꽃들이 얹히고 얹혀 새로운 색들과 형상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형상과 불조절의 시기를 느낌으로 알아내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다. 실패를 거듭하고, 또 해서 알아낸 느낌이다. 잠깐의 순간이 모든 것을 틀어지게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다시 일어서서 걸음마를 시작하다

▲ 김희상 作 「사람꽃」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내 작품을 위한 숙성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매일 일정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며 스스로 묻고 답하며 작업에 대한 역량을 키웠다. 멀리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기다린 시간도 아니었다. 고통을 스스로 가지며 내 작품에 대한 색깔을 찾아가는 길이라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다”

작가가 주조로 조형하는 ‘사람’은 우울하고 가라앉은 느낌의 사람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다가선다. 선이 단순하고 간결해 바라볼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속의 사람이야기를 하고 싶다. 현대의 경쟁과 속도만이 전부인 세상살이가 아닌 서로 더불어 살아가고 따뜻한 눈빛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세상. 슬플 땐 울고 기쁠 땐 웃는 희노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경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마음 아픈 일도 많았다. 스스로를 시간 속에서 채찍질만 거듭하던 시간도 이제는 더 견고하게 다가온다. 흙으로 만들어지는 세상 안으로 작가는 서슴없이 들어선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다.

화순에서 생활한지 10년을 훌쩍 넘어 이제야 접었던 날개를 편다.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날개 짓을 시작한다. 이제는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문의 : 010-4664-6044

에필로그

▲ 김희상 作 「사람꽃」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드려요 / 삶은 소리와 알파벳과 함께,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선사하고 / 내가 사랑하고 있는 어머니와 친구와 형제들의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빛도 주었죠 //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드려요 / 인간의 정신이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때 / 악으로부터 멀리 떠난 선함을 볼 때 / 당신의 맑은 눈의 본바탕을 응시할 때 / 삶은 내게 그들을 뒤흔드는 마음을 주었죠 // ~중략~  / 내게 이처럼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드려요 / 삶은 네게 웃음과 눈물을 주어 / 슬픔과 행복을 구별하게 함으로서 내 노래와 여러분의 노래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해 주었죠 // -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하며) - Song by Mercedes Sosa

삶의 줄을 순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달 넘도록 이 노래를 듣고 또 듣는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가슴 먹먹하게 솟아올랐던 눈물을 기억한다.

꽃을 피웠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그 너머의 얼굴 없는 시간 같은 거. 살다보면 덜커덩하고 기차가 멈추듯 우주의 시간이 멈추는 그런 시간. 온 몸에 열꽃이 일어 목이 뜨겁고 쓰리다. 어지러워라. 쏟아지는 기침처럼 흩날리는 국화송이들. 얼마나 기다려야 그대 꽃 등 들고 돌아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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