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하고 위대한(?) 일상!!
견고하고 위대한(?) 일상!!
  • 김영삼 시민기자
  • 승인 2009.10.1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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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제국/김영하/문학동네

▲ <빛의 제국>책 표지.

주어와 술어로만 이루어진 문장! 재기발랄함보다는 그로테스크적인 일탈이 돋보였던 소재들! 김영하의 초기 소설에서 받았던 느낌이다.

무의미한 [호출]들의 연속인 현대 도시에서 어떠한 [비상구]도 없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도 같은 생경함과 눈물나는 익숙함이 그의 소설에는 동거했었다.

[검은 꽃]은 그가 쓴 최고의 작품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말이다. 에리히 블롬이라는 과거의 문학이론가는 ‘영향에의 불안’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든 예술가들은 선배예술가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창성이 핵을 이루는 예술분야에서 작가들은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영하에게서 어떤 영향관계를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독자들 입장에서는 한 작가의 과거작품과의 차이를 더 두드러지게 보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말이지만, 김영하의 [검은 꽃]이 주었던 깊이가 꽤나 강렬했던 듯, 상당수의 사람들이 다음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 약간의 불안감과 궁금함을(과거의 소설에 비해서 더 잘 썼을까?) 지녔던 듯 싶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의 소설은 재미있었다. 재미에 대한 기준은 각자에게 맡겨둘 일이겠고, 내가 말하는 재미는 기발한 착상으로 현대 서울이라는 특정 도시의 이면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잘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다.

끈 떨어진 연처럼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남파간첩 기영은 이메일을 통해 갑작스런 귀환명령에 표현되지 않는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은 복잡하게 물려나간다.

냄새를 맡은 남한의 정보부 요원들과 옛날 대학시절 하룻밤을 같이 보낸 소지, 그리고 어느 면으로 보나 무능하고 비사교적인 성곤과 자신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또 다른 남파간첩 2명까지. 마치 기영의 그 귀환명령으로 인한 그 파급효과는 기영뿐만이 아닌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적잖은 파장과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그의 아내 마리는 또 어떤가? 가정을 가졌으면서 허울뿐이고 겉멋들은 20대초반의 애인의 트리플 섹스 요구에 몸이 뜨거워지고, ‘골프’라 불리는 외제차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가부장적 아버지의 삶에서 얻은 상처에서 하루라도 일찍 벗어나고 싶어하는 40대의 여자이다. 그리고 이 시대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처럼 (내가 서울에 살지 않으니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냉정함이 미덕으로 보이니 어쩌겠는가!)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는 남편의 고해성서에 가족을 위해 북으로 복귀하라는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이 둘의 딸 현미는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상처의 흔적이나 고통은 안 보이는 모습을 보이나, 실상은 직간접적으로 그 또래 학생들이 극단적으로 부딪치는 사건과 사고의 언저리에 서있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와 사귀는 진국이라는 남자친구는 과잉된 성적충동을 지니고 있으며, 두 개의 인격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다만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철수’라는 이름의... (이부분이 조금 섬뜩하기는 했다.)

그런데 과연 소설에서 사건의 핵심인 ‘간첩’이라는 공포스런 설정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80년대 소설로 귀환하자는 말도 아니고, 김영하라는 작가에 어울리지 않게 시리 갑자기 정치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실상 이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주 거대한 폭풍에 휩싸인 것 같은 이들의 하루는 다만 현대인의 일상적인 모습일 뿐이다.

김영하가 [검은 꽃]에서 한국인들의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한 민족적인 감정의 이야기를 아주 객관적인 필치로 그려냈듯,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위대한 일상이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이 그 어떠한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고 끝났다고 해서 불만을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일상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 사회의 일상은 견고하다. 아무리 거센 풍랑도 도시의 외곽도로에 부딪히는 순간 잔잔한 물결로 전락해버리는 것을 목도한다. 블랙홀의 그것처럼 일상은 모든 것을 흡수한다.

그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머나 먼 우주의 어느 한 지점에 티끌로만 존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을 느낀다. 그러니 일상은 위대한가?

우주의 한 지점에 먼지만큼의 가벼움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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