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예고 없이 경작금지 일방 통보…주민들 당장 생계 걱정
“공사가 이미 시작됐는데 이제 뭘 어쩌겠어요”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 봉호마을 나문식 이장의 탄식이다.
지난 12일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영산강 줄기 너머로는 ‘승촌보’ 건설을 위해 포크레인 1대와 불도저 1대가 굉음을 내며 땅을 파헤치고 고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는 24일 열리는 착공식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 제방 둑과 공사현장 주변으로는 ‘돌미나리 주산단지 토지수용 결사반대’라고 적힌 색색의 깃발과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현 정부의 ‘4대강 살리기’사업에 편입된 이 지역은 지난 10월부로 하천변 부지를 점용해 지어오던 미나리 농사가 전면 금지됐다.
나 이장은 “공무원들이 와서 더 이상 영산강에 미나리 파종을 하지 말라고 했다”며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지만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생계를 이어나갈 터전이 없어질 판인 농민들은 4대강 사업이 썩 달갑지 않은 기색이었다.
마을 가게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하천부지 점용 허가가 있는 이들은 그나마 보상이라도 받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환경부는 국토해양부 산하 각 국토관리청과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이뤄지는 61개 공구 634km 구간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지난 6, 7월 사전환경성 검토 협의가 완료된 이후 평가서 초안에 대한 주민공람 및 설명회, 관계기관 의견수렴, 12차례 환경평가단 자문회의 등 법적 절차를 충분히 거쳤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만난 주민들마다 “공사에 관해 제대로 들은 바가 없다”고 해 충분한 주민 설명회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봉호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벌써 개발 바람이 불었다”며 “정확히 누구라고 말은 못해도 공무원들조차 보상을 바라고 그 근처에다 땅을 사 놓았다더라”며 평화롭던 농촌에 불어 닥칠 보상 마찰을 우려했다.
29년째 미나리 농사를 지어온 고광용씨(59·학산리)는 “대통령 한 명하고 5천만 국민이 싸우는 일인데 못 이기고 있다”며 “이제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씨는 “대통령이 ‘4대강 살리기’가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까놓고 보니 건설사들, 포클레인 기사들 밥 먹여주는 일자리 창출이었다”고 일침했다.
옆에서 미나리 수확작업을 돕던 그의 부인 임금자씨(52)가 맞장구쳤다.
“그것뿐만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떠나고 갈수록 농촌 살이는 팍팍해지는데 서민 정책은 뒷전이고 멜 없는 강바닥만 뒤집는다고 난리다”면서 “대통령에겐 우리 같은 없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곳에선 승촌보 건설로 인한 가뭄 대비의 효과나 강바닥을 파내는 등 하천 정비 사업으로 인한 수질 향상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미나리 작업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영산강을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하면 광주에서 흘러나오는 하수나 폐수부터 관리하는 게 먼저다”고 주장했다.
임낙평 광주환경운동연합 의장은 “영산강 본류 전역과 지석천, 황룡강 등에 충분한 환경영향평가와 주민 설명회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민 70%에 달하는 반대 여론을 몰아 법적 대응으로 공사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