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전시회 뒤풀이에서 작가를 보았다. 하얗고 곱게 접어진 봉투 하나가 작가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주말 이른 아침. 전화를 걸었다. 어쩐다요..작업실에서 작품들 다 들고 나와 화방에 액자 맡겨버렸는데.. 결국 화방에서 만나 작품을 보았다. 액자로 단장되기 직전이다.
몇 번의 만남이 있었고,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작가는 노래를 불렀다. 맞다 작가는 늘 길에 있었다. 80년대를 지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이르기 전까지 늘 길 위에서 함성처럼 노래를 불렀다. 어떤 이들은 그를 가리켜 ‘영웅’이나 ‘신’으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민중, 민주대열 안에서 그는 한목소리로 거대한 산으로 움직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민중이 있는 한 민중가요는 필요하고 민중을 위한 시와 노래는 필요하다. 어떤 형태든 현 시기 민중에 맞는, 민중이 이해 못하더라도 때로는 교양할 필요도 있고 문화전사로서 밀고 갈 필요가 있고 그것이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노래를 부르던 문예전사가 이번엔 글그림 전시회를 가진다. 훈민정음이라고 단순히 표현하기에는 한 획 하나하나에 담긴 커다란 힘과 역동성을 모두 표현할 수가 없다. 바라보는 순간, 그대로 읽혀지니 그림이 분명하다.
새로운 세상 - 익숙한 묵향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가 보여주는 60여점은 <통일뉴스>에 연재된 소소한 일상들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농사를 짓고, 집을 고치고, 시장에 물건을 사러가는 동안의 부딪히는 잡다한 일상들이 담담함으로 보여 진다. 열정으로 가득 차 길 위 전사이던 시절, 강성으로만 표현되던 자신을 조금이라도 평정심을 찾고자 써 왔던 서예의 일환이기도 하다.
“서너 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붓을 들고 서예를 하는 것을 배웠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갈 나를 선친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허공을 보는 그의 눈이 허허롭다.
한 점을 완성하는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쓰고, 다시 숨을 고르고 쓴다. 100여 장 정도의 파지는 개의치 않는다. 스스로의 마음이 비워지고 다시 마음이 다할 때까지, 그래서 온 마음이 표현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 비로소 한 점이 완성되어 둥그렇게 말아지는 것이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겨울에는 또, 너무 추워서 작업하는데 장애물이 많았다”고 신산스러운 고백도 망설이지 않는다. 한 때는 다수 대중을 치료하는 음악의 길에 있었으나, 삶과 흘러가는 시대의 변화, 시간의 박자를 맞춰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20년 정도 서예를 하다 보니 스스로 깨우친 것도 많다. 내 스스로를 가라앉히는 작업이다. 주변의 시선, 평가가 아닌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자유로워지고 있는 자신을 느껴가는 깨우침이다”
<글그림>으로 다시 거리로 나오다
이번 전시의 명제는 <나의 삶은 커라>이다. 작가에게 우문처럼 묻는다. 물음표인가요. 느낌표인가요. 작가는 그것에 대한 대답은 묻는 사람 자신이 갖고 있다고 선문답을 해준다.
아직 시간이 많이 소요해 있고 삶이 안개로 자욱할 때는 물론 물음표였다. 명제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의문이다. 느낌표였을 때는 자신의 삶에 대한 다소 오만함이 엿보인다. 어쩌면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자신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나 온 흔적에 대해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교만함을 버린다면 하심일 수도 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민중의 삶들과 맥을 같이하던 작가는 자신감도 교만함도 모두 버리고 일상으로 살아 온 흔적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첫마음>에서는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줄을 타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첫 자를 강조한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도 늘 첫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마음이 단적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간직해야 하는 첫마음.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고 사람이기에 지킬 수 없는 것. 하지만 다시 사람이기에 꼭 지켜내야 하는 첫마음. 보면 볼 수록 먹먹해지는 작품이다.
<낮게>. 작품 안 글그림은 최대한 몸을 낮췄다. 그리고 부드러운 선으로 말한다. “몸을 낮추고 나서야 나보다 작은 삶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릎을 구부리고서야 욕심을 버려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낮음에 임하고서야 높은 곳에 있는 것들에 대한 분노를 태우게 되고, 마침내 낮은 곳을 향해 가고서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질경이처럼 살아내도 다가오는 무언의 목조임을 피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면 <이 언덕길을>오르면서 차라리 즐기라고 작가는 소리도 지른다. 온 몸을 던져 깨지더라도 절대 절명의 피할 수 없는 시간이라면 차라리 오히려 달려가 맞서는 것을 즐기라고 말한다. 작가의 작품은 언덕길을 형상화 시켜 글그림은 45도의 경사로 힘겨운 언덕을 오르고 있다.
여전히 삶은 온 몸으로 부딪히는 전사다
작가는 <혁명>에서 ‘나는 아직도 혁명이란 용광로에 붉은 심장을 녹여버리고 싶다’고 비명을 지른다. 단순한 글씨가 아니다. 적확한 부르짖음이 있고 강력한 힘의 메시지가 있다. 민중의 끓어오르는 숨결, 분노를 보는 것 같다. 형상화 된 이미지가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구호로 다가온다.
<길>과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역시 혁명과 같은 선상이다. 붕긋 솟아있는 산으로 형상화 된 한글은 이미지를 넘어 그림으로 보여 진다. 작가는 “서로 다른 길을 갈지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건, 다시 한길에서 만날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 하는 그대, 그대가 가는 곳이 바로 길이다”고 확신한다.
<외로움>도 있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 되기 위해서는 외로움이 있다. 외로워야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투명한 싸움, 스스로 낮아져야만 갈 수 있는 길, 질경이처럼 꿋꿋하게 버텨내야만 갈 수 있는 길. 작가가 걸어갈 길이다.
“정말 자유로운 세상에서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서로 같이 나누며, 다시 함께하며, 내 삶의 혁명가로 살아가고 싶다.”
일시 : 광주 12월9일(수)~12월15일(화)
서울 12월16일(수)~12월22일(화)
장소 : 광주 원화랑. 서울 인사동 라이트 갤러리
문의 : 017-611-3096
에필로그
청춘은 / 혁명 없이 한걸음도 걷지 못했다 / 혁명 없는 동지는 있을 수도 없으며 / 혁명 없는 사랑은 아이들의 빨대과자에 불과했다 / 술 한 잔을 놓고도 혁명을 이야기 했으며 / 몰래 가슴 깊이 품었다가 펴 본 금서들의 목록에도 / 혁명은 생명처럼 숨 쉬고 있었다 / 봄에는 새파란 솔 이파리의 생명이 있었으며 / 여름에는 땀으로 얼룩 진 근육질의 혁명이 있었고 / 가을에는 낙엽 지는 소리를 혁명의 핏 소리가 대신했다 / 겨울에도 혁명은 결코 겨울 잠을 자지 않았다 // 이제 와서 청춘은 / 혁명이 끝났다고 말한다 / 혁명의 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 난 뒤에 / 제 멋대로 마침표를 찍는다 / 혁명의 집 근처에 조차 가보지 못하고서 // 청춘이여 / 나는 아직도 / 혁명이란 용광로에 붉은 심장을 녹여버리고 싶다. - 詩 박종화
돌아 나오는 길. 점심을 겸한 술자리에서 작가는 거나해졌다. 난 묻고 싶었다. 용광로로 끓어오르던 혁명의 시간들이 현재, 무엇으로 남아있느냐고. 하지만 난 묻지 못했다. 순간순간 삶의 허허로움이 눈빛에 어려 있었다. 물기어린 목소리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노래로, 다시 전사로 살아날 것만 같았다.
잘 마른 장작 같은 몸이 비행 법을 잊어버린 새 같다. 앉아있는 작은 방안에 꽃불이 일렁이고 오래 전부터 주인의 손을 타지 않은 목마름들이 모여 쓰러지면서 향기를 토해낸다. 한반도 심장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음에 그만 목숨을 내어 놓으며 향기로 사라진다.
파란(波瀾)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