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시장에서 쓰고 놀다
대인시장에서 쓰고 놀다
  • 전고필
  • 승인 2009.11.28 01: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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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대인동 대인시장

도시도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 도시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 중 하나가 도로와 주거지의 이전이다. 대인시장, 그렇게 번성했던 시장이 사뭇 침체되어 이곳저곳의 부양을 받아야 되는 처지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광주의 행·재정적 구심을 이루던 도청의 이전과 도심의 공동화, 그보다 먼저 광주역의 이전, 터미널의 이전으로 인한 보행인구의 급감과 접근성의 변화, 청과물 시장의 별도 분리 이전 등 다양한 요인들이 대인시장에 타격을 가했던 것이다.

그런 쓸쓸한 시장을 찾았다. 예술가들 50여명이 벌써 8개월째 녹슨 셔터를 올리고 그곳에 둥지를 틀며 창작활동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 시장의 길들은 질퍽였던 옛 시절과 달리 깔끔하고 단정하였다. 간혹 장보는 이들의 걸음도 있었지만 시장에 있는 동안 장보러 오는 이들의 얼굴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시장의 길들은 질퍽였던 옛 시절과 달리 깔끔하고 단정하였다. 간혹 장보는 이들의 걸음도 있었지만 시장에 있는 동안 장보러 오는 이들의 얼굴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시장을 지키는 안주인들의 손놀림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다듬고 손질하고 포장하면서 혹은 정돈하면서 그들의 하루를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경 40여개의 점포에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고 하지만 시장 본래의 모습은 여전하였다.

작가들도 그런 시장의 풍경에 도드라지거나 튀어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있었다. 바다가 배달 나온 수산물 시장의 미끈한 표정을 지나 반찬가게들이 운집한 곳도 다녀보고 새로운 옷들을 내어 놓은 옷가게 부근도 기웃거려봤다.

▲ 물경 40여개의 점포에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고 하지만 시장 본래의 모습은 여전하였다. 작가들도 그런 시장의 풍경에 도드라지거나 튀어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있었다.

무언가 살 것들을 살피는데 그중 하나가 군용모포였다. 가끔 다니는 밤낚시에 기온이 서늘해지면 난로를 피우고 무릎부위를 보온해주는 것으로 군용모포를 따를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대인시장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이집 저집을 다녀보아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어느 틈에 나는 시장으로부터 약간 멀어져 있었다.

과거에는 그곳도 엄연히 대인시장의 일부였을 터인데 이제는 마치 제금 나온 것처럼 동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오연2길, 아마도 이곳은 지산유원지에서 발원한 동계천이 흘러가는 곳이었을 터이다.

시장이 번성할 때 이쪽 공간까지 외연이 확장되었고 그 길은 계림극장 맞은편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표 한 장에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계림극장, 그리고 풀빵구리에 쥐 드나들 듯 찾았던 중앙오락실의 변화된 풍경도 모처럼만에 보았다. 귀떼기가 새파랗던 시절의 추억이 담겨진 곳을 다시 바라보며 잊혀져간 제비우스와 갤러그를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 나온다.

다시 뒤로 돌아 대인시장의 중심부를 향해 나왔다. 계림양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상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예전에는 대로변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안쪽으로 들어섰는지도 궁금했다. 해서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 특이하게 생긴 재봉틀에 자꾸 눈길이 가서 여쭤보니 이것이 미제인데 미군들이 전투화를 손질할 때 쓰는 것을 구한 것이라고 한다. 70이 넘으신 아저씨의 기반이었을 미싱에 나도 자꾸 애착이 갔다.

신고 다니는 신발의 틈새가 벌어져 있는 것을 기워주시라고 하면서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눠보았다. 특이하게 생긴 재봉틀에 자꾸 눈길이 가서 여쭤보니 이것이 미제인데 미군들이 전투화를 손질할 때 쓰는 것을 구한 것이라고 한다.

70이 넘으신 아저씨의 기반이었을 미싱에 나도 자꾸 애착이 갔다. ‘등산화도 만들어 주시나 봐요’라고 물으니 요즘은 시대가 좋아 고어텍스를 넣어 만드신단다. 12만원이면 내 발에 꼭 맞는 등산화를 만들어준다는 말에 그렇지 않아도 헤진 등산화 때문에 고민했는데 당첨이다.

발의 모양새와 볼륨을 확인하고 일주일 후쯤에 들리면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드디어 나도 시장에서 소비를 경험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몇 년 만인가. 시장을 본지가. 하도 아득하여 기억조차도 가물하다.

막걸리 마시러, 전시 때문에 시장을 기웃 거렸을 뿐 정작 시장에서 내 삶의 연장을 위해 소모한 기억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양화점을 나와 국밥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니 이런 저런 예술가들의 얼굴들이 부쩍 눈에 들어온다.

후배 한 친구를 만나 이십년 전 대학시절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삼겹살집을 찾았다. 들깨가루를 내어 놓는 그 집의 특성은 여직 건재했다.

맛난 점심을 먹고 또 시장 안을 부비며 다닌다. 어깨에 걸리는 것이 사람이었던 시절은 아득하지만 이쪽저쪽 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로운 풍경으로 편입되어 있다.

▲ 어깨에 걸리는 것이 사람이었던 시절은 아득하지만 이쪽저쪽 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로운 풍경으로 편입되어 있다.

사천왕이 그려진 냉동고, 좁은 골목을 기웃거리는 소년과 소녀, 해태타이거즈와 롯데자이언츠와 한판 승부 속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의 투구, 내려진 셔터를 들어 올리는 장미란 선수의 모습 들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찰을 하다 보니 서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는데 한 술 하는 작가 한분에게 발목을 잡혔다.

대인시장 대폿집에서 시장의 모든 것을 다 사먹고 모자라서 예술혼까지 살 것 같은 호기로운 시간을 갖다보니 날이 어둑하다.

다음에는 집 안에 필요한 것들의 목록이라도 들고 시장으로 가야 되겠다. 곧 떠나게 될 예술가들과 남아있을 예술가들의 이름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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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련(戀戀) 2010-06-16 15:34:56
연련(戀戀) - 그리움, 미련이 있는

2008년도부터 연련을 준비해 왔습니다만,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요소들로 이제야 오픈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적된 감성들이 한 소실점 끝에서 만나 연련을 통하여 반짝 였으면 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그리워해 주시고 미련을 갖고 방문해 주신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쁠 것 입니다.
늘 처녀작 [處女作] 인 마음으로 겸손히 행하겠습니다.

연련(戀戀)과의 여행을 시작하며..2010.06.08
www.yeonrye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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