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전학을 앞둔 우리 반 한 학생이 선생님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조용히 건넨 책이 바로 <우동 한 그릇>이다. 전학 간 그 친구가 스스로 이 책을 골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친구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저를 기억해달라는 문구와 함께 나에게 작은 감동을 선물하고 떠났다.
<우동 한 그릇>은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작품으로 뛰어난 수사적 표현이나 거대한 대서사시도 아닌, 단지 북해정이라는 작은 우동집에서 벌어진 세 모자와 가게 주인이 만들어낸 휴먼드라마이다.
불의의 사고로 가장을 잃고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세 모자가 섣달 그믐날 가게 문을 닫을 무렵 북해정을 찾아간다. 돈이 없는 세 모자는 고작 105엔 하는 우동을 한 그릇 밖에 주문하지 못하지만, 이런 세 모자를 위해 주인은 따뜻한 난로 옆에 자리를 잡아주고 몰래 우동을 더 얹어준다. 이 같은 일은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계속된다.
그러나, 그 몇 해 이후로는 더 이상 북해정에서 세 모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인은 세 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섣달 그믐날만 되면 예약석으로 남겨둔다. 몇 년이 지난 후 멋지게 성장한 두 청년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타나, 세 모자의 인생 최고의 사치스런 계획인 우동 3인분을 주문하면서 북해정의 우동 한 그릇에 삶의 용기를 얻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면서 감동은 절정에 이른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사회 양극화와 고용불안으로 절대 빈곤층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이 많다. 또한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오로지 자신밖에 볼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북해정 주인의 작지만 따뜻한 배려는 현대인의 삭막함을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가는 세 모자의 가족애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해체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준다.
가난한 세 모자와 북해정 주인의 따뜻한 이야기 <우동 한 그릇>과 전학 간 그 녀석의 얼굴이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