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멀었다. 목포로부터 100㎞가 넘는 그곳 홍도에 이르는 길은 그다지 쉽지가 않았다. 기상 예보는 바람이 좀 있다고 하고 파도의 높이는 1.5m 정도라고 말했지만 실감하지 못하고 바다에 나섰다.
오후 1시 목포항을 출발한 쾌속선은 좌로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의 목포구 등대를 밀치고 이어서 팔금을 지나 암태의 연봉과 비금도와 도초도까지 지났다.
드디어 외해에 이르는 길, 그야말로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바다가 인사를 건네왔다. 수중익선 동양골드호는 뒤우뚱 거리며 점핑을 하였다.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이 휘둥그레지고 선내를 정리하던 기관사들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출발할 때만 해도 그가 건네주는 봉지를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그를 찾느라 야단법석이었다. 함께 간 사람들 중 8할 정도는 그 봉지에 신세를 진 것 같았다.
그렇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홍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 유람선을 타고 홍도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섬 둘레 20여 킬로에 달하는 이곳은 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관광을 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해서 가벼운 산책 정도로 오후를 지내려 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동백이 우거진 곳에 들어섰다. 그 숲의 주인공은 역시 동백나무였다. 육지에서 보던 조그마한 동백보다는 몇 배나 크고 그래서 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속에서 일찍 떨어진 낙화만이 발끝에 닿았다.
세상에 동백나무가 이렇게 클 수 있는 환경이 되다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숲의 한편에는 당집이 복원되어 있었다. 두 채로 지어진 집의 하나는 당신을 모신 곳이고 그 하나는 제사를 지내는 집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당제는 더 이상 모시지 않고 그저 지냈던 흔적만 복원하고 있었다.
숲의 정취와 바다의 사위에 익숙해지는가 싶더니 눈을 끄고 싶은 순간이 다가왔다. 바람이 선물한 숲의 울림들이 귓전으로 깊숙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홍도라는 지명 안에 들어있는 붉은 색감은 충분히 시각적으로 다가오지만 홍도에는 그것에 경도되고 나면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여행이 될 거라는 경계주의보를 이미 내려놓고 온 터였다. 해서 귀를 충분히 살리고 있으니 바람의 소리, 동백잎에 부딪히는 소리, 직박구리와 동박새들의 소리, 갯돌을 때리는 파도의 소리, 섬의 골짝을 돌아가는 소리가 깊게 다가왔다.
숲에서 빠져 나와 자생란을 전시하는 허름한 공간에 들어섰다. 대엽풍란의 자생지로 유명한 홍도답게 석부작과 목부작을 이용하여 난을 전시하고 있었다. 세련되지 못한 시설이지만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장소였다.
그렇게 홍도의 섬 한쪽을 보고 다른 쪽으로 몸을 옮겼다. 20여 년 전에도 있었던 비좁은 길은 여전했다. 마치 들여쌓기를 한 것처럼 건물들은 바다에서 섬 안쪽으로 물러나 성채 와 같은 모습을 형성하고 있었고, 겨우 손수레 정도만이 지날 수 있는 길이 홍도의 중심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변함없는 시간의 축적물을 보면서 이럼에도 관광객들은 늘어나서 연 20만 명이 넘어서고 있고 이번 주말에는 방이 없을 정도로 예약이 꽉 찼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였다. 오른편으로 가니 철새연구센터가 눈에 띤다.
동북아와 동남아를 잇는 이곳은 이동하는 철새들의 정거장이었다. 이 점에 주목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서 연구센터를 상주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철새 500여종 중 나그네새와 길을 잃고 홍도를 떠도는 미조, 이곳만을 찾는 337종의 현황을 보니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함이 깊게 다가왔다.
고개를 넘어서니 홍도가 자랑하는 몽돌해수욕장이 나온다. 파도가 다듬어 놓은 돌들은 그 날카로움을 다 지우고 둥글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 위를 덮친 물들이 조르륵 흘러내리는 소리의 아름다움이 자못 깊은 여운을 준다.
그렇게 홍도의 밤이 찾아오고 신안군에서 내려온 홍도출장소장님과 술을 한잔 기울였다. 초기 섬으로 들어온 이들의 곤궁한 삶은 이제 관광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나면서 잊혀졌고 당제, 둥당애 타령, 해녀 노 젓는 소리, 강강술래는 그냥 있었던 민속이거나 미신정도로만 알고 있지 그것이 홍도를 지속화 시킬 수 있는 강한 소구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 큰 것이 지역의 현실이라는 점에 무척 속상해 하고 있었다. 홍도를 찾는 소중한 분들에게 홍도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켜 사이에 들어있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찾아 전달해 주고자 하는 열의에 찬 눈빛을 보며 가능성의 시간들을 술잔에 담아 삼켰다.
늦은 술자리는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생략시켰고 여관의 창밖으로 몇 백 명의 무리들이 지나갔다. 오전 7시 30분과 오후 12시 30분, 하루 두 번 운항하는 유람선중 첫 배를 타는 승객들의 설레임의 소리에 잠을 깬 것이다. 오후 유람이 예약이 된 터라 아침을 먹고 주민들을 만났다. 길섶에서 낚시를 손보고 계시는 토박이 어르신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 척박한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시절과 돈이 다발로 넘치던 시절의 사이에서 그래도 소중한 것은 함께였던 세월이었다는 얘기가 실감나게 들어온다. 다른 곳에서 십여 명의 지역 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모두가 하나의 관광생산 공장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물고기의 비늘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지만 어엿한 사업체로서 현금을 주무르는 이들에게 느껴지는 거침없음은 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보는 관광에서 머무는 관광으로 1회 관광지에서 재방문의 관광지로 변화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얘기는 이구동성으로 흘러나왔다.
오후 유람선을 타고 두시간반의 일주관광에 합류했다. 선내 가이드의 구성진 방송도 디지털 시대를 맞아 변해 있었다. 많은 시간을 그들이 촬영해주는 사진을 판매하는데 할애하고 있었으며, 방콕의 수상시장처럼 유람선으로 다가온 선외기가 회와 소주를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이 나라 관광의 현주소를 보았다.
다음 홍도에 갈 때에는 진짜로 눈을 감고 다니는 마음속의 계엄령을 내리고 자연의 소리만 채집하고 싶어졌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네루다를 그리워하며 섬의 소리를 녹음하는 마리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