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의 작가 주찬옥이 말하는 ‘드라마와 인생’
‘시장성’.
단막극 한 편을 만들기 위한 제작비는 일반적인 예상을 웃돈다. 최소 수 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른다. 미니시리즈나 연속극이 브라운관으로 방영되기까지 드는 작가 원고료, 배우 캐스팅 비용, 각종 촬영 및 부대비용 등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겠다.
‘시청률’.
시간 대비 비싼 제작비가 소요되는 드라마에는 광고가 필수적이다. 단막극은 한편 하나하나 높은 영상미와 완성도를 보이지만 광고주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 자리는 제작비가 싸면서 시청률이 잘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들이 차지했다.
이제는 이름조차 희미한 <베스트셀러극장(MBC)>, <베스트극장(MBC)>, <TV문학관(KBS)>, <드라마시티(KBS)> 등 단막극들이 사라진 이유다.
방송계의 시장성과 시청률 지상주의에 피해를 입은 작가를 꼽으라면 주찬옥을 첫 손에 꼽을 것이다.
지난 14일 전남대를 찾은 주찬옥 작가는 “단막극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에는 신인 작가도, 연기자도, 연출자들도 데뷔해 새로운 발상과 기획을 시도해 보고 함께 성장할 수 있었는데…”라면서 아쉬운 속내를 털어놨다.
“지금은 데뷔도 힘들지만, 막장이 아니면 보지 않는 시청자들의 심리와 시청률을 의식해 막장은 넘어 ‘끝장’을 만드는 작가와 연출자들이 많아졌다”고 작가는 덧붙였다.
한 청중은 “40년 전에 봤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갈등 구조나 현재 방영되는 아침드라마 스토리나 별반 다를 게 없다”며 고루한 시나리오를 비판했다.
작가도 이에 맞장구를 치며 “종종 드라마를 볼 때가 있는데 ‘아직도 이렇게 올드(old)한 드라마를 쓰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며 “작가는 시대보다 딱 반 발짝만 앞서야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지금은 인기리에 방영되거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소재를 과거에 시도했다가 외면당한 일이 적지 않다. 주찬옥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자’는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사랑과 결혼이 전부이거나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다. 누구의 상대로서의 여자가 아닌, 인간 자체로의 여자를 관조하면서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주 작가는 “하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이다’, ‘선정적이다’라는 평가를 들으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주 작가는 “드라마를 쓰며 사람은 누구나 얼굴도, 성격도, 사물을 보는 관점도, 가치 기준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며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하고, 내 기준을 무리하게 들이대지 않고 캐릭터의 다양성을 드라마에서 풀어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평소 사람들의 습관이나 행동, 특정 장소의 분위기나 인테리어 등을 세심하게 살핀다.
최근 ‘트렌디 드라마’, ‘막장 드라마’에 대한 그의 의견은 이러했다.
“단순히 자극과 갈등만을 위해서 상황을 비상식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시나리오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다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하더라도 인간의 삶과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한편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변화·발전에 대한 기대도 덧붙여졌다.
작가는 “예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드라마가, 흑백TV에서 칼라TV로 옮겨오더니, 이제는 고화질(HD)TV 와 3D영화를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기술의 발전은 작가들이 창작할 수 있는 소재가 다양해졌다는 기회와 더불어 시청자들 또한 새로운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대 박물관 2010 문화강좌 여섯 번째 강의에는 <섬진강>, <오래된 마을>의 작가인 시인 김용택이 찾아온다. 김 작가는 ‘아이들 눈으로 세상을 그리다’라는 주제로 오는 21일 용봉문화관 시청각실(4층)에서 강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