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 전고필
  • 승인 2010.06.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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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동계면 장구목

▲ 산과 강 - 물은 만 갈래로 시작하여 하나로 모아든다. 산이 토해낸 물 자락이 섬진강을 이루고 내려간다.
멈추어 있는 것은 물이 아니다. 끊임없이 비워진 부분을 채우고 그 너머를 향해 내려간다. 옛 사람은 멈추어 있는 물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해서 역사는 장강의 물길과 같다는 표현도 생겼다.

하지만 이 시대의 물들은 그런 자신의 심성과 상관없이 인공으로 포획당하고 있다. 4대강에 들어설 보들은 한사코 흘러야 하는 속성의 물들을 멈추게 하고 억지춘향으로 조절하여 내려 보내는 것에 감사해야 할 숙명을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흘려보낼 물이 부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이곳저곳 저수지의 보를 높이고 영산강에서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호수생태원을 둘러싸고 있는 광주댐의 수위를 2.6m 나 높인다고 한다.

그럼에도 역사가 도도한 장강의 물길과 같다는 진리가 며칠 전의 선거에서 드러났다. 퇴행하는 역사, 면면히 흐르는 시대와 순리를 감금하려는 정치가 그러면 안 된다는 민중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었다.

물은 제 스타일대로 흐르고 사람은 물길처럼 한 시대를 거머쥐고 가는 것인데 그것을 붙들려는 오만에 제동을 건 것이다.

▲ 장구목 가는 길 - 승용차 한대 갈 수 있는 길이다. 쉬엄쉬엄 걸으면 강물도 따라 걷고 고개를 숙이면 풀들이 인사를 하는 길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이처럼 시의 적절하게 쓰이기도 쉽지 않은데 연신 자연스럽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민중은 물과 같은 존재이다. 그곳이 오염의 지대라는 것을 알고 수많은 힘들을 모아서 청정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날선 구호나 돌멩이가 아닌 물처럼 아주 조용하면서 차분하게.

그런 자연스러움을 따라 섬진강에 나선다. 아직 청정하여 사람의 자취도 그리 많지 않은 곳, 밤이면 수달의 물질 소리가 마치 물귀신의 소행처럼 느껴지는 곳, 하늘의 별들이 소복이 내려앉아 멱을 감는 곳, 아침이면 하얀 물안개가 이불처럼 산하를 감싸주는 그곳, 바로 장구목이다.

비록 섬진강의 시원에서 내려오는 본류대의 물길은 옥정호에 막혀 있지만 그럼에도 인접한 산과 들에서 공급받은 물줄기를 가지고 또 하나의 강물을 형성하면서 내려오는 곳이다. 그 물길 안에 섬진강변의 자연과 그 자연을 밥줄로 삼고 살아왔던 삶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단일한 화강암 암반층으로 이뤄진 강바닥에는 한 번도 쉬지 않고 흘렀던 물들이 새겨 놓은 바위웅덩이나 고랑, 물결무늬 등이 물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 암반의 풍광 가운데로 들어서면 절구통 보다 깊게 패인 바위 하나를 만난다.

▲ 요강바위 - 이름은 꼴의 표현이다. 수만 년을 사용해도 닳지 않는 요강이 바로 이 바위이다.
십 수 년 전 도둑맞았다 찾아온 바위 ‘요강바위’다. 그곳에 소피를 보면 아이를 얻는다는 속설도 있고 한국전쟁 때는 그 속에 숨어서 목숨을 건진 이도 있는 바위인데 워낙에 특이하게 생겨 욕심 많은 조경업자들이 바위를 떠메어 경기도 광주까지 가지고 갔던 사연이 있다.

당시 매매를 기다리던 바위의 가격은 10억 정도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내 삶의 근거지를 확인하는 증표와 같은지라 이곳저곳 수소문하여 끝내 찾아냈다. 바위를 옮겨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만도 5백여만 원이 들었는데 모두 산과 강에 밥숟가락을 의지한 주민들이 추렴하여 귀환시킨 것이다.

그 요강바위의 윗부분에 뾰족하게 나온 것을 다시 살펴보면 마치 매의 주둥이 형상을 하고 있고 건너편의 바위를 보면 마치 하늘을 오르려는 거북이의 형상을 한 바위도 있다.

▲ 바위의 결 - 화산의 폭발과 용암의 흐름에 이 굴곡들이 형성되었다. 그 위로 물들이 또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바위는 캔버스가 되고 물은 화가가 되어 세상을 얘기했다.
이런 바위의 결들이 내어준 상처들이 저 아래 섬진강 하류에서는 모래로 남는다. 해서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물일지는 몰라도 바위는 매 보는 순간마다 닳고 닳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내 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저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는 것만 상기해 낼 뿐이다.

그런 강물과 바위와 인접해서 사는 마을이라 해 봐야 열 가구도 안 된다. 몇 해 전부터 이곳에 펜션도 들어오고 길이 없는 건너편으로 임도를 개설하는 듯 하면서 새로운 길을 내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곧 이 풍광도 안녕을 고할 날이 멀지 않을 듯 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 장구목 전경 - 본디 장군목이라고 했는데 장군의 호방한 기상을 누르려는 왜곡된 의도가 장구목으로 변천하였다. 신록이 창성한 장구목의 전경이다.
하여튼 신록 우거진 장구목의 산과 버드나무와 그 아래 천만년 지탱할 바위들이 공생하고 있고 그 산하에 의지하며 고추와 매실과 연초와 밤을 재배하고 염소나 한봉을 치는 이들이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어느 한가로운 6월 그곳에 가보면 좋겠다.

한 켠에 차 세워두고 물을 따라 걸으면 마을이 나오고 온갖 새들의 지저귐도 따라오며, 강물과 바위가 도란거리는  시간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 저 강물도 역사이고 내 삶도 역사여서 그 누구도 멈추지 못하게 한다는 믿음도 더욱 강고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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