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의 반나절
춘천에서의 반나절
  • 전고필
  • 승인 2010.08.27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원도 춘천시

노래방에 다녀온 지 너무 오래됐다. 가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나는 늘 사람들에 이끌려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노래방에 갈 뿐이다. 근자에 대인시장에 둥지를 틀고서 부터는 아예 그런 일이 없어서 퍽이나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함께 부르는 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모니터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노래방은 시선의 일방적인 타자화를 유도하는 장치와 같아 싫다.

▲ 소양강을 지키고 있는 그녀 ‘소양강 처녀’.
그럼에도 며칠 전 노래방의 곳곳에서 늘 그치지 않고 흘러나오는 노랫말의 주인공을 만났다. 소양강에 우뚝 서 있는 처녀, 바로 ‘소양강 처녀’의 동상을 만났던 것이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나를 불렀다. 후배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 회의는 강원도의 내년도 문화정책의 방향을 찾는 것이었다. 내 동네일도 감당하지 못하는 처지에 감히 그곳에 이른 것은 그간 동네 일로 후배를 자주 불러들이고 괴롭혔기 때문에 품앗이라도 할 셈으로 찾아간 것이다.

두해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춘천인형극제에 참여하기 위해 그곳에 2박3일 정도를 체류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형극단을 다른 단체가 맡게 되면서 나 또한 그로부터 멀어진 것이고 춘천을 향한 걸음도 중단된 것이다.

그럼에도 춘천은 자연스럽게 내 기억 속에 존재한다. 한류라고 하는 신조어를 확장시킨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상의 집이 있고,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주인공이었던 친구들이 바로 춘천의 소박한 집에서 살았던 모습이 아련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연가의 열풍은 동남아지역 사람들의 한국 여행상품의 주요코스로까지 등장하게 되어 지금도 중국인과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여튼 두 시간여의 회의가 끝나고 나를 춘천으로 오게 했던 친구를 대신한 분의 안내를 받아 그 소양강처녀의 동상과 유장하게 흘러가는 소양강을 보고, 드라마촬영지의 마케팅 현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준상의 집으로 촬영되었던 곳은 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 겨울연가의 촬영지를 알리는 표지.
문을 두드려 내부 좀 보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내국인의 출입은 금한다고 한다. 5천 원 하는 입장료를 내겠다고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 아무래도 그 집 주인장의 마음이 많이 상하신 모양이다. 드라마의 감동을 그대로 간직한 외국인들이 이 집을 대하는 태도와 그저 다르지 않는 평범한 한국의 주택이란 생각을 가진 내국인의 시각차이 속에서 얼마나 많은 다툼이 있었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준상이 과일을 샀다고 하는 과일가게도 지나치게 되었다. 동행한 분이 말하길 평범한 가게에서 이제는 3개 국어를 구사하고 어지간한 보도매체의 인터뷰는 다 거절한다는 가게였다.

전국이 드라마 세트장으로 변하고 있는 이유를 춘천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지역도 이 못지않게 아름다운 촬영지를 갖고 있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 대나무테마공원, 보성다원, 청산도의 들길, 하누넘 해수욕장 등.

그럼에도 우리 지역의 관광은 외국인을 견인해내지 못하고 있다. 접근성과 더불어 체류의 안정성에 있어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하여튼 그렇게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안개 가득한 풍광은 접하지 못하고 드라마의 앵글만 찾아 쫓다 길 위에서 내려왔다.

▲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의 묘소.
집으로 돌아와 지난 시절 춘천에서 찾았던 공간을 더듬어 보았다. 전라도 곡성의 목사동에서 태어난 고려 개국의 공신 신숭겸의 묘지와 사당이 그곳에 있었다. 충렬사로 명명된 이 공간에는 사당과 함께 그의 묘지가 왕의 무덤 못지않은 웅장함과 장엄함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견훤과의 싸움에서 절대적인 수세에 몰린 왕건의 부대가 퇴로를 확보하지 못하자 충직한 신숭겸은 왕건을 살리고자 그의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왕건을 대신하여 부대를 지휘하다 전사하고 왕건은 병졸의 옷을 입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와 대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

대구 공산에서 이뤄진 이 싸움에서 머리가 참수된 신숭겸을 위해 왕건은 금으로 그의 머리를 만들고 이곳 춘천에 세기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어느 곳이 진짜 그의 무덤인지 알지 못하게 하여 도굴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라는 설이 아직 전해져 오는 곳이다.

소양호의 커다란 수원과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유명한 그 춘천에 이렇듯 충직한 신하의 무덤이 있음도 참 특이했던 기억이다.

불과 반나절 아니 두 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소양강을 지키고 있으면서 전국의 노래방까지 사수하는 그녀를 보고 오는 것에 더해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욘사마의 행적을 찾는 열혈 팬들의 행렬을 보는 것만으로도 춘천의 시간은 아름다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