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장사들이 도를 깨달은 절 칠장사
일곱 장사들이 도를 깨달은 절 칠장사
  • 전고필
  • 승인 2010.09.2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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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칠장리

안성맞춤으로 유명한 유기의 고장, 남사당패 바우덕이의 고장, 나주배와 견줄만한 안성배가 있는 곳, 안성.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한양으로 이르다 보면 순간 곁으로 지나가는 곳이 안성이다.

중심을 향한 길에 갓길로 새는 법은 쉽지가 않지만 그래도 해찰을 좋아하는 나는 이 땅 연예인들의 모태와 같았던 공간 ‘청룡사’를 어느 해 겨울 스며들었다. 대웅전의 팔작지붕은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게 반겨주었는데 한쪽 모서리를 보니 역시나 겉만 보고는 안 되는 일이었다.

▲ 대웅전 계단 - 부처께 가는 길 물길을 헤치고 구름을 타듯 그 계단을 오르라는 뜻이다.
정면의 기둥은 곧추서서 웅장함을 꾸며 주는데 측면의 기둥은 자연스러운 나무를 그대로 살려 지붕을 받쳐주고 있었다. 엄격한 규율이 요구되는 절집의 가장 중심에서 느껴지는 파격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해서 그 절에 머물렀던 이가 이 땅에서 가장 빼어난 예인이었던 바우덕이와 같은 남사당패들 아니었나 싶어졌다.

▲ 사천왕상 - 동서남북을 호위하는 사천왕 앞에서 속가의 번뇌가 일순간 사라져 가면 얼마나 좋을까. 진흙으로 만들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을 떠돌던 남사당패의 대장이었던 바우덕이는 그 노래와 춤과 줄타기의 명인이었던데다 통솔력까지 지녀 그녀를 따르는 예인들을 이끌고 이곳 청룡사의 불당골에 머물렀던 것이다. 인정 넘치는 청룡사에서는 이들의 추운 겨울을 덥혀주는 곳이었던 게다.

민속학자인 주강현 선생은 이 땅의 모든 스타들은 그들의 원조가 이 청룡사에 머물렀으니 성지처럼 찾아보아야 한다는 말로 그들의 삶을 극찬하기도 했다. 연예인이 아닌 나이지만 그곳을 찾았던 따스했던 기억들이 아직 생생하다.

세월이 흐른 후 이번에는 안성의 다른 절을 찾았다. 칠장사이다. 이름이 얘기하듯 일곱 명의 도적들이 있었는데 고려 때 혜소국사가 그들을 교화하고 절을 세웠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그런 얘기는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절인 부석사와도 같은 퇴치담을 가진 창건설화이다. 처음으로 주석한 스님의 내공을 들어 이 절이 범상치 않음을 얘기하며, 그 누구도 그 절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힘이 내내 이어져 오도록 한 것이다.

▲ 병해거사와 임꺽정 - 갖바치인 병해거사에게서 세상을 구하는 이치를 배운 임꺽정의 모습이다.
소설 임꺽정을 지은 벽초 홍명희는 임꺽정의 스승 갖바치를 도인으로 등장시켜 이곳에 은둔시킴으로서 이 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가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칠장사의 벽화는 남다른 풍모가 엿 보인다. 절집에 들어서기 전 먼저 보이는 철당간에서도 위엄과 기풍이 흩날리는 모습이었는데, 계단을 올라 사천왕문을 들어설 때도 그 사천왕의 기상이 사뭇 엄숙하다.

사실 이 땅에서 절집에 고승대덕이 있음을 알리는 당간을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두들 지주만 남겨두고 사라져 버린 것이 태반이다. 한데 남도에는 두 곳이나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다.

▲ 철당간 - 당간을 만드는 재료는 돌과 나무와 쇠이다. 나무가 사라진 곳에는 지주만 남고 저런 당간은 서 있지 않다. 사찰의 권위를 시위하듯 서 있다.
담양읍내와 나주시내에 있는 당간이 그것이다. 두 곳은 돌로 된 당간인데 칠장사의 것은 철당간이다. 철통을 28개나 쌓아 만들었는데 이제 남은 것은 14개 층이지만 그 풍모가 예사스럽지 않아 보였다. 거기에 사천왕상은 진흙을 빚어 만든 소조불상이다.

자못 무서워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외형적인 무서움 안에 인자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눈과 입가에 지니고 있다. 어렸을 적 이 문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절에는 도통 들어서지 못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분들과 눈도 마주치고 아래위로 둘러보는 용기를 가졌으니 말이다.

대웅전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어 단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옆으로 걸음을 옮기니 벽화가 예사롭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궁예의 유아기를 그린 그림이 들어온다. 한쪽 눈을 잃어버린 궁예가 활을 쏘는 모습과 성장의 과정을 담은 벽화, 그 옆으로는 임꺽정의 일화를 담은 병해대사와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있다.

절로 내려오는 절집의 구전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배치한 것이다. 위로 올라서니 이번에는 한 칸짜리 나한전이 나온다. 나한전 안에는 중생들의 소원을 담은 연등이 빼곡하다.

대웅전에서 보지 못한 풍경을 두고 이래저래 살피는데 보살님 한분이 말씀하신다. 일곱 분의 나한이 바로 그 일곱 장사이고 이분들이 소원을 들어줘서 과거에 급제하신 분이 그 유명한 어사 박문수란다. 그럼 저 연등에 담겨있는 소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두들 유명짜한 학교를 들어가고 출세해서 번듯하게 살라는 염원이렸다. 하여튼 칠장사는 이 절을 지었다는 혜소국사비와 스님들의 부도, 자리를 옮겨온 봉업사 터 석불입상 등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 나한전 - 깨달음을 얻은 일곱 명의 도적들을 칭하여 칠현이라고 했다. 해서 산 이름은 칠현산이고, 절 이름은 칠장사인데 그 일곱 분이 나한이 되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웅장하고 깊은 절집은 아니지만 무인의 기풍을 담아낸 듯한 칠장사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나오는 길, 절집의 형국이 배 모양이라서 돛 모양의 당간을 세웠다는 글을 보면서 많은 풍파를 거쳤을 그 절집의 역사는 다음에 알아보기로 했지만 여운이 깊게 남아있다.

미리 공부를 하고 갔더라면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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