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이렇게 단풍잎 곱게 물들고 때론 지상에 떨어져 별처럼 빛나는 계절에는 가보고 싶은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너무나 유명한 백양사의 애기단풍이다. 그곳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는 석곡의 반구정 습지이다. 호수와 어우러진 단풍의 숲이 아름답고 물풀조차도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산화되는 모습이 정말 곱디고운 곳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무주의 적상산이다. 한자로 붉을 赤자에 치마裳자를 쓰는 산이다. 말 그대로 붉은 치마와 같은 모습이니 단풍은 또 얼마나 곱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진풍경을 경험했다. 그 산의 주능선에 기립한 수종이 모두 참나무 종류인지라 하늘을 이던 잎새들이 땅에 물고기의 비늘처럼 서로를 잇대고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무주가 멀다면 가까운 곳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 바로 담양의 면앙정이다.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며 그 사이에 지은 정자의 주인은 송순이다. 그 면앙정을 둘러싸고 있는 숲은 대부분 참나무군락이다. 그 잎들 소복이 쌓여 융단 같은 정자를 만들어낸다. 가히 가을에 취하고도 남을만한 풍정이 거기 흐르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제쳐 두고 길을 나섰다. 목표는 고창의 문수사이다. 한 지인이 십여 년 전 소개를 해 줘서 즐거이 찾는 곳이다. 몇 해 전 이 절 주위의 단풍나무 군락이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다. 500여 그루에 달하는 단풍나무의 군집된 풍광은 단연코 모든 사람들의 몸빛을 붉게 만든다.
숲이 촘촘하여 이 나무와 저 나무의 독립된 자태는 찾을 수 없다. 어떤 연유로 이렇게 단풍나무를 심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깊어가는 가을 문수사의 단풍은 사람을 압도하는 힘을 지녔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하는 단풍나무의 터널은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대궐과 같은 풍광이다. 단풍은 보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여기서는 선물 받는다. 족히 십여 미터가 넘는 단풍나무들의 가지를 바라보면 저마다의 지향이 다른 나무들 사이의 간격도 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받아 광합성을 하기 위한 생존의 전략이 거기 있다. 인간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가지는 나무들의 할거와 같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외부적 환경들을 스스로 옭아매는 것도 부족하여 나라에서는 실개천조차도 없애는 작업들이 4대강이라는 이름의 토건 작업으로 이뤄진다. 사방 곳곳에 필요 없는 둑 높이기와 새로운 저수지 만들기가 이뤄지고 있다.
통탄을 금치 못할 일들이 도처에서 이뤄지는 나라에서 지금은 더욱 힘든 기간을 보내고 있다. 모든 미디어와 언론은 G20 회의에 집중되어 있다. 철들어 국제적인 것들이 가진 허상들은 비속한 용어로 “까우”잡기 이상의 범주를 넘어 내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아 본적 한 번도 없다. 선진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자부심을 이입해 보고자 해도 그리 되질 못한다.
그렇게 걷다보니 풍경의 안쪽에 문수사는 깊게 자리했다. 아담한 절집이지만 그 지어진 연대는 백제의 의자왕 때까지 올라간다. 문수산 혹은 청량산이라 불리는 산자락에 위치한 이 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돌로 조각한 승상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광주 원효사에 있는 대사상과 흡사하지만 한층 도탑고 비대한 느낌이 드는 스님을 취하고 있다. 단풍은 대웅전 법당 안까지 파고들어 사위가 온통 붉은색 투성이다.
잎이 조그마해 애기단풍이라고 하지만 그 색은 결코 가볍지 않음의 증거다. 조락의 계절 속절없이 들어가는 나이 탓만 하지 말고 더 싱싱하게 살고자 낙엽을 버릴 줄 아는 나무들이 있는 숲에 들어 볼 일이다. 누군가 그랬지 않은가. 나이가 먹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가을이 가는 것이 서럽다고. 이제 가을은 채워지지 못하고 축만 나는 내 통장의 잔고만큼 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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