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 직접 들어 있는 월급봉투를 마지막으로 받아본 시점이 언제였을까, ‘7080’세대들이라면 첫 월급을 현금으로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이들의 지갑을 엿본다면 아마 하루 쓸 정도의 용돈과 주민등록증, 그 외 신분증 하나쯤 더 넣어져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직장이 없는 백수만 해도 빵빵한 부피의 지갑을 갖고 다닌다. 이들의 두툼한 지갑은 그 용도가 현금보관소라기 보다는 각종 신용카드를 담는데 있는 것 같다.
구세대들 중에는 지금도 카드결제라는 전산시스템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 본격적인 정보화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만 해도 카드결제나 인터넷 뱅킹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았다. 카드결제는 정부가 투명한 경제활동을 정착시키기 위해 세금공제 혜택이라는 혜택을 주지 않았다면 현재도 얼마나 활용되고 있을지 의문이다.
정보화시대 초기에는 정보 유출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전산 결제 방식에 익숙치 않아 결제가 제대로 되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했고 심지어 늦은 시간 어두운 술집에서 건넨 카드가 두 번에 걸쳐 고액 결제 처리되는 범죄행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은 소비의 최종지점에서 발생한 전산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에 그칠 뿐 범죄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오히려 결제 발생 시간과 장소가 고스란히 기록에 남기 때문에 범죄같은 은밀한 행위는 거의 불가능하다 봐야 한다.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전산시스템은 보완에 보완을 거쳐 완벽한 기능을 갖춰갈 것이며 그에 비해 보통 사람들은 그것에 이끌려 가는 피동적 삶에 더욱 익숙해져 갈 것이다.
그래서 월급봉투가 다시 직장인들에게 되돌아오기란 어렵듯 역시 작은 면단위까지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는 전산망이 거둬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 전 터진 농협 정보시스템 사고가 준 충격은 대도시나 농촌지역에 다 같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형은행들이 몰려 있는 도시권을 벗어나면 농어촌 지역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금융관련 기관이 바로 농협과 우체국이다. 두 기관 다 금융업무가 고유의 기능은 아니었으나 전산시스템 구축에 힘입어 이 기능을 확대했고 이제는 농촌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주요 금융권이 되었다.
농협의 기능확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농업협동조합이라는 탄생 이념을 되살려 금융업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군과 면지역으로 가면 조합장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로 얼룩이 져 금권선거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곳도 바로 농협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해킹 사고가 농협에서 터졌나, 그토록 많은 금융기관 중에서 하필이면 농협인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게다가 역대 농협중앙회장치고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등 욕먹지 않은 인사가 드물다.
국토의 맨끝 해남 땅끝에서도 가장 가까운 면 소재지에는 농(수)협, 우체국이 있어 지역주민들의 금융업무를 돕고 있다. 월급봉투라곤 평생 한번도 받아보지도 않은 농민들이 시나브로 전산금융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시점에 터진 사고라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