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그는 거의 40여년 전 펴낸 자신의 책자에서 이미 원자력 발전소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내다보았다. 산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원자에너지의 위험성을 그 누구보다도 앞서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경고는 13년 후 체르노빌에서, 그리고 25년 후 일본 후쿠지마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렇다면 슈마허는 미래를 내다보는 실력있는 예언자로 등극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예언자나 ‘신비주의자’ 가 아닌 냉철한 사회과학자이며 그의 놀라운 예고는 논리적 성찰 끝에 나온 결론에 다름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 외에 그의 예리한 통찰력 가운데 하나 더 우리가 꼭 유념해야할 중대한 사안이 있다. 그것은 농업을 산업의 한 분야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우리들이 지난 교육과정을 통해 농업은 1차산업, 2차산업은 공업, 3차 서비스업이라는 식의 주절주절 배운 학습이 잘못된 것이라고 통렬하게 지적한다.
‘농업은 산업이 아니다. 특히 2차 혹은 3차 산업에 앞서 그러한 단계로 나아가는 중간단계나 혹은 2,3차 산업을 위한 기반 산업도 아니다. 농업은 절대적으로 인간이, 인간의, 인간을 위한 가장 신성한 노동이며 삶을 위한, 나아가 삶 그 자체와 같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무엇보다 중시 여긴다면 결코 농업을 멀리 하거나 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농업은 모든 이들이 각자 나눠가져야 할 각자 삶의 몫이다.’
이것을 우리나라 대도시 수도권 사람들에게 그대로 대입해보자면 강남 30억짜리 아파트에서 농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산다면 그는 이미 자신의 삶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30억짜리가 아니라도 풀 한포기 꽂을 땅뙈기 없이, 상추이파리 한 잎 나지 않는 시멘트 건물(도시)이 그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이라면 그는 이미 후쿠오카 원전 옆 동네 사람이나 진배없다. 슈마허의 논리를 다소 선정적으로 풀어본다면 이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대도시 사람들은 제아무리 자신이 속한 그 자리에 온갖 ‘폼’을 잡고 산다 한다 해도 그러한 그 자신을 있게 한 신체와 그럼으로써 비로소 그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몸의 유지를 위한 식품의 중요성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의 몸을 지탱시키는 식품과 그러한 식품을 생산하는 땅과 농업이라는 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무엇인가. 그러한 농업을 단지 1차산업이라는 편의적 사고의 이름 아래, 대도시의 휘황한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식의 인식이 올바른 것인가.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40년전 원전을 폐기처분하자고 주장한 슈마허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그런 그가 같은 책자에서 농업은 산업이 아니라고 했다.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라고 했다. 작은 텃밭 하나만 일구어도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은 그 자연에 소속된 유기적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농촌이 다 죽어가고 있는 2011년 봄, 원전사고가 터진 일본을 이웃에 둔 한국사회에서 더욱 뼈져리게 다가오는 얘기다.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