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목격해온 흔적을 쉽게 없애지 말아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화합의 상징과 역할
옛다리를 찾는 길지 않은 여행이 끝났다. 지난 3개월여 동안 만난 다리는 아주 짧은 다리에서 긴 다리에 이르기까지, 위엄을 보이는 단단하고 각진 다리에서 근처의 굴러다닌 잡석이지만 정교하게 구성한 다리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과 지면에 제한되어 우선은 여기서 연재를 끝내야 하는 게 너무 아쉽다. 이번에 옛다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처음 취재 계획은 8회에 걸쳐 14곳이었다. 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더 이야기가 풍부한 다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20여 곳을 취재하며 10회를 연재하게 되었다.
21세기는 고부가가치 문화관광의 시대다. 여기에 걸맞게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의 옛것을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알리면서도 관광수입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다리를 관광상품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옛다리에 관련한 이야기(storytelling) 가능성을 찾아냈다. 이를 지자체마다 관광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그 주변의 역사 흔적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다리에는 목격담의 역사가 있다
이번 기획취재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정중수 시인은 ‘멀리 가는 다리’라는 시적인 이름을 붙여주었다. 정 시인은 “다리는 지역과 지역간을 연결하거나 또는 닫힌 마을로부터 외부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다리는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이르기까지 문명을 연결시켜주는 상징적인 역할도 갖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멀리 가는 다리’ 취재는 멀리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다리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다시 멀리 미래로 보내주는 의미를 담았다.
또한 윤일웅 작가는 지난 30여년 동안 전국을 현장 취재했던 르포라이터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옛다리를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당초 예정했던 다리보다 더 많은 곳을 찾아가볼 수 있었다. 윤 작가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다리의 관광상품화 가능성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면서 “다리가 있는 곳이면 일단 강이든 개천이든 물이 있기 때문에 이를 연계시킨다면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번 취재에서 만나본 다리들은 저마다 독특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더불어 다리마다 역사 속에 간직해온 수많은 목격담(?)이 숨어 있었다.
광주에서 만난 5.18 상처를 안은 배고픈다리와 3.1만세운동의 기억이 서린 부동교, 고흥의 홍교와 봉황교, 태백산맥의 주 무대인 벌교 홍교와 도마교, 곡성 태안사의 능파각과 관음사의 금랑각, 선암사 승선교, 여수 흥국사 홍교, 진도의 삼별초 흔적이 남은 남도석성 밖의 남박다리, 함평의 고막다리 등은 서민적 냄새와 아름다움이 있었다.
또한 서울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에 있는 홍예교와 태종의 매사냥 터였다는 한양대 후문 쪽의 살곶이다리, 정조대왕의 사도세자 아버지 참배길에 있는 안양의 만안교, 수원 화성의 화홍문, 충북 진천의 농다리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있었고 미처 지면에 소개하지 못한 벌교의 소화다리, 서울 청계천 광통교와 중랑구의 박송다리 등은 그대로 눈에만 담고 왔다.
다리가 간직한 세계에 대한 동경
옛다리의 이야기와 관광상품화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김종 광주문화원연합회장과 강만 광주 서구문화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진행은 정인서 시민의소리 편집이사가 맡았다.
정 이사는 “다리는 단순한 건너기 위한 교량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명을 이어주는 전승의 의미가 있다”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건너는 다리이지만 오랜 역사 속에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다리는 끊어지는 것을 이어주는 연결성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단절보다는 연결을 통해 화합의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시키는 곳이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 다리를 말한다면 반드시 교량처럼 만들어진 것뿐만이 아니라 노둣돌로 듬성듬성 놓은 징검다리도 다리라고 할 수 있다”면서 “초등학교 시절 함평 나산의 외갓집에 갈 때마다 냇강을 건널 때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며 친척들과 놀던 재미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고 회상했다.
다리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은 때로는 과거의 삶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간직하고 다시 미래를 꾸며가려 한다는 것을 실현시키는 공간적 의미가 있다. 다리를 지나칠 때면 가끔씩 다리 밑을 내려다보고 무서워했거나 다리 밑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 했던 것은 누구에게 있을 법하다. 그래서 다리 밑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게 만든다.
김 회장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가 다리 하나를 통해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으로 오늘 우리에게 인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했다.
오랜 친구도 사소한 실수 때문에 오해를 하고 서운해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은 인생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TV에서 다리를 등장시켜 데이트 남녀의 재만남을 연결시켜주는 장소로 활용하는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다리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자
강 원장은 “다리는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생활의 도구였고 작은 늪지나 개울, 하천 등지를 건너면서 통나무를 걸치거나 주변의 돌을 놓는 것부터 다리가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단순하게 연결시키는 것 이상으로 풍류 기능을 겸한 누각 형태로 지어 공간적인 완충 지역으로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우리의 옛다리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치밀하고 합리적인 다리로 발전했다. 다리는 선조들의 역사적인 삶과 정신적인 얼이 담겨 있기도 하다.
정 이사는 “두 분의 말씀에 따르면 다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현재성을 갖고 있고 단절된 지역간의 새로운 소통의 통로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서 “요즘 우리 정치가 답답하다 못해 회의감이 드는 데 다리의 기능처럼 화합과 연결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다리는 여러 모습을 간직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다리는 콘크리트 다리로 공간연결을 통해 속도를 향상시키는 수단인 곳이 많다. 그러나 옛다리는 그러한 빠름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갖고 있다. 다리는 그냥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그곳을 건너며 주변의 풍광을 충분하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는 곳이 많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저는 이번 기사를 보면서 다리 중에 진천의 농다리가 역사성과 이야기의 가능성, 그리고 여느 다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지네처럼 생긴 다리라는 점에서 관광상품화의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제시했다.
강 원장도 “배고픈다리는 옛모습이 사라졌지만 그 속에 담긴 무등산과 연결된 설화라든가 근대에는 5.18 당시 시민군의 거점지역으로서 후대에 광주의 역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강 원장은 이러한 점에 광주시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옛기억을 찾아 이야기로 꾸며야
정 이사는 “광주천에만 오래된 다리부터 최근의 다리까지 40여개 정도 있는 데 그냥 다리를 설치하는 것에만 그칠 것이 아니다”며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부터 주변의 마을이나 시설물과 연계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광주천 다리 가운데 일부 시내 중심부 다리에 대한 경관사업을 벌이면서 옛 흔적이 모두 지워져버렸다. 즉 역사와 이야기가 모두 사라진 것과 같다. 그것은 광주시가 단순히 다리의 현재성에만 치우친 나머지 과거의 기억을 망각하고 있다.
이번 취재과정을 통해 다리에 얽힌 이야기와 그 시대의 역사 등을 조화롭게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이델베르크의 다리나 퐁네프의 다리,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이상으로 부동교와 양림교, 고막다리와 남박다리 등 우리의 다리에서도 사랑과 슬픔, 기쁨을 보여주는 다리로 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획취재는 미완이다. 아직 이야기가 있는 다리를 찾아 내년에 또 다른 여행을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