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정무수석', '충신' 이정현 입각
'이웃집 정무수석', '충신' 이정현 입각
  • 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 승인 2013.03.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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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한 젊은 여행자에게 들은 이야기, "파리에 가선 약한 모습을 보여라, 그러면 파리 시민 모두가 나서 당신을 도와주려 할 것이다." 예컨대 파리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있는 체, 아는 체, 잘난 체 등등 강한 자의 면모를 보이면 웨이터까지도 도와주기는 커녕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며 밥 한끼 시켜 먹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하겠지만, 보통의 파리 시민들은 금권력에 거침없이 저항하고 평등사회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최근 흥행했던 영화 '레 미제라블'로 혁명기 프랑스의 역사가 새삼 조명을 받았다. 산처럼 높이 쌓였던 바리케이트 뒤에서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죽어간 혁명가들의 최후는 30여년 전 전남 도청의 마지막 현장과 닮아 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의 단층이 쌓이지 않아서인가, 오늘 현재 프랑스와 한국은 천지차로 벌어져 있다. 한국은 다시 봉건왕조시대로 돌아간 듯 대통령이 아니라 '여왕이 등극'한 형국이다. 무늬만 민주공화국이지 내용은 왕, 정승, 내시, 양반, 중인, 천민 등의 계급사회로 되돌아갔다. 프랑스와 한국의 격차가 다만 시간의 문제라면 시간을 거꾸로 매놓아도 이백년 후 쯤이면 우리도 평등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시민혁명이 일어난 장소가 큰 변수라면? 프랑스처럼 수도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변방도시 광주에서 시민의거가 일어난 한국은 사뭇 다르게 역사가 진행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민주화의 도시, 성지라는데 국민 절반 가량이 인정하고 있는 광주, 이는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의 민주의식이 이 나라 국민평균의 그것보다 높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전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살고 수평적 관계보다는 수직적 질서를 앞세우는 후진적 사고가 여전한 우리 사회에서 광주의 앞선 시민의식이 한국사회를 선도해갈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것도 추악한 지역차별 전략에 의해 이미 왕따 당했으며, 그러한 여전한 차별과 모욕마저 문제 삼지 않는 무지한 대중의식까지 전환시킬 수 있을까? 이런 우려 속에서 결국 "두 사람의 왕이 난다"는 봉건의 망령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 대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나서 세달여가 흐르고 있는 현 시점, 혹시나 했던 우려들이 그대로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속속 드러나고 있는 내각과 거론되는 인물 면면, 정책의 향방을 보면 지난 5년에 이어 오는 5년이 더 나아지리란 전망은 들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광주지역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인물 한명이 두드러진다.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공보단장을 맡았던 이정현씨가 현 정부 정무수석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김황식 총리에 이어 중책을 맡은 희귀 지역인사 중 한명이다. 김황식은 이명박과 함께 화려한(?) 퇴장을 했지만 입신양명에 취한 '영의정 놀이'를 즐기지 않았나 싶게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정현씨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대선 전 총선에서 광주 서구에 출마, 야당 대항마로서 역대 최고의 득표율을 얻어 집권 여당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때 얻어낸 40%의 득표율을 가지고 친박계에서 두각을 나타난 이정현은 그렇게 갈고 다진 열정과 끈기, 집념을 무기로 대선 공보단장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총선 낙선 후유증을 일거에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칠리 없는 이정현의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선거는 전쟁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온갖 술수가 난무하고 하찮은(?) 도덕성은 마비된다. 선거 당시 이정현의 입이 거의 '하수구' 수준이라 비난 받았던 것을 상기하면 그만큼 사활을 걸게 되는 전쟁터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가 끝난 후 승자의 입장에서는 싸움꾼을 책사에 앉히지 못한다.

더군다나 대통령을 둘러싼 온갖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리해야 하는 정무수석이란 자리는 장수의 차지가 되기 힘들다. 냉혹하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입장과 견해차를 중재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통상의 법칙을 일거에 무너뜨린 정무수석 인사는 결국 현정부 내각이 충성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여왕으로부터 망극한 성은을 입은 신하' 라는 풍경이 더 이상 풍자가 아니다. 지난 5일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는 '이웃집 정무수석'을 제 19화 에피소드로 올렸다. 지난해 총선 전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가 이정현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 정국과 첫 인사를 풀어본 내용이다.

청년 이정현이, 88년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출마한 구용상(5.18당시 광주시장)씨의 보좌관이 된 사연과 이후 정치 행보를 간략히 답사하고 정무수석에 임명된 현재까지의 여정이 흥미롭게 밝혀져 있다. 5.18을 간접 경험했던 팟캐스트 진행자들이 시간과 공간이 다른 차원에서 광주를 바라다보면서 그곳을 기반으로 둔 한 정치인의 야망과 성취 과정을 날카롭게 해부해 간다.

그들에 따르면, 오로지 정치인으로 성공에 목표를 둔 집념의 인물이 불의에 대항했던 의로운 지역에서 쏟아지는 온갖 비난을 무릅쓴, 그리하여 자신의 선택이 비참한 과오가 되지 않기 위해 유력자에게 충성을 다 바친 초상 하나가 완성된다. 그 의로운 광주에서 어떻게 이정현 후보가 부분적이나마 인정을 받았는지에 대한 해석도 명쾌하다. 2012년 역사의 전기가 되었을 선거에서 한국사람들의 선택은 세계적인 주목거리이자 연구과제로 남았다.

이러할진데, 광주에 생명의 뿌리를 두고 정치발전의 자양분을 흡수해왔던 민주당이 선거 후 보이고 있는 행보는 갈팡질팡이다. 이정현씨가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들어가 오로지 예결위원만을 맡아 "지역예산을 늘려 받았"다는 사실 하나로 광주유권자들의 표심을 어지럽혔다.

지난 수 십 년간 입법권력을 장악해 온 이 지역 국회의원들과 이정현씨와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까놓고 보면 무늬만 다르지 같은 욕망을 가진 것 아닐까? 광주는 팟캐스트 진행자들이 말한 그대로 '큰 비극에 이어 작은 비극이 계속 파생되는' 비극의 도시로 남을 것인가? 괴로운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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