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차기 국무총리로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로 인한 고소득 논란 등 몇 가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청문회도 열기 전에 사퇴하고 말았다. 과거에도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와 장관 등이 청문회 때 개인적인 비리와 도덕성 문제로 낙마한 일이 상당히 있다. <시민의소리>는 정부와 의회 간에 공방이 벌어지는 영국 청문회 제도와 한국적 상황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인사청문제도의 본래 목적은 고위 공직자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검증절차를 거치도록 해 견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사청문회법 제2조의 정의에 따르면 국회법에 따른 공직후보자에 대하여 임명동의안의 절차를 밟는 과정이다.
따라서 인사청문제도는 의회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는 권력융합형 정부형태인 의원내각제 국가보다는, 엄격한 삼권분립을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주로 시행되고 있다. 미국 상원의 인준청문제도가 대표적이다.
영국은 의원내각제 국가이지만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했다. 2008년부터 사전인사청문회(pre-appointment hearing)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영국의 인사청문회는 인사청문 대상 직위나, 인사청문 결과의 구속력, 인사청문절차 등의 여러 측면에서 미국 상원의 인준청문회나 우리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상이하게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는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자료를 중심으로 영국 하원의 사전인사청문회의 내용과 특징을 살펴본다. 특히 현재 제도의 실효성과 관련된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한국 국회의 인사청문제도에 대한 시사점을 모색한다.
영국 하원, 사전인사청문회 도입
영국 하원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것은 의회의 제안이나 요구가 아니라, 내각의 자체적인 개혁노력에서 비롯되었다. 2007년 7월에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총리는 내각의 권한을 제한하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시행하였다. 이는 민주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적 방안을 담은 ‘영국의 거버넌스’(The Governance of Britain)라는 보고서를 통해 발표하였다.
하원의 사전인사청문회 실시는 내각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각 부처 산하의 공공기관의 직위는 21,000개가 넘고, 이 중 3,800여개의 공직은 매년 장관이 임명한다.
해당 직위 중에서 일부 직위는 국민의 권리 및 이익보호와 관련해서 상당한 법적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의회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보고서는 이런 직위에 대해서 하원 상설위원회가 사전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되, 청문결과가 구속력을 갖지는 않도록 할 것을 제안하였다.
인사청문대상 직위는 내각이 하원 협의위원회와 협의하여 정하되, 감사・옴부즈맨・규제자를 비롯하여 인사담당관도 포함하도록 하였다. 보고서에서 제안한 청문대상 직위는 고위공무원감사관, 공공인사위원회 위원장, 지방정부 옴부즈맨 등 총 60여개의 직위에 해당된다.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되기 수 년 전인 2003년에 하원 공공행정위원회(이하 PASC)는 공직자 임명과정에 하원을 참여시킬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후 ‘영국의 거버넌스’까지 발표되자, 인사청문제도의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제기되었다.
우리나라, 사전인사청문 제대로 되고 있나
2008년 공공인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쟈넷 게이머(Janet Gaymer)는 인사청문제도를 채택 할 때 예상되는 어려움을 하원 공공행정위원회에 전달했다.
지적된 어려움은 공직후보자 풀의 감소, 지명 과정의 정치화, 청문과정에서 부적절한 질문의 가능성, 청문회가 지명과정의 시기에 미칠 영향, 공직자 지명에서 장관 책임성의 역할 변화 등이다.
그러나 내각 국무조정실과 하원협의위원회간의 협상을 거쳐서 하원의 부처별 상설위원회가 주관하는 사전인사청문제도가 2008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경우, 미국의 ‘헌법’이나 한국의 ‘인사청문회법’처럼 명확한 규정에 근거해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지 않는다. 영국이 불문법 국가이기 때문이다. 사전인사청문회의 대상 직위나 청문절차와 관련해서는 내각이나 하원협의위원회가 발표한 후보자 인사청문을 위한 가이드라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사전인사청문이 없었는데 지난 2010년 이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다. 자기검증서와 관련해선, 종전에 150여개였던 항목을 200여개로 확대하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서식을 공개하여 누구든지 자기검증을 한 뒤 정무직 후보자로서의 자질을 확인하도록 했다.
2013년 당시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은 고위 공직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사전검증을 강화하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이는 통과되지 못했다.
또 인사청문 면담제도도 도입해, 검증결과 압축된 최종 후보자를 대상으로 인사추천회의에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준한 면담을 실시하기로 했다. 사실상의 내부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지금도 도입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청문 내용, 업무적격성과 전문성 집중
하원의 인사청문 대상공직에 장관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모든 장관이 하원의원을 겸직하는 의원내각제적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사청문 대상 직위는 장관이 임명하는 공직자들이다. 2013년 11월을 기준으로 청문 대상 직위는 16개 부처의 60여개에 이른다.
대부분의 인사청문 대상 직위에서 하원 위원회의 인사청문 결과는 인사권자(장관)의 임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즉, 장관의 임명권한에 대해서 하원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을 통해서 하원에 비토권을 부여한 경우가 있는데, 재무위원회 소관직위가 대표적이다. 2010년 5월에 재무부장관과 재무위원회의 협의를 통해서 예산책임처 처장을 청문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다음 해에 ‘예산 책임 및 회계검사법’이 제정되면서, 하원재무위원회는 예산책임처장과 2인 위원의 임명을 승인할 권한을 갖게 되었다. 또한 재무장관이 임명하는 통화정책위원회와 영국중앙은행 산하 재정정책위원회 위원도 하원 재무위원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임기가 만료되기 이전에 해당부처는 하원의 소관위원회와 사전인사청문회 일정을 조정한다. 해당부처는 후보자의 이름 및 신상명세와 함께 후보선정과정, 전문분야 등을 합의된 사전인사청문회 날짜보다 적어도 1주일 전에 소관위원회에 제출한다. 관련된 모든 정보는 청문회에서 일반국민에게 공개되며, 위원회 보고서로 발간된다.
하원협의위원회가 발간한 청문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청문회 개최 시 위원장은 후보자에 대한 질문을 전문성과 같은 업무적격성에 집중하도록 위원들에게 요청해야 한다. 후보자의 과거경력 관련정보나 후보자선정과정에 대한 질문은 허용된다.
그러나 위원장이 판단하기에 업무와 무관한 질문이나, 지나치게 개인적・정파적・차별적 질문에 대해서는 제지할 수 있다. 후보자도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는 위원장에게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공직후보자의 업무수행 정통성 강화
사전청문회가 끝나면 해당 위원회는 즉각 비공개로 모여서 후보자의 적격성에 대해 하원에 어떻게 보고할지를 논의한다. 위원회의 청문결과 보고서는 발간되기 최소한 24시간 전에 후보자, 후보자 지명권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위원회가 후보자의 공직적격성에 대해서 판단유보를 하면서도 보고서에 기록하기를 원치 않을 경우, 보고서를 제출하는 대신 사적으로 지명권자에게 그런 우려를 전달할 수 있다.
임명권자(장관)는 하원의 보고서를 참조하여 임명여부를 결정하지만, 하원이 법적인 비토권을 갖는 지위를 제외하고는 임명 결정에 하원의 청문결과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전진영 입법조사관은 오랫동안 인사청문제도를 시행하지 않았던 영국에서도 사전인사청문제도를 도입했다는 사실은 공직자 인사결정에 대한 의회의 감독 및 책임성 강화가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했다. 그리고 공직후보자 검증과정이 국민에게 공개되면 공직후보자의 업무수행에 있어서 정통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말했다.
전 입법조사관은 영국 하원 협의위원회는 자체적으로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를 통해서 인사청문제도 운영을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비록 영국과 한국은 인사청문제도가 시행되는 큰 틀인 권력구조는 상이하지만, 영국의 인사청문제도는 한국의 인사청문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에서 하나의 참고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영국의 경우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을 기준으로 의회와 내각이 협의를 통해서 청문대상 공직을 선정한다. 그리고 청문회 진행과정도 후보자의 업무적격성과 정책적 관심 검증에 집중된다는 점 등을 참고할 만하다. 우리처럼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음주운전 등의 문제가 중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