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을 다시 본다. (2)
을사늑약을 다시 본다. (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5.01.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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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905년 11월17일은 대한제국 외교권을 잃은 치욕의 날이었다.
그러면 이 날의 상황을 시간대 별로 살펴보자. 이 날 세 번의 회의가 있었다. 11시 일본공사 주재회의, 오후 3시 고종 주재 회의 그리고 오후 8시 이토 주재 회의가 그것이다.
참정대신 한규설 등 대신 8명은 이토가 16일에 말한 대로 일본 공사관에 모였다. 일본공사 하야시는 대신들에게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전달한 조약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자고 하자, 대신들은 어느 누구도 선뜻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침묵만 흘렀다.
비로소,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말문을 열었다. “이 문제는 비록 이토 대사가 폐하께 아뢰었고 공사가 외부에다 통지하였지만 우리들은 아직 외부에서 의정부에 제의한 것을 접수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당장 의결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중추원에서 여론을 널리 수렴해야만 비로소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자 하야시 공사는 ‘귀국(貴國)은 전제정치인데 어찌하여 입헌정치 흉내를 내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려 합니까? 황제가 응당 한 마디 말로써 직접 결정하는 것인데 이를 모면하려고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하야시는 공사관에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궁내부대신 이재극에게 전화를 하여 고종을 알현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하야시는 오후 3시쯤에 대신들을 이끌고 덕수궁으로 향했다.
고종은 하야시 일본공사의 알현 요청을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거절하고 대신들과 어전회의를 열었다. 하야시는 옆에 붙은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전회의에서 대신들은 하야시 공사와의 회담내용을 고종에게 보고하였다. 고종은 몹시 괴로워하면서 대책을 여러 번 물었다. 대신들은 조약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고종은 일단 결정을 미루자고 했다.
이때 이완용이 절박하게 아뢰었다.
“이 안건의 가부가 눈앞에 닥쳤는데도 다만 ‘안 된다’는 한 마디 말로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하며, 우리 여덟 대신들이 막아내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폐하의 마음이 오직 한 가지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천만 다행이것이지만, 만일 너그러운 도량으로 할 수 없이 허락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부분에 대하여 미리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완용의 이런 제의에 대하여 고종과 대신들 모두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이완용이 또 아뢰었다. “신이 미리 대책을 강구하자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는 수 없이 허락하게 된다면 조약의 내용 중에 첨삭하거나 개정할만한 중대한 사항이 있을 것이니, 이에 대하여 상의하자는 것입니다.”
이완영의 이 말은 조약 체결 거절은 불가능하니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현실주의자의 함정이 드러난다. ‘영혼이 없는 정부 고관’들의 행태가 엿보인다. 나라가 없어지는 마당에 할복자살이라도 하면서 저항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이완용의 말에 고종도 “‘이토 대사도 말하기를 이번 조약에 대해서 만일 문구를 첨삭하거나 고치려고 하면 응당 협상하는 길이 있겠지만, 완전히 거절하려고 하면 이웃 나라간의 좋은 관계를 보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미루어 보면, 조약의 문구 조정은 가능할 것 같다. 학부대신의 말이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이후 회의는 조약안의 첨삭 ․ 수정과 관련하여 진행되었다. 고종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 조약 초고는 어디 있으며 어느 것을 고치겠는가?”하였다. 이때 이하영이 품속에서 이토가 준 조약문을 찾아내어 고종에게 바쳤다.
이완용이 또 나서서 의견을 말하였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이 조약 제3조 통감의 아래에 외교라는 두 글자를 명백히 명시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훗날 우환거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어 권중현이 아뢰기를, “신이 외부에서 얻어 본 일본 천황의 친서 부본에는 우리 황실의 안녕과 존엄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 조약 조문에는 여기에 대하여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도 응당 따로 한 조목을 만들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하였다. 고종은 “그건 과연 옳다. 농상공부 대신의 말이 참으로 좋다.”고 대만족을 표시하였다.
회의가 거의 끝날 무렵에 대신들 모두가 똑같이 아뢰었다.
“이상 아뢴 것은 실로 미리 대책을 강구하는 준비에 불과할 뿐입니다. 신들이 이토 대사를 만나서는 ‘안 된다’는 한 마디 말로 물리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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