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이 말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대통령 박근혜의 지난 8 · 15 광복절 경축사다.
안 의사께서 감금되고 사형을 당한 곳은 중국의 료동반도 끄트머리 ‘여순감옥’인데 ‘차디찬 하얼빈 감옥’이라 잘못 말해 웃음거리가 돼 인구에 회자된 말이다. 그가 감옥이란 곳이 ‘차디찬’ 줄은 아는 걸까? 필자는 그것이 더 궁금하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이유로 조선 조정이 청군을 불러들인 결과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명목으로 조선 정벌을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군이 들어오게 된다. 일본군은 동학군을 폐퇴시키고 청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하게 되고, 그 결과 이 땅은 일본의 해양세력과 청 · 러라는 대륙세력간의 전투장으로 휩쓸려 들어가며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다. 이때의 여순전투를 통해 일본은 청나라 군함을 침몰시켜 승전국으로 만방에 그 위용을 드러내며 세계 제국주의 반열의 끝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10년 후 조선과 만주(중국의 동북지방)의 분할 지배권을 둘러싸고 싸운 것이 러일전쟁(旅順戰鬪) 아닌가? 그 배후에는 영일동맹(英日同盟)과 러시아프랑스동맹이 있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게 되고 만주로 진출하게 된다.
1세기가 지난 지금 이 땅은 그 때의 국제 정세적 상황을 닮아가는 안타까움이 펼쳐져가고 있으나 이 땅의 정치인 그 누구도 현 상황에 대한 진실한 소신을 피력하는 용기 있는 이를 볼 수가 없어 걱정이다.
그들은 정말이지 왜 정치를 하는 걸까? 미일이라는 해양세력과 중러라는 대륙세력의 틈새에 끼어 민족은 분열 속에서 갈등과 대립을 거듭하고 자주적 독자적 외교 전략의 부재 속에서 외세에 의존하려는 자기 부정적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지 않는가? 그런 사대(事大)며 사미(事美) 또는 숭미(崇美)주의자들이 이 땅을 지배하는 기득권 권력자로, 마치 정의의 표상으로 자리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과거 중국적 세계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명-일간 전쟁), 병자호란(명-청간 전쟁), 청일전쟁 등을 통해 조선민중은 그 희생이 극심하였으며, 이는 오직 통치 권력의 무능과 부패가 만든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책임은 민중의 몫으로 돌아갔음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런 민중의 희생 속에서도 통치 권력은 자기생존을 위한 외세의존에 날 새는 줄 몰랐다. 1945년 이후의 분단체제도 내전화된 세계대전으로 참혹한 희생을 치룬 6 · 25 내전으로 이어져 오늘까지 권력은 끝없는 외세의존과 자기생존만을 추구하며 민중의 희생을 강요해 오고 있다.
특히 미중 양 강대국은 겉으로는 한반도에서의 남북 간 긴장완화를 통한 외교를 수사로 포장하고 있으나 정작 그들의 속내는 대립과 갈등이 적당히 온존해 줌으로 해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역할과 관여라는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뻔히 보이는 전략 안에 놀아나면서도 이를 권력놀음에 이용하는 전통적 반민중적 행태를 유지하는 정치의 후진성과 악마성을 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1세기가 넘도록 정치는 민족의 문제를 외세에만 의존하려 한단 말인가? 자주를 주장하면 반역자가 되고 종북이 되고 불순한 사상을 가진 배신자란 말인가? 그나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대해서 자주적 당사자주의를 원칙으로 주변 강대국들로 하여금 상호 보완적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민족 문제에 대한 큰 틀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명박 정부 이래 이마저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한심한 정치가 아닌가?
이에 필자는 과거 여순전쟁의 결과예측에 대한 일본의 다까시마 돈쇼우(高島呑象)의 역점례(易占例)를 통해 우리 현실의 위태로운 주변 정세가 한말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어 그 과거사를 알아보려 한다.
1904년 2월 8일, 일본은 밤을 틈타 항구에 정박해 있는 러시아 함대를 향한 어뢰공격을 시작하여 소위 ‘여순전투’라는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여순(旅順)은 러시아에 조차된 천혜의 군사요충지이며 당시에 첨단 해군시설이 완비된 군항이었다. 이 전쟁을 이끈 일본의 장수는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이며 전 일본군 20만 중에 이 전투에서 무려 62.000명이, 러시아군은 12.000명이 사망하여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최초의 세계해전사이다.
그해 11월 1일(開戰 11개월 후) 다까시마는 여순전투의 결과를 점쳐 뇌천대장(雷天大壯 ䷡ )첫째 효(初爻)를 얻었고 이에 대한 해석을 보면 정말이지 소름이 끼칠 만큼 정확하다.
대장괘는 네 양(四陽)이 연대하여 적의 두 음(二陰)을 압도하는 상이니, 일본 세력이 성대하므로 대장(大壯)이라 한 것이다. 지금 초효를 얻었다는 것은 이는 본월(점을 친 11월)에 해당하고, 초효의 효사는 “발뒤꿈치를 다쳤으니 출정하면 흉하여 벌을 받는다(壯于趾 征凶 有孚)”고 하였다. 11월 8일, 그날 하루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무려 8.000명이 전사한다.
이 괘에는 전승의 기운이 있지만 때가 아직 익지 않았으므로 “발뒤꿈치를 다친다(壯于趾)”라 하고 “힘차게 진군할 수 없기 때문에 출정하면 흉하다(征凶)”고 한 것이다. 12월은 두 번째 효에 해당하고 그 효사(爻辭)에 “점은 길하다<바르게 하면 길하다(貞吉)>”라고 하여 이 효는 강한 가운데 있으니 다섯 째 효의 적에 응전하여 승리 할 수 있는 상이고 승략이 확정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