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다
옻칠,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다
  • 범현이
  • 승인 2008.06.23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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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의 명인(名人) 최석현(51)씨를 찾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다. 오색으로 빛나는 나전칠기 안에 몽롱한 꿈이 보인다.

인간의 삶도 꿈도 보이고, 열망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가고 싶은 나라도 보인다. 뛰어노는 사슴의 무리들, 어디론가 휭 쉽게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구름과 학(鶴), 언제라도 시원한 그늘을 줄 것만 같은 소나무들...

모두가 꿈속의 것들이지만 최석현씨가 만들어 내는 나전칠기 세상 안에서는 모두가 이루어질 수 있는 명인만의 세상이다.

70년대부터 손톱 끝에 옻을 묻히고 자개를 오렸으니 이제는 구름 위에 앉을 만도 하다. 그가 만든 나전칠기 안 세상에서 사람과 동물은 모두가 평등하다. 모두 함께하는 대동세상이다.

자개 빛으로 빛나는, 조개로 이루어진 가고 싶은 나라, 꿈꾸는 세상이다.
“다른 것을 해 낼 용기가 없어 나전칠기를 버리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는 천상 옻칠장이다.

▲ 나전칠기 명인 최석현씨.

옻칠은 천년을 살아남아 역사로 증거


옻칠은 한지와 함께 우리의 역사로 살아왔다. 박물관에 유물로만 남아있기를 거부하고 생활 속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온다.

최근에는 우리가 매일 대하는 밥그릇, 숟가락, 심지어는 일상에 젖어 피곤한 몸을 누이는 방바닥에 까지 영역을 넓힌다. 천년을 살아남은 옻칠답게 가장 먼저 낮추었던 몸을 일으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접(接)하지 못했던 생경함에 쉽게 가까워 지지 못하면서도 반긴다. 이미 그 우수성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질경이 같은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 민족사와 다름없다.

옻은 반영구적 소재로, 옻칠 작품은 반만년 이상 아름다운 빛을 잃지 않는다. 또한 시간을 요하는 수(手)작업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구성이 강하고 습도조절이 가능하며 인체에 전혀 해(害)가 없다.

방충과 방염효과 또한 시중의 화학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다. 우리 선조들의 옻칠 사용은 방대하다.

집 안의 크고 작은 가구는 물론이고 부엌에서 사용하는 목기(木器), 가마, 경대, 제기(祭器) 등등 심지어는 마지막 가는 길을 열어주는 관(棺)까지 사용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만큼 우리네 생활과 밀접했다는 얘기다.

집 안에서 사용하는 옻칠은 나전칠기와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오묘한 빛을 발한다. 검은 듯 붉은 빛을 내는 옻칠은 쓸고 닦아주는 사람과의 교감으로 사랑을 먹고, 삶의 고통과 슬픔까지도 스며들어 주인의 색을 닮아간다. 검붉은 빛, 붉은 자줏빛... 삶의 빛, 연륜의 빛이다.

삶의 시작도 끝도 나전칠기와 함께

최 명인(名人)은 천연 옻에서 채취한 생칠을 이용한 옻칠 공예의 아름다움과 생(生)의 고락을 함께 해왔다.

여기에 자개를 무늬대로 잘라 목심(木心)이나 칠면(漆面)에 박아 넣거나 붙이는 나전칠기 기법을 접목시켜 한 갈래, 회화작품의 영역을 만들었다.

옻칠 바탕에 무지갯빛 영롱한 전복껍질을 붙이고 그림과 무늬를 놓아 제작하는 장식기법인 나전칠기는 전복, 소라, 조개껍질이 지닌 모양과 화려한 색상을 살려내 전체적인 통일성을 맞추는 일은 고난도의 숙련과 집중을 요구한다.

옻은 옻나무에서 황칠은 황칠나무에서 채취한다. 옻나무나 황칠나무에 상처를 내면 나무는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하여 수액을 내뿜는데 시간이 지나면 옻나무 수액은 어두운 밤색으로, 황칠나무 수액은 황금색으로 변한다. 이 수액의 불순물들을 걸러내면 천연도료인 옻칠과 황칠이 되는 것이다.

원액을 그냥 쓰면 생칠이고 수분을 증발시켜 쓰면 투명 칠, 쇳가루를 섞어 쓰면 검정 칠, 경면주사(鏡面朱沙)를 섞으면 붉은 칠이 된다.

또 그밖에 여러 안료를 섞어 다양한 색을 낼 수도 있어 현대생활에 알맞은 생활의 모든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옻칠이 지닌 미적 아름다움이나 자연주의적 성격은 사람과 가장 맞닿아 있다. 조상들의 훌륭한 유산인 옻칠이 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져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어린 날, 심부름부터 시작했다. 공방 안의 한정된 기술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발전을 꿈꾸며 나만의 색깔을 찾아내는 숙련된 기술을 습득하려 노력했다. 한때는 세태에 밀려가는 옻칠을 보기도 했고 절망의 순간을 겪은 적도 있었다”며 “용기가 없어 다른 일을 하지도 못했다.

옻칠이 내게 천직(天職)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앞을 향해 나아갈 것 말고 다른 모든 길은 없었다”고 말하는 눈빛이 한없이 깊고 푸르다.


후회 없는 옻칠장이로 살고 싶어

그는 요즘 형태가 큰 가구 개념을 벗어난 작은 가구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누구나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쉽게 접하며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이다.

작품이 훌륭해도 사용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만큼 우리의 전통공예는 멀어져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작품들로 목기에 황토를 입히고 그 위에 옻칠을 한 작품들도 이미 인정을 받았고 한 발 더 나아가 목기에 황토를 입힌 나전칠기 역시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량도 늘었다.

작은 찻잔세트나 밥그릇세트, 보석함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재현해 낸 결과다. 최근 완성한 전통 문양을 끊음 기법으로 완성한 선비상(書箱)은 그 모든 것의 결정판이다.

양림동 그의 공방에 쌓여있는 수많은 조개더미들이 그의 손 안에서 이름을 찾고 빛을 만들어 내기를 기다린다. 민들레 홀씨처럼 그 빛은 세계를 향해 날아가 퍼져 바람과 함께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알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쌓여있는 조개더미들은 그가 소리 없이 풀어가야 할 아픈 죽비(竹扉)다.

단지 조개들일 뿐인데 이토록 찬란한 무지갯빛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처를 통해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삶의 외로움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무한 한계선이 그 찬란한 아픔의 빛깔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옻에 담겨 이리저리 옮겨 다닌 그의 까만 손톱이 봉숭아 꽃물처럼 처연하다.

문의 : 011-609-5757

▲나전칠기 명인 최석현(51)

현(現) 광주공예조합이사장.
무형문화재 배금용 선생을 사사. 무형문화재 제24호 나전옻칠 전수장. 제10회 대한민국 국제미술대전 추천작가. 제2회 무주전통공예대전 집행위원. 제5회 대한민굯 관광문화상품대전 운영위원. 문화재 보수 수리 기능사 자격증. 대한민국 한양 미술대전 대상 수상.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 금상. 전국공예품대전 금상. 전국공예품대전 광주대회 우수상. 그 외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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